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김영일 내각 총리는 지금 뭐하나?

북한 스스로 최고주권기구이라고 칭하는 최고인민회의 제12기 1차 회의가 9일 막을 내렸다.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는 말처럼 김정일, 장성택을 비롯한 권력자들의 서열놀음 소식만 가득했다. 북한 권력층이 인민들이 겪고 있는 배고픔과 빈곤에 대해 얼마나 무관심한지 잘 드러난다.

북한이 정상적인 국가라면 이번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영일 내각 총리가 주목을 받아야 마땅하다. 북한이 겪고 있는 경제난을 고려할 때 인민경제의 수장이 갖는 비중은 적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 관영 보도 매체들부터 김영일 총리의 존재를 철저히 외면했다.

사실 80년대 김일성이 살아있을 때에도 북한에서 ‘총리’의 위상은 지금처럼 ‘얼굴 마담’ 수준이었다. 80년대 들어서면서 북한의 경제가 점점 쇠퇴의 길로 들어서자 한때 김일성은 내각 총리를 ‘경제 사령관’으로 부르기도 했으나, 역대 총리들은 아무런 실권도 없이 ‘경제실패’에 책임을 지는 희생양이 되기 일쑤였다. 1990년대부터는 설상가상으로 인민경제는 핵·미사일 개발 같은 군수경제의 뒷전으로 밀렸다.

국가안전보위부 마약판매 담당이었던 아들이 총살당하면서 철직된 이근모 총리(86∼88년)를 뒤 이어 연형묵 총리도 자강도당 책임비서로 강등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박봉주 역시 ‘선군정치’ 시대에 군수경제에 비협조적이라는 이유로 2007년 4월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 지배인으로 좌천됐다. 이들에게는 모두 ‘경제정책 실패’라는 꼬리표가 따라붙었다.

김영일은 2007년 4월 11일 북한 제11기 최고인민회의 제5차 회의에서 박봉주 전 총리의 뒤를 이어 총리로 선출했다. 그때 김영일은 북한 내각의 육해운상이었다.

당시 북한에서 김영일의 총리 임명을 두고 박봉주의 무능력을 청산하고 북한의 경제를 활성화를 기대하는 김정일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회자됐다.

이런 김영일이 내각 총리로 임명되자마자 첫 번째로 시작한 일이 과연 무엇이었을까?

김영일 역시 김정일에 대한 ‘충성사업’부터 시작했다. 2007년은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1917년생) 탄생 90돌이 되는 해였다. 그해에 김정숙의 고향인 함경북도 회령시에서는 김정숙 탄생 90돌을 기념해 600세대의 아파트를 새롭게 건설할 계획을 세웠다.

회령시를 관할하고 있는 함경북도 도당에서는 이 주택건설을 위해 도내 1급 기업소들과 연합기업소들, 도내 각 시, 군들이 한 개 아파트씩 맡아 건설하도록 분담했다.

김정일의 총애를 받아 내각총리가 된 김영일은 함북도 회령시 유선동이 고향이다. 김영일의 입장에서는 김정일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생모(生母)의 생일 기념일 계기로 진행되는 건설 사업을 통해 최대의 충성심을 보여주는 한편, 고향 사람들의 인심도 살 수 있는 적절한 기회였다.

김영일은 부임한지 한달 만에 자신이 직접 600톤 분량의 시멘트를 싣고 회령시로 내려갔다. 감지덕지하는 건설지휘부에 시멘트를 넘겨준 김영일은 맏형과 15분간의 이야기를 나누고 다시 돌아갔다.

당시 현장에서 이를 목격했던 탈북자는 김 모씨는 “김영일이 영리한 사람이다. 기회를 제때에 잡고 꿩 먹고 알 먹는 격으로 일 처리를 잘했다. 역시 일 할 줄 아는 사람이다”는 말로서 그의 행보를 평가했다.

김 씨는 “당시 김영일 내각총리가 싣고 온 시멘트는 남한에서 북한의 수해복구용 구원물자로 들어온 물자였다”며 “사실 함북도 회령은 큰 수해를 입은 것도 별로 없어 수해복구용 시멘트가 차례질 몫도 없었을 텐데, 아마 김영일이 내각 총리라는 직함을 이용 김정일의 생모 탄생일 기념 건설 사업에 쓸 물자라고 하여 해결 받았다”고 전했다.

김 씨는 “북한에서는 김정일에 대한 충성심을 논하면 그 누구도 감히 어쩌지 못한다”고 강조했다.

2008년 1월 완료된 회령시 600세대 아파트는 결국 당 간부들 ‘잔치’로 끝났다. 일반주민들에게 배정된 주택은 없었다. 당시 주민들 사이에서는 “김영일 총리가 제 자랑하려고 시멘트는 갖고 왔지만, 완성된 살림집이 백성들에게 제대로 배정됐는지는 관심도 없었다”는 말이 나돌기도 했다.

이번 12기 최고인민회의 1차 회의에서 김영일 총리의 얼굴이 조명되지 못한 것은 북한에서 총리의 위상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된다. 따라서 김영일이 아무리 김정일에게 충성을 다한다고 해도 선임 내각 총리들이 그러했듯 ‘아름다운 퇴장’은 요원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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