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에서 일제 승용차가 사라지고 있다. 2년 전인 2010년도 까지만 해도 북한 도로에서 운행 중인 승용차의 대부분은 도요타, 닛산, 미스비시, 혼다 등 일본 자동차 브랜드를 달았다. 그러나 최근엔 일제 승용차, 밴(북한에서 롱그반(long van)으로 부름) 등을 찾아보기 어렵게 됐다고 한다.
함경북도 청진 소식통은 30일 데일리NK와 가진 통화에서 “국방위원회가 2010년부터 일본 승용차를 모두 까버리라고 지시한 이후 지금은 일본산 승용차나 롱그반을 거의 볼 수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폐차 대상은 일본산 승용차, 봉고차와 1.5t 이하 화물 겸용 승합차다. 소식통은 또 “당국은 앞으로 1, 2년 안에 일본산 화물차도 없앨 예정”이라고 말했다.
당국의 이같은 조치는 2006년 김정일의 일제 차량 폐기 지시에 따른 것이다. 당시 김정일은 원산-평양 고속도로에서 자신의 차를 앞지른 일제 차량을 보자 “저 놈의 일본차을 보면 눈에서 불이인다”면서 일본산 자동차 전량 폐기 지시를 내린 것이 발단이 됐다는 설이 있다.
다른 탈북자는 “일본산 밴승용차에서 커텐을 치고 도박이나 마약 등 각종 퇴폐행위가 이뤄진다는 보고가 올라오자 그렇지 않아도 일본의 대북정책에 화가 난 김정일이 일본산 차량을 모두 없애라는 지시를 내린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북한의 일제 자동차 근절 정책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있다. 2008년 함경북도 남강무역회사(외화벌이 사업소)가 일제 중고 자동차를 나진항을 통해 수입해왔다. 그러자 함경북도 당서기가 중앙에 전량 폐기하겠다고 보고하자 당국이 이를 승인했다.
함경북도 당비서는 수입된 승용차 300여대를 함북도 경기장에 집결시켜 놓고 주요 간부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포크레인으로 차량 전부를 내려 찍어 파철로 만들었다.
일반 승용차에 대한 폐차 작업은 2010년 국방위원회 근절 지시 이후 본격화됐다. 김정일 지시 이후 대체 차량 확보에 4년이 걸렸다. 평양시와 당, 행정기관, 보위기관에서는 1년만인 2007년부터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2011년에는 전국적으로 공장, 기업소, 외화벌이 사업소에서 운영되는 승용차도 본격적으로 폐차시켰다.
소식통은 “당시 함북도당과 도 인민위원회에서 직접 폐기한 일본차만 해도 수 백대가 넘는다”고 밝혔다. 함경북도 당 관계자의 말을 빌어 “전국적으로 수 십 만대의 온전한 승용차가 처분됐다”고 덧붙였다.
일제 자동차를 대체하기 위해 김정일은 2010년 10월 전국 도당에 선물차를 내렸고, 도당에서는 대대적인 선물 전달 모임을 개최한 바 있다.
도당 부장급 이상은 중국산 승용차를, 구역 당 비서·인민위원회 위원장에게는 러시아산 승용차를 전달했다. 공장과 기업소 지배인 당 비서는 북한에서 생산되는 ‘휘파람’ ‘뻐꾸기’를 구입해 이용하라는 지시가 있었지만, 3만 달러가 넘어 차량 구입이 힘들자, 할인·할부로 구입토록 했다.
김일성도 1990년대 초반 일본차 폐기를 지시한 바 있다. 당시 금수산태양궁전(당시 기념궁전)에서 물자를 하역하던 일본산 이스즈 화물차를 목격한 김일성이 ‘항일 빨치산을 토벌하기 위해 토벌군을 실어 나르던 이스즈가 이제 내 집안에까지 들어 오게 하느냐’며 노발대발했다고 한다.
당국의 일본차 폐기 조치에 대해 간부들조차 “경제 형편은 고려하지 않고 자기(김정일) 기분에 따라 마구잡이로 지시한다”며 부정적인 견해를 표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기업소에서는 당국이 대체 운송수단을 제공하지 않아 일본산 자동차를 밤에만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북한에서는 1980년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일본 중고 자동차를 수입해 중국에 판매하는 중계무역이 성행했다. 가격 대비 성능이 좋았던 일본차는 북한에서도 인기였다. 승용차는 1500달러에 수입해 중국에 6000달러에 팔 정도로 큰 차익을 남겼다. 그러나 2000년대 중후반 일본이 납치자 문제로 대북 경제제재에 돌입하자 북일무역은 중단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