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남북기본합의서 침묵은 왜?

이명박 대통령이 남북관계의 가장 기본적인 합의서로 남북기본합의서(1991년)를 든 데 대해, 북한의 노동신문은 남북기본합의서는 빼놓은 채 6.15공동선 및 10.4남북정상선언에 더해 7.4남북공동성명(1972년)을 남북관계의 기본원칙서로 제시했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통일부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남북기본합의서가 91년 체결돼 92년부터 효력이 발생했고, 북한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면서 “그 이후 남북정상이 새로 합의한 합의문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91년 체결된 남북기본합의서의 정신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반해 노동신문은 1일 이명박 대통령의 대북정책을 격렬하게 비난하면서 “우리의 체제를 건드리는 것은 서로 비방중상하지 않으며 내정간섭하지 않기로 한 북남관계의 기본원칙”을 모르는 처사라며 “북남관계 기본원칙을 밝힌 7.4남북공동성명과 조국통일의 대강인 6.15공동선언과 그 실천강령인 10.4선언은 알고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라고 반문했다.

남북간에 체결된 주요 합의문가운데 기본합의서만 쏙 빼놓음으로써, 이 합의서에 대한 남북한의 입장 차이가 극명해 눈길을 끈다.

왜 북한은 기본합의서에 부정적인가.

북한의 각종 언론매체들은 남북관계와 통일문제를 언급할 때마다 7.4공동성명과 6.15공동선언, 10.4선언을 강조하면서도 이 기본합의서는 거론하지 않고 있다.

지난 2000년 남북정상회담 때 6.15공동선언을 작성하는 과정에서 남측이 ‘남북기본합의서’라는 표현을 넣으려 했으나 북측이 반대해 빠진 것도 북측의 거부감을 보여준다.

북한의 이같은 태도는 기본합의서가 만들어진 과정에 대해 굴욕감을 느끼고 있기 때문일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1990년대 초 국제적 냉전이 막을 내리면서 공산권의 붕괴와 변화 속에, 중국의 경화결제 요구와 러시아 등 동구사회주의 국가와의 교역 단절때문에 북한으로서는 고육지책으로 남북고위급회담을 선택할 수 밖에 없었다.

특히 북한은 이전까지 유지해온 ‘하나의 조선’ 원칙을 포기하고 유엔 동시가입을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고 ‘선(先) 연방제 통일-후(後) 교류협력’의 원칙을 접고 통일을 하나의 과정으로 상정하고 다양한 교류협력방안에 합의했다.

사실상 남측의 논리에 백기투항한 기본합의서에 대해 북한이 좋은 감정과 평가를 가지고 있을 리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합의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러니중의 하나는 기본합의서의 체결 당시 남한 보수층에선 북한에만 끌려 다니다 이뤄진 합의라면서 공세적 입장을 취한 사실이다.

북한은 그러나 공개적으로는 기본합의서에 비중을 두지는 않지만 각종 남북회담 과정에서는 기본합의서를 많이 인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북 전문가는 “북한은 장성급회담이나 각종 경제회담에서 기본합의서를 거론하면서 자신들의 주장이 가지는 정당성을 강조하기도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 전직 고위관료는 북측이 6.15공동선언에 ‘남북기본합의서’를 적시하는 것은 반대했어도 6.15공동선언이 남북기본합의서 정신을 이은 것이라는 점은 인정했으며, 따라서 10.4선언에도 남북기본합의서 정신이 이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6.15공동선언은 다양한 교류협력 방안에 합의한 남북기본합의서의 실천선언으로 철도.도로연결, 금강산 관광사업, 개성공단, 이산가족 문제,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 등 5대과업에 역점을 뒀다”며 “10.4선언은 이 토대 위에 새로운 사업으로 실천영역의 확장을 시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도 “남북기본합의서 합의사항에 포함된 것들이 6.15공동선언 이후 대부분 이행되고 있다”며 “6.15선언과 10.4선언의 합의내용은 기본합의서의 합의를 보다 구체적으로 담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이명박 대통령이 통일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강조한 남북기본합의서는 ‘남북화해’, ‘남북불가침’, ‘남북교류협력’ 등의 내용을 담은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아니라 당시 이와 별개로 동시에 합의된 ‘한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가리킨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전문가들 사이에 많다.

이 대통령이 “남북기본합의서에는 한반도 비핵화에 관련된 것도 들어 있는데, 비핵화는 대한민국에서만 바라는 게 아니라 북한도 합의한 바 있다”고 부연한 게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는 것이다.

새 정부의 대북정책인 ‘비핵.개방 3000’이 북한의 핵포기를 전제로 하고 있는 만큼, 이 대통령은 북한의 핵포기를 강조하기 위해 `비핵화공동선언’을 지적한 셈이다.

그러나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약 1달 정도의 시차를 두고 합의된 남북기본합의서와 비핵화공동선언은 각각 남북관계와 비핵화에 관해 남북한이 지향할 방향을 명문화함으로써 ‘남북관계 진전과 핵문제 해결의 병행’을 명시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 대통령의 남북기본합의서에 대한 인식과는 거리가 있는 셈이다.

이승환 민화협 집행위원장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 정책 구상은 평화가 만들어진 후에 무엇을 하겠다는 내용은 있지만, 기본적으로 평화를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할지에 대한 것은 없다”면서 “이를 시급히 보완하지 않으면 정책 실패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북 전문가는 “김영삼 정부가 ‘핵 가진 자와는 손 잡을 수 없다’며 핵 우선론을 주장하면서 남북관계의 단절이 5년간 이어졌지만 한국 정부의 단호한 입장에도 핵 문제는 현재까지 진행중”이라며 “핵문제 해결을 남북관계의 전제조건으로 삼으면 대북정책이나 외교무대에서 한국 정부의 자리는 좁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