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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1일 북한 조선중앙TV에서는 ‘어머니날 경축 만수대예술단 삼지연악단 공연’이 녹화방송으로 중계됐다. 북한에서는 2012년부터 11월 16일을 ‘어머니날’로 기념하고 있는데, 이날을 기념해 열린 만수대예술단 삼지연악단 공연을 TV로 녹화방송한 것이다.
그런데, 공연 중간에 북한에서는 듣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했던 음악이 갑자기 흘러나왔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에서 나오는 ‘할렐루야’가 경음악으로 짧게 연주된 것이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는 그리스도의 탄생과 수난, 부활을 다룬 전형적인 종교작품으로 ‘할렐루야’ 부분은 클라이맥스 부분에 해당한다. 종교를 사실상 용인하지 않는 북한에서 종교음악이 TV를 통해 버젓이 방송된 것이다.
조선중앙TV가 방송한 ‘할렐루야’ 부분은 6초 정도의 분량으로 매우 짧긴 했다. 세계명곡 코너에서 백조의 호수, 로미오와 줄리엣, 환희의 송가 같은 명곡들을 연주하는 가운데 잠깐 삽입된 형식이었다. 하지만, 북한은 ‘할렐루야’가 연주될 때 자막을 통해 ‘할렐루야’라는 제목을 TV에 분명하게 표시했다. 많은 청중을 대상으로 공연이 이뤄지고 공연 내용이 TV를 통해 방송되기까지 몇 단계의 검열을 거쳤을 것으로 본다면, 짧긴 하지만 북한 당국의 승인 하에 ‘할렐루야’가 연주되고 자막과 함께 방송된 것이다.
북한이 ‘할렐루야’ 방송한 까닭은?
북한이 종교음악을 방송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종교에 좀 더 개방적인 모습을 보이겠다는 뜻을 나타낸 것일까?
그렇게 보기는 힘들 것 같다. 김정은 체제 들어서도 ‘죽어도 혁명신념 버리지 말자’며 김 씨 일가에 대한 충성만을 강요하는 북한이 신의 존재를 인정하고 신을 믿도록 하는 행위를 허용할 리 없기 때문이다. 북한과 같은 왕조적 전체주의 체제와 종교는 양립하기 어렵다.
‘할렐루야’의 연주는 북한의 문화적 다양성 확대라는 측면에서 이해해야 할 것 같다. 김정은 시대 들어 북한은 정치적인 부문의 통제는 여전히 강화하고 있지만, 문화적인 부분에서의 변화는 조금씩 시도하고 있다. 북한판 걸그룹이라고 불리는 ‘모란봉악단’의 출범이 대표적인 예이다.
아무리 폐쇄적인 사회라도 이런저런 방법으로 외부 소식이 들어오고 있는데, 예전의 칙칙한 선전 방법으로는 북한 주민들의 마음 속에 다가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북한 주민들의 높아진 눈높이에 맞춰 어느 정도 변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데, 북한 당국이 변화를 시도할 수 있는 대표적인 부분이 문화적인 부분이다. 정치적인 문제제기만 하지 않는다면 김정은도 문화 부문의 변화에는 열린 마음인 것 같다. ‘할렐루야’가 독자적으로 연주된 것이 아니라 백조의 호수나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세계적인 명곡들 사이에서 잠깐 연주됐다는 점, 헨델의 메시아에 나오는 ‘할렐루야’는 종교적 내용을 떠나 웬만한 사람은 한번쯤 들어봤을 명곡이라는 점이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할렐루야’ 넘어 정치, 경제 개방 수위 높이길…
‘할렐루야’는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이라고 한다. 연주를 한 만수대예술단 삼지연악단이나 연주를 들은 북한 주민들이 이 뜻을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노래가 북한의 공식 조선중앙TV를 통해 방송된 것은 기록에 남을만한 일이다. 김정은 체제가 문화적인 부분을 넘어 정치,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좀 더 개방적인 모습을 보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