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끊임없는 對美 구애

북한은 1990년대 들어 대미외교에 본격 나서면서 북미간 중요한 고비 때마다 미 고위인사를 평양에 초청해 풀어온 경험이 있다.

힐 차관보의 21일 방북이 방코 델타 아시아(BDA) 문제가 해결돼 2.13합의의 이행이 본격화되는 국면에서 이뤄진 것처럼, 북한은 북미관계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흐를 때마다 미 고위인사를 평양에 초청해 현안을 급진전시키는 외교 패턴을 보여왔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압박 일변도 정책을 펴고 있던 2005년에도 부시 대통령과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 등 미국 최고위층 인사의 방북을 적극 성사시키라고 외무성에 지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의 적대적 관계로 미뤄볼 때 미국의 고위인사와 직접 마주앉아 구체적으로 상호 의견을 나누는 것이 서로의 이해를 높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나름의 판단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대표적인 대미 초청외교는 빌 클린턴 행정부 시절인 2000년 10월 매들린 올브라이트 당시 미 국무장관의 방북.

조명록 북한 국방위 제1부위원장이 김정일 위원장의 특사로 미국을 방문한 데 이어진 올브라이트 장관의 방북 때, 김 위원장은 올브라이트 장관을 면담했을 뿐 아니라 집단체조까지 함께 관람하면서 북미 대결관계의 청산 의지를 거듭 표명했고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에 대해서도 합의했다.

임기말인 데다 중동평화 문제 때문에 클린턴 전 대통령의 방북이 성사되지는 못했지만, 당시 조명록 제1부위원장의 방미와 올브라이트 장관의 방북을 통해 북미관계의 급속한 진전이 이뤄졌었다.

북한은 그에 앞서 1994년 제1차 북핵위기에 따른 미국의 대북 군사행동 검토라는 위기일발의 상황에서, 지미 카터 전 미 대통령을 평양에 전격 초청함으로써 위기를 잠재우고 미국과 제네바 기본합의를 이루는 대미 초청외교의 효과를 톡톡히 봤다.

같은 해 북한에 격추된 미 헬기 조종사 보비 홀 준위의 송환문제가 생겼을 때는 토머스 허바드 국무부 차관보가 특사자격으로 방북해 해결되기도 했다.

이 같은 경험 때문에 북한은 북미관계가 대립으로 치달을 때에도 미 고위인사의 방북을 통해 돌파구를 찾으려는 노력을 보여왔다.

힐 차관보에 대해선, 북한은 미국의 금융제재에 대한 대응으로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기 한달여 전인 작년 6월 평양 방문 초청 의사를 공개 표명했고, 2005년 9.19 북핵 공동성명 후에도 수차례 평양 초청을 추진했으나, 미 언론은 딕 체니 부통령의 선(先) 영변 원자로 가동 중단 주문때문에 성사되지 못했다고 전했었다.

지난해 11월 워싱턴 포스트 보도에 따르면, 북한은 힐 차관보가 방북할 경우 제이 레프코위츠 대북인권 특사가 동행해도 좋다고 동의할 정도로 힐 차관보의 방북 실현에 적극적이었다.

지난 5월엔 김명길 유엔 북한대표부 차석대사가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힐 차관보가 오겠다고 해서 오려면 오라고 초청한 바 있다”며 “힐 차관보가 편리할 때 오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미 고위관리의 방북이 전부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만은 아니었다.

북일 정상회담이 평양선언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2002년 10월 북한이 적지 않은 기대를 갖고 초청한 제임스 켈리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방북은 오히려 북한의 고농축우라늄(HEU) 문제 때문에 제2차 핵위기를 부른 계기가 됐고, 그 이후 북미관계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는 결과를 가져왔다.

정부 관계자는 “북미 관계정상화를 위해 양측간 정치적 신뢰구축의 선행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고위급 인사의 방문외교는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며 “’2.13합의’가 이행의 동력을 채운 상황에서 힐 차관보의 방북이 긍정적인 결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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