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기보유 ‘핵무기’ 신고에 부정적

북핵 6자회담이 북한의 핵프로그램 신고라는 예상됐던 암초에 걸려 주춤거리고 있는 가운데 핵신고 문제에 대한 북한의 입장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3일간의 방북 일정을 마치고 평양을 출발한 6일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지난 7월 6자 수석대표회담을 마친 후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의 언급을 인용하면서 신고에 대한 북한의 기본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 신문은 김 부상이 “미국이 적대시정책을 완전히 철회하고 신뢰가 조성돼 핵위협을 더는 느끼지 않을 때에 가서 핵무기 문제를 논의할 수 있으며, 현단계에서는 현존 핵계획 포기에 대해 논의할 수 있다고 했다”고 상기시켰다.

‘현존 핵계획 포기’란 “핵무기를 더 만들지 않는 문제”와 “핵 이전을 하지 않는 문제”라고 신문은 부연했다.

이는, 북한이 ‘핵계획’과 이미 만들어진 ‘핵무기’를 분리해 미국을 비롯한 6자회담 참가국들이 신고의 대상에 포함시킬 것을 요구하는 ‘핵무기’는 앞으로 북미간 신뢰의 수준이 제고되면 논의할 수 있지만, 이번엔 신고 대상이 아니라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또한 ‘행동 대 행동’의 원칙을 주장하는 북한이 현 단계에선 ‘핵불능화-테러지원국 지정과 적성국교역법 적용의 해제’를, 다음 단계에서 ‘핵무기 폐기-경수로 지원’ 패키지를 구상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반면 미국 등은 6자회담이 한반도의 비핵화를 전제로 하고 있는 만큼, 북한이 보유한 핵무기의 수량 뿐 아니라 보관시설, 제조과정 등에 대해서도 성실한 신고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한 대북 전문가는 “북한이 핵무기의 폐기는 경수로를 대가로 실행하더라도, 적어도 신고는 해야만 6자회담 참가국들로부터 북한의 결단을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조선신보가 밝힌 북한의 입장대로라면 핵무기를 제외한 나머지 신고조건에 대해서는 북한도 이행할 용의가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우라늄 농축프로그램(UEP)과 과거 핵활동 내용, 그리고 특히 시리아와 핵협력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핵확산 관련 부분은 신고에 포함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북한이 이런 내용을 신고에 포함하더라도 과연 미국 등이 요구하는 기준을 얼마나 충족시킬 것인가 하는 대목이다.

UEP문제와 관련, 북한은 현재 고강도 알루미늄관은 단거리 로켓탄 부품에 사용했다고 해명하고 고농축 우라늄을 이용한 핵개발 의혹은 부인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미국측에선 파키스탄에서 구입한 원심분리기 등에 대해 신고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힐 차관보도 지난 1일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강연에서 “우리는 북의 UEP 의혹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갖고 있다”면서 “공개된 것만 보더라도, 칸 박사가 북한에 원심분리기 12~20개를 판 것으로 무샤라프 자서전에 나와 있고 고강도 알루미늄관에 대한 정보도 있다”고 지적했다.

시리아 등에 대한 북한의 핵확산 의혹과 관련해선, 미국은 과거 문제에 대한 책임을 묻지는 않겠지만 ‘진실 고백’을 요구하고 있다는 전문이다.

지난달 16일 뉴욕에서 북.미 관계자들이 참석한가운데 열린 비공개 간담회에서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과 빅터 차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국장 등이 북한에 대해 시리아와의 핵협력 의혹을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가 어려울 것이라고 경고한 것도 이런한 연장선에서 이해된다.

하지만 지난 9월 베이징 6자회담에 참석한 북측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부상은 “우리와 시리아와의 핵거래설은 미친 놈들이 만든 것”이라고 일축했었다.

이 회담에서 “북한은 이어 핵 물질, 기술 또는 노하우를 이전하지 않는다는 공약을 재확인했다”는 구절이 담긴 합의문이 도출됐지만, 북한이 시리아와 핵협력 의혹을 부인하는 가운데 미국이 물증을 쥐고 있다면 앞으로 어려움을 낳을 대목이다.

과거 핵활동은 다른 문제에 비해 북한의 성실한 신고가 기대되지만 이 역시 북한이 추출한 플루토늄의 양 등에서 북.미간 차이가 클 경우 대북 신뢰에 커다란 금이 갈 수 있다.

현재 미국측은 북한이 50㎏ 안팎의 플루토늄을 추출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는 만큼, 신고량이 이러한 추정치에서 크게 벗어난다면 북한의 핵신고 전반의 신뢰성에 대한 논란이 불거질 수 있다.

김성배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비핵화 프로세스가 비교적 원만히 진행되고 있지만 불완전 신고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며 “50㎏으로 추정되는 플루토늄 추출량이 현격히 미달되거나 고강도 알루미늄관과 원심분리기에 대한 해명이 충분치 못할 경우에는 테러지원국이나 적성국교역법 해제 일정도 차질을 빚을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신고에서 차질이 생겨 6자회담이 난항을 겪게 되면, 2008년 한반도 정세의 대반전을 기대하는 북한의 희망이 물거품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내년 상반기가 지나면 미국의 대통령 선거전이 본격화되고 부시 행정부의 업무 추진력이 크게 떨어지는 게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자칫 2000년처럼 북한이 앞뒤를 재다가 실기하는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 경우 남한의 새 정부도 안팎으로부터 대북정책의 재고 압박을 받을 것이고, 그에 따라 ‘2007남북정상선언’을 통해 합의된 다양한 남북 협력사업도 이어지기 어렵게 된다.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이 북한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과 만나 “핵 프로그램 등의 신고를 성실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도 이때문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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