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남는 장사’에 한국 또 ‘봉’ 잡히나?

▲ 천영우 6자회담 우리측 수석대표 ⓒ연합

제5차 6자회담 3단계 회의 나흘째인 11일 현재, 이번 회담의 주요 쟁점 중 하나였던 영변 5MW 원자로 및 핵시설 처리 문제에 대해 ‘폐쇄’(shutdown) 쪽으로 잠정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6자회담 미국측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는 10일 “쟁점이 되고 있는 합의문서 초안상의 문구가 영변 핵시설의 미래와는 무관하다”며 “북한과 ‘동결’(freeze)이 아닌 ‘폐쇄’란 용어를 쓰는데 서로 이해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과 ‘폐쇄’란 표현에 공감대를 형성했느냐는 물음에 “우리는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에 ‘폐쇄’란 표현을 쓰기로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해 더 이상 핵시설 처리와 관련한 표현이 ‘쟁점’이 되고 있지 않음을 시사했다.

미국이 이번 회담에서 북한이 ‘초기이행 단계’에서 핵시설에 대한 폐쇄 조치를 강하게 요구한 것은 94년 ‘제네바합의’에 대한 불신에서 기인된 것으로 보인다.

제네바합의에서는 “북한은 흑연감속원자로 및 관련 시설을 ‘동결’하고 궁극적으로 이를 해체한다”고 합의함으로써 동결조치 이후에서도 핵시설에 대한 북한 기술자들의 출입이 허용되는 등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재가동할 수준이었다.

실제 2002년 10월 대통령 특사로 평양에 갔던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차관보가 “북한이 우라늄 농축 핵 프로그램을 시인했다”고 언급하면서 미국은 대북 중유지원을 중단했다. 이에 반발한 북한은 수주 후 영변에 설치한 감시카메라를 뜯어낸 뒤 핵 동결 해제를 발표하고, 2003년 중반부터는 핵개발 재개를 선언했다.

때문에 미북간 ‘동결’과 ‘폐쇄’를 놓고 심한 마찰이 예상됐던 것과는 달리 북한측이 미국이 요구한 폐쇄 조치를 순순히 수용함에 따라 그에 대한 해석이 분분하다.

일각에선 북한이 올해 신년사설에서 밝히고 있듯 ‘경제’문제 해결에 집중하려 해도 전기가 부족해 공장 가동에 어려움을 겪는 등 심각한 에너지난 타개를 위한 전략적 선택이었을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국방연구원 김태우 책임연구위원은 데일리NK와의 전화통화에서 “이번 6자회담이 결렬될 경우 미국이 대화에서 강경조치로 선회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강경조치 중에는 최소한의 군사행동으로 북핵 프로그램을 중단시킬 수 있는 계획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김 연구위원은 “북한은 스스로도 더 이상 고립 속에 빠질 수 없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이번 회담에서 어느 정도 진전된 합의를 내놓고 경제적 실리를 추구하겠다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영변 핵시설에 대한 폐쇄 조치에 원칙적으로 합의하긴 했지만 이후 미북 간에 세부적인 토의에 들어가면 언제든 이견이 나올 수 있는 부분”이라고 덧붙였다.

▲ 김계관 6자회담 북측 수석대표 ⓒ연합

이와 관련, 일본 아사히 신문은 북한은 영변 핵시설 가동정지 등 초기이행 조치의 대가로 연간 전력 200만kW 상당의 에너지 지원을 요구했다고 전했다. 중유로 환산하면 200만t에 해당하는 상당한 규모로, 94년 제네바합의에서는 연간 50만t 지원을 약속했었다.

이에 대해 우리측 수석대표인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11일 “북한이 13년 전부터 주장해온 내용”이라면서도 “200만kW 주장을 하지 않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부인했다.

이와 관련, 베이징의 한 외교 소식통은 “북한이 에너지 보상규모를 구체적으로 얼마를 달라고 수치로 말하지 않으면서도 제네바 협상 당시와 달라진 상황을 언급하며 ‘그 때보다 몇 배 이상’이라는 형식으로 보상규모를 제시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북한이 핵폐기를 위한 초기단계 이행 조치로 영변 핵시설 ‘폐쇄’ 조치를 수용했기 때문에 의장국인 중국이 제시한 초기이행 조치 시한(60일) 내에 사용할 수 있는 대규모 에너지 지원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등 나머지 5개국은 북한의 이런 요구가 ‘비현실적’이라고 보고 대북 설득작업을 벌이고 있다. 또한 ‘상응조치’를 가지고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이 협의를 계속하고 있지만, 일본은 ‘납치문제’, 러시아는 ‘대북 차관 탕감’ 문제로 소극적인 입장이어서 타협점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에 제공할 대체에너지 문제가 6자회담 현안이 되면서 한국이 ‘대북 에너지 지원 워킹그룹’을 주도하는 방안이 부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안에서 나머지 5개국이 지원할 규모와 순서를 결정하겠다는 것.

그러나 외교가에서는 한국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대북 에너지 지원에 있어 한국 정부가 대부분을 떠안을 가능성이 높다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만약 이 문제가 현실화 된다면 국내에서는 ‘북한 퍼주기’ 논란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 ‘폐쇄’가 논의되고 있는 영변 핵시설은 이미 플루토늄 핵무기(5-10기 추정)를 모두 생산해냈기 때문에 별 쓸모가 없어 북한 입장에서는 폐쇄해도 크게 아쉬울 게 없고, 오히려 대체 에너지를 받으면 ‘고스란히 남는 장사’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한편, 이번 회담에서 진전된 합의가 도출된다고 하더라도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이번 회담 의제에서 제외된 경수로 문제를 비롯, 대북 금융제재·북한의 모든 핵프로그램 신고·이미 만들어진 핵무기·고농축 우라늄(HEU) 처리 등의 문제는 여전히 살아있는 불씨여서 험난한 파고가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