“北 내부동력으로 변화하도록 해야”

▲ 도널드 그레그(79) 전 주한미국대사 ⓒ 연합

도널드 그레그(79) 전 주한미국대사는 박정희시대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한국지부장으로 일했던 정통정보맨 출신 원로 외교관이다. 조지 H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가까운 친구인 그는 노태우 정부때 주한미대사로 일했고, 대사직을 마친 후에는 13년간 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으로 활동하며 남북한과 미국을 잇는 민간 외교창구역을 해왔다. 최근 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에서 이사회 의장으로 2선 후퇴한 뒤 서울을 방문한 그레그 전 대사를 만났다.

―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들어선 이후 가장 적극적으로 부시 대통령의 대북압박정책을 비판하며 정책전환을 촉구해 왔는데 북한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발언하게 된 동기는 무엇인가.

“주한미국대사를 마친 뒤 1993년부터 코리아 소사이어티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뉴욕의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사람들과 가깝게 지냈다. 그런데 2001년 9·11이후 미국의 안보관이 근본적으로 변화했는데도 북한은 그런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2002년 3월 김정일 북한국방 위원장에게 편지를 썼다. 그랬더니 북측에서 한달 후에 초청을 해서 방북하게 됐다.”

― 당시 무슨 동기로 편지를 쓰게 됐는가.

“나는 김영삼(YS)대통령시절 북한과의 접촉을 시도했는데 YS는 그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1998년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후 코리아 소사이어티의 명칭을 그대로 실현시키려면, 북한에 그 깃발을 꽂아야 한다며 격려했다. 그후 나는 적극적으로 활동에 나섰고 2000년 10월 조명록 북한군 차수가 워싱턴을 방문했을 때도 함께 만났다. 당시 빌 클린턴 대통령은 북한에 가길 원했으나 대선결과 플로리다의 개표문제가 논란이 되자 어려워졌다. 그러다 2001년 부시 대통령이 집권하고 상황이 어려워지자 북측은 혼란스러워 하면서 내게 와서 어떻게 다시 대화를 해볼 수 없겠느냐고 문의해왔다. 그래서 김정일 위원장에게 편지를 썼다. 우리가 대화를 해야 한다고, 당신은 우리 미국인이 얼마나 테러리스트에게 화가 나있는지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썼다.”

― 2002년 4월 평양방문이 첫 방북이었나.

“그렇다. 2002년 4월 방북 당시 나는 북측에 푸에블로호 반환을 요구했다. 그것은 북측에게 아주 놀라운 제안이었던 것 같더라. 푸에블로호는 일종의 대미 심벌이었는데. 그해 9월 김계관 부상으로부터 푸에블로호 반환협상을 할 수 있다는 편지를 받았고 그해 11월 다시 방북했다. 북한은 그 사이에 푸에블로호를 수리해서 대동강에 전시했다. 그런데 푸에블로호 문제는 2002년 10월 제임스 켈리 당시 국무부 동아태차관보가 방북해 고농축우라늄(HEU)문제를 꺼내는 바람에 무효가 돼버렸다.”

― 북·미를 오가며 한 일이 아주 모험적으로 비춰지는데.

“어떤 사람은 나를 미쳤다고도 봤겠지만, 나는 그런 일을 스스로 멈출 수 없었다. 그게 옳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도 나에게 그것을 요청하지 않았지만 나는 내면에서 우러나는 소명의식에서 한 것이다.”

― 북한체제에 대해 어떤 비전을 갖고 있는가.

“나는 북한의 체제가 점진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입장을 갖고 있다. 말하자면 외부의 힘에 의한 체제교체(레짐체인지)가 아니라 체제내부의 동력에 의한 체제 전환이다. 부시행정부는 그간 북한 레짐체인지를 추진했다. 레짐체인지란 한 나라가 들어가 다른 나라 체제를 바꾸는 것인데 이라크 체제교체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중국이 스스로 경제를 통해 체제를 변화시키는 것과 같은 체제전환도 있다. 중국사람들이 그 변화를 스스로 필요하다고 판단해 하는 것이다. 나는 북한이 그렇게 변화하도록 돕고 싶다. 말하자면 고립에서 벗어나 경제를 통해 체제를 진화시켜 정상국가가 되게 하자는 것이다. 이게 내가 일하는 목적이다.”

― 북한이 자체적으로 체제변화를 할 수 있다고 낙관하는가.

“북한은 이미 자체적인 체제전환에 들어섰다. 남쪽에서 오는 영향으로 체제가 점진적으로 변화되고 있다. 북한의 점진적 체제전환은 2002년부터 본격화했다. 그들은 과거 자유경제를 이해 못했는데 이제 그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 한국에서는 올 12월 대통령선거가 실시되는데 한·미관계에 대해 조언을 한다면.

“나는 한·미관계를 걱정하지 않는다. 상호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코리아 소사이어티는 코리안-아메리칸의 특별자문그룹을 형성해 특별한 이슈에 대해 협의한 뒤 양국정부에 전달키로 했다. 한·미 양국 사람들 40~45명이 블루리본 패널을 형성해 매년 대화를 나누고 그 결과 및 정책건의를 한·미외교장관에게 할 방침이다.”

― 한반도 일에 대해 깊은 열정을 갖고 있는 남다른 이유가 있는가.

“모든 한국사람들이 가쓰라태프트 조약을 알고 남북분단도 안다. 한국전쟁 때에는 한강과 대동강 철교가 끊어져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도 모두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사람들은 그런 역사를 잊었다. 가쓰라태프트조약과 남북분단은 미국의 아주 심각한 실수다. 나는 그런 점에서 의무와 책임감을 느낀다. 내 작은 기여가 그런 심각한 실수를 보완하고 싶다. 나는 역사에 어떤 책임감을 느낄지에 대해 늘 생각하며 살아왔다.”

― 그간 정보원에서 외교관으로, 그리고 한·미관계 비정부기구 총괄책임자로 살아왔는데 그간 견지해온 삶의 원칙을 얘기한다면.

“그간 3번 직업을 바꿨지만 사람에 대한 자세, 존경심을 갖고 대해야 한다는 원칙은 늘 견지했다. 내가 정보맨으로 일할 때 나는 내가 상대하는 사람들을 존경했다. 이것은 외교관이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직업은 바뀌었지만 일에 대한 나의 태도, 사람에 대한 나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당신이 변하지 않으면 된다는 점이다. 직업은 달라졌지만 사람들에 대한 생각, 일에 대한 자세, 상대에 대한 배려 등은 늘 견지했다. / 문화일보=이미숙 정치부 차장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