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정일-정운, 같은 세습 다른 코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그의 셋째 아들 모두 절대 권력자인 부친의 권력을 세습했거나 할 예정이지만, 그 코스는 확연히 달라 이것이 ‘김정운 후계체제’의 권력구도와 성격, 견고성 등 앞으로 예상되는 ‘김정운 정권’의 전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위원장은 ‘왕자’로서 노동당 지도원(현재의 부원)으로 첫 공직을 시작했으나, 정운은 ‘왕세자’로서 국방위 지도원 직책을 부여받았다.

김 위원장이 1964년 김일성종합대학 졸업 후 당 조직지도부에 들어간 것은 후계자 신분으로서 후계 수업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김일성 주석의 아들에 대한 예우로서 공직을 받은 것이다.

김 위원장이 노동당 지도원으로 공직을 시작할 때만 해도 김일성 주석의 후계자로 누가 될지는 아무도 예상하기 어려웠다.

당시는 김일성 주석의 동생이자 김정일 위원장의 삼촌인 김영주 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명예부위원장이 당 조직지도부장으로서 사실상 2인자로 군림할 때였다.

특히 후계자리를 두고 김 위원장과 권력투쟁을 벌였던 이복 동생 김평일 현 폴란드 대사의 생모이자 김 주석의 두번째 부인 김성애의 파워가 부상하던 시점이었다.

지난 1월 북한 노동당 당역사연구소가 펴낸 ‘위대한 수령 김일성 동지 선군혁명사’라는 책도 김 위원장의 후계준비 기간을 1964년으로 잡지 않고 1969년1월부터라고 구분했고, 북한의 온라인 매체인 ‘우리민족끼리’도 지난 2일 ‘선군정치는 어떻게 시작되었는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김일성 주석이 김정일 위원장을 후계자로 낙점한 시점이 1960년대 말이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왕자’로서 부여받은 직책을 이용해 김일성 주석과 항일빨치산에 대한 우상화 작업을 중심으로 후계자로서 능력과 자질을 증명함으로써 라이벌이었던 삼촌, 계모와 이복동생들을 모두 제치고 김 주석의 인정을 받아 당 전원회의에서 후계자로 추대되는 코스를 밟았다.

반면 정운은 공적 활동이 전무하고 공직 직책이 없던 상황에서 김 위원장이 당 조직지도부 리제강 제1부부장에게 정운을 후계자로 결정했다는 `교시’를 하달하는 형식을 통해 후계자로 내정됐고, 후계 내정자로서 직책을 정식으로 부여받아 활동을 시작했다.

대북 소식통은 “김 위원장은 후계자로 내정되기 이전에 당의 말단 직책에 들어가 일하면서 능력을 인정받아 공식 회의에서 후계자로 추대되는 과정을 거쳤다면, 정운은 현장 업무 경력이 전무한 상태에서 아버지가 먼저 비공개리에 후계자로 내정해 놓은 뒤 후계자 직책을 받아 후계수업으로 사회 첫 생활을 시작했다는 측면에서 확연히 다르다”고 말했다.

결국 김 위원장은 노동당의 밑바닥에서부터 자신의 지지기반을 구축.확대하면서 후계자에 오름으로써 김일성 주석의 후광 외에도 이것이 나중에 그의 절대권력을 뒷받침하는 토양이 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공직 및 정치활동 경력이 전무한 정운은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을 중심으로 한 국방위원회의 후견을 받으면서 후계구도를 다져나갈 것으로 보임에 따라 그가 권력을 세습하더라도 후견그룹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클 수밖에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버지에 비해 단축코스를 밟은 정운의 후계자 내정과 수업 과정은 속성으로 이뤄지는 만큼 그 권력의 독자적 기반이 아버지처럼 단단할 수 없고, 이는 김정운 후계체제가 1인지배 형태를 취하더라도 내부적으론 아버지정도의 절대권력을 행사하기 어려워 집단적 성격이 강해질 가능성을 말해준다.

일부 전문가들은 김정일 위원장조차 북한 권부와 일반 주민 사이에서 아버지 김일성 주석과 같은 ‘수령’의 위상을 확보하지 못한 채 김일성 주석의 후광에 많이 의존하고 있는 점을 들어 김정운의 3대 세습권력의 견고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들에 따르면 김정일 위원장은 스스로 빛을 발하는 ‘항성’이 아니라 김일성 주석이라는 항성의 빛을 받아야 밝아지는 ‘행성’이다. 이런 점에서 북한 스스로 김일성 주석의 생일을 ‘태양절’이라고 부르는 등 김 주석이 ‘태양’으로 불리는 것은 시사점이 크다.

결국 3대 권력자 김정운도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 권력의 정통성을 인정받기 위해선 김정일이라는 행성이 아니라 김일성이라는 항성의 빛을 받아야 하는데 김일성 주석의 후광이라 하더라도 손자 대에까지 미치자면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는 김정일 위원장이 선군정치를 내세워 국방위원회를 강화하고 후계체제도 군대를 기반으로 한 국방위 중심으로 구축해 나가려는 배경의 하나로 분석된다.

노동당이 아닌 국방위를 통해 구축된 ‘김정운 후계체제’는 어느 때보다 군사체제적 성격이 강해질 가능성을 예고한다.

북한 사회에선 노동당이 여전히 최고 영도기관이긴 하지만 북한체제의 골격과 근육과 신경망으로서 노동당은 1970년대 전성기를 지나 1980년 6차 당대회 이후엔 30년가까이 당대회도 열지 못할 정도로 쇠약해진 상태에서 그 빈 공간을 군대와 군부가 메우고 있는 실정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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