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핵 검증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방북한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에게 미·북 고위급 군사회담을 제안한 것으로 관측되는 가운데 미국의 대응이 주목되고 있다.
북한은 그동안 북핵 ‘9·19공동성명’이 한반도 비핵화를 목표로 하고 있으니 핵 검증은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에도 동시에 진행돼야 한다며 남북 동시사찰을 주장해 왔다. 따라서 북한이 이번 힐 차관보의 방북 때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미·북 고위급 회담을 요구했을 가능성이 예상되고 있다.
외교 소식통은 5일 “북한은 과거에도 주기적으로 한반도 평화와 안전보장 문제를 협의하자며 미·북 군사회담을 제안해 왔다”면서 “여기에 핵 검증문제까지 의제로 포함시켜 논의하자고 제의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보도했다.
특히 북한은 이번에 힐 차관보가 만난 리찬복 북한군 판문점대표부 대표를 통해 주로 미·북 군사회담을 제안해왔다는 점에서 이 같은 관측은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검증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한 군사회담을 제안했다고 하더라도 미국이 이를 수용하기에는 어려울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으로선 어떻게든 검증문제를 매듭짓고 북핵문제를 진전시키고 싶은 의지가 강하지만, 미·북 군사회담을 수용할 경우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으며 남한 내 핵검증 주장과 동시에 남북한 ‘동시 군축’을 주장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더불어 북한이 ‘주한미군 철수’까지 들고 나올 가능성이 커 미국을 비롯한 한국이 회담 개최를 수용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우리 정부도 그동안 “직접 당사자인 한국을 제외하고 한반도의 평화와 안전을 논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보여와 미·북 양자 간의 군사회담 개최를 반대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KIDA) 국방현안연구위원장은 “미국이 미·북 군사회담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없다”며 “군사회담이 개최될 경우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를 분명히 하면서 핵군축 이야기를 전면에 꺼내들 것이 확실하기 때문에 미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힐 차관보의 방북을 수행했던 성 김 미 국무부 북핵담당 특사가 서울에 체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외교부 일각에서는 힐 차관보가 워싱턴 수뇌부와의 조율을 거친 후 다음 주 힐 차관보나 성 김 특사의 재방북을 통해 핵 검증 문제에 대한 추가협상이 이뤄질 수 있다는 관측이 이어지고 있다.
김 위원장은 “아직은 미국과 북한이 북핵문제를 파국으로 몰아갈 생각이 없기 때문에 힐 차관보의 재방북 가능성은 있다”며 “냉각탑 폭파, 부시 행정부의 테러지원국 해제 의회 통보 등 북핵 진전 상황을 미국과 북한이 일거에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미국은 북한이 ‘검증 의정서’에 사인을 하길 바랄 것이고 북한은 경제·정치적 실익을 최대한 확보하면서 최소한의 검증만을 받기 위해 미국과의 줄다리기를 계속할 것으로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