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급변시 한미연합사가 더 중요한 이유

노무현 대통령은 8월 13일 몇몇 언론사들과의 오찬 자리에서 작통권 문제와 관련한 자신의 관점을 제시했다. 김정일 체제가 붕괴되는 등 북한 내 급변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한국군이 단독으로 작통권을 가져야 된다는 것이다.

“김정일 체제가 붕괴되는 등 급변사태가 불거졌을 때 그 상황에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 중국은 국경까지 미군이 오는 걸 바라지 않는다. 북한 비상상황시 미국과 중국이 한국을 제쳐놓고 북한 문제를 처리할 우려도 있다.”

이같은 대통령의 시각은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자세히 검토해 보면 감상적 민족주의에 지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의 급변사태로 한국군의 개입이 필요한 시기는 김정일 체제 붕괴 이후 내전과 같은 사태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럴 경우 한국을 포함하여 국제사회가 개입할 명분은 세 가지 정도다.

첫째, 수많은 난민이 북-중 국경선과 휴전선 등으로 넘어와 자국의 안보를 위해 외부에서 개입해야 할 당위성이 생길 때다. 둘째, 북한내 내전상황, 보복 등으로 수많은 피해자가 발생해 인도주의적 무력 개입이 필요할 수도 있다. 셋째, 북한내 WMD(대량살상무기)를 안전하게 통제하기 위해 개입해야 할 필요성도 생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두 가지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하나는 WMD 통제와 인도주의적 개입의 명분으로 유엔 안보리가 북한 문제를 다루게 될 경우다. 유엔사가 정전협정의 일 주체로 한반도에 여전히 존재하는 한 북한 급변사태시 유엔이 개입할 가능성은 아주 높다. 만약 유엔이 개입할 경우 북한 미래에 대한 열쇠는 유엔 안보리 이사국인 미국과 중국이 쥐게 된다. 지난 7월 북한 미사일 유엔 결의안 통과 과정에서도 확인되었듯이 한국의 유엔 안보리에 대한 영향력은 거의 없다.

현존 한미연합사 체제의 경우 한국은 미국과 함께 움직이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북한의 운명을 안보리, 주로 미-중의 타협에 의해 결정할 경우, 한국은 미국과 함께 북한 문제에 대한 지분을 자동적으로 가지게 된다.

그러나 한미 연합사가 해체될 경우 한국은 배제된 채 북한의 운명을 안보리 이사국인 미국과 중국에게 맡겨야 되는 상황에 처해질 수 있다. 물론 한-미 양국이 외교적으로 협의할 수 있는 여지는 있지만 효율성의 측면에서 한미 연합사 체제가 존속하는 경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차이가 난다.

北 급변사태시 한-미-중 합동이 현명

또 다른 문제는 북한의 재건 과정과 관련된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관점대로라면 한국군이 북한에 단독 진주하는 상황을 상정할 수 있다. 북한의 급변사태 시 헌법의 영토 조항을 내세워 한국군이 북한에 진주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북진 통일이다. 극단적 민족주의, 국가주의자들은 이런 시나리오를 선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 북한의 질서 유지 과정에서 한국군이 감당해야 할 인적, 물적 손실은 지금은 예상키 어려울 정도로 어마어마해질 수 있다. 북한이 극도로 병영화된 사회임을 감안할 때 급변사태시 북한군 내부에서의 상호 충돌을 예상하기란 어렵지 않다. 때로는 그 사태가 남한으로까지 번질 수 있다. 이같은 사태를 한국군 단독으로 해결해낼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어리석은 생각이다.

또 설사 한국군 단독으로 해결할 수 있다 하더라도 북한의 천문학적인 재건 비용을 한국이 모두 떠맡아야 되는 부담을 질 수 있다. 북한의 재건 비용을 한국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을 자초하는 것이 과연 현명한 것일까?

지금은 20세기 초반과 같은 제국주의-식민지 구조가 재현되는 것은 불가능하다. 설령 미국 또는 중국 군대가 단독으로 북한에 진주한다 하더라도 미국, 중국이 북한을 자국의 종속국으로 만들지는 못한다. 북한도 어차피 민주화되어 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 한국은 천문학적인 재건 비용을 미국, 중국과 나누어 가질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도 미국과 중국을 북한 사태 해결에 같이 개입시키는 것이 현명하다.

감상적 민족주의에 빠져 북한의 치안과 재건을 한국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하는 상황을 자초하는 것은 북한을 위해서도, 남한을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따라서 북한의 급변사태 시 북한의 운명을 미국, 중국에 맡겨둘 수 없기 때문에 작통권을 우리가 가져 와야 한다고 주장하는 노 대통령의 시각은 여전히 자주와 동맹을 대립적으로 보는 구시대적 가치관에 기초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사무총장(경제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