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당국의 엄격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9·9절(북한 정권 수립일) 열병식에 참여했던 대학생들로부터 ‘김정일 와병설’이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함경북도 내부소식통은 23일 ‘데일리엔케이’와의 전화 통화에서 “장군님(김정일)이 쓰러졌다는 소식이 9·9절 열병식에 참가했던 대학생들로부터 퍼져나가고 있다”며 “장군님이 8월 초에 쓰러져 지금도 병원에 있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고 전했다.
소식통은 “올해 5월부터 각 도에서 남자 키 168cm, 여자 156cm 이상의 대학 3~4학년생들을 뽑아 열병식 훈련에 참가했다”면서 “훈련을 주는(시키는) 사람들도 ‘이번 행사는 장군님을 모시고 진행하는 행사이기 때문에 여느 행사와 같이 대하면 안 된다’고 항상 강조했다”고 말했다.
소식통은 열병식에 참여하고 고향으로 돌아온 대학생의 말을 빌어 “‘행사 당일에도 장군님이 참석 못한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고 한다”며 “‘행진을 하면서 주석단을 보았는데 장군님이 보이지 않아 처음에는 내가 행진에 신경을 쓰느라 못 본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 대학생은 “행진 대열이 광장에서 한참 벗어나자 참가자들 속에서 ‘장군님께서 나오시지 않았다’고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그냥 다른 일이 있는가보다 했지 건강이 나쁘다는 생각은 누구도 못했다”고 했다고 소식통은 말했다.
“5월부터 대학 3~4학년생 뽑아 열병식 훈련”
대학생은 “행사를 끝내고 11일 아침 대학생들의 집합장소인 ‘교원 답사소’에 모였을 때 이미 ‘장군님이 건강이 나빠져 이번 행사에 못 나왔다’, ‘장군님이 8월 초에 쓰러져 지금도 병원에 있다’는 소문이 쫙 퍼졌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열병식에 참가한 대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면서 굉장히 소문을 퍼뜨리는 것 같다”며 “지금 청진시를 시작으로 소문이 빠르게 퍼지고 있는데 대부분 대학생들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일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지난 19일에는 함경북도 청진시의 전쟁 노병(老兵)들이 도(道)당을 방문해 ‘김정일의 와병설’에 대한 질의를 해 도당이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발생했다.
소식통은 “지난 19일에는 ‘전시 공로자 협회’에서 생활총화를 마친 전쟁 노병 대표들이 최근에 소문이 돌기 시작한 김정일 와병설과 관련해 함북도당을 방문했다”고 말했다.
‘김정일 와병설’을 전해들은 노병들이 도당을 방문해 ‘최근 장군님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리를 듣고 안타까워서 찾아왔습니다. 지금처럼 정세가 어수선 한 때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토의해 봐야겠습니다’라고 말해 도당이 발칵 뒤집혔다는 것.
소식통에 따르면 이 말을 들은 도당 지도원과 간부들이 “어디서 그런 소문을 들었느냐?” “모두 제정신을 가지고 하는 말이냐?”고 호통을 치며, 이 사실을 도당 조직비서에게 알렸다고 한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함북도당 조직비서가 직접 나와 “노병 동지들이 원수들의 준동에 놀아나서야 되겠습니까? 지금 적들은 우리 공화국을 허물고 장군님의 위신을 훼손하기 위해 온갖 모략책동을 다 하고 있습니다”며 “노병 동지들이 앞장서 원수들의 책동을 예리하게 까발려야 한다”고 주의를 주며 노병 대표들을 돌려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은 “노병들이 돌아온 후 도 보위부에서 노병들 집집마다 방문해 소문의 출처를 따졌고, 앞으로 그런 소문을 절대 흘리지 못하도록 했다”며 “그러나 소문이 더 크게 날 것이 무서워서인지 노병들을 감옥에 보내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노병들 함경북도당 찾아 김정일 신병 물어 발칵”
그는 “그 직후 인민반마다 ‘적들의 모략에 걸려 우리 혁명의 수뇌부를 훼손하는 소문을 퍼뜨리는 자들이 있다. 그런 행동을 한 자들은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고 모두 입단속을 잘 하라’고 지시를 내리고 있다”면서 “그런데 그런 단속을 하는 바람에 오히려 소문이 더 빨리 퍼지는 것 같다”고 했다.
한편, 김정일의 와병설을 계기로 주민들 사이에서도 ‘후계 문제’에 대한 궁금증이 커지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소식통은 “장군님이 앓는다는 소리에 갑자기 사람들이 다음번 장군님(후계자)에 대해 관심이 높아졌다”면서 “수령님도 지금 장군님 나이 때 후계자를 내세웠는데 아직까지 장군님은 후계자를 내세우지 않는 게 이상하지 않느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소식통은 그러나 “사람들이 아직까지 장군님의 가족이나 자식들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후계자 문제에 대해서도 이상한 말들을 많이 하는 편”이라며 “누구는 ‘딸만 네 명 있어서 후계자를 못 고른다’고 하고, 누구는 ‘아들이 한 명 있는데 한쪽 다리가 짧은 불구자(장애인)여서 못하는 것’이라고도 한다”고 말해 일반 주민들이 김정일 가계(家系)에 대해 전혀 알고 있지 못하고 있음이 확인됐다.
그러면서 “사람들이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이제는 다들 (김정일에 대해) 지겨워한다”면서 “그러니까 자연히 후계자 문제에 관심을 돌리게 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