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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제 5차 2단계 북핵 6자회담이 미·북간 현격한 입장차이만 확인한 채 별다른 성과 없이 22일 종료된다.
이번 회담 과정에서 미국은 북핵 폐기를 위한 초기이행조치와 상응조치를 세부적으로 담은 ‘공식제안’을 내밀었지만 북한은 선(先) BDA 해결, 선 제재해제를 고집했다.
회담 참가국들은 이날 오후 마지막 회동을 갖고 입장 조율에 나섰지만 회담 재개 의지만 확인한 데 그쳤다. 중국은 회담 종료와 함께 발표할 의장성명에서 참가국들의 입장 확인에 만족하고, 내년 1월에 재개될 5차 3단계 회의를 기약할 것으로 보인다.
핵폐기에 따른 보상방안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협상의 진전에 상당한 의욕을 보였던 미국 대표단은 다소 허탈한 표정이다. 크리스토퍼 힐 수석대표는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탐색전 성격의 회담이었지만 실망감이 깊게 묻어나는 표현이다.
힐 대표는 “그들(북한 대표단)은 평양으로부터 BDA(방코델타아시아)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공식적으로 6자회담 주제에 대해 얘기하면 안된다는 훈령을 받았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폐기에 따른 미국의 보상방안에 김계관 북측대표가 관심을 보였지만, ‘BDA 외에는 응하지 말라’는 평양의 훈령이 있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힐 대표는 “우리는 BDA를 얘기하러 온 것이 아니다. BDA는 다른 메커니즘을 통해 다루기로 했다”며 비핵화와 BDA 협상 분리 원칙을 분명히 했다.
애초에 북한은 이번 베이징 회담을 ‘BDA 회담’으로 몰아가려는 의도를 분명히 했다. 북한 입장에서는 비핵화 논의는 BDA 문제 해결용에 그치려 하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북측 입장을 대변하는 조총련 계열의 조선신보는 회담 종료를 앞두고 “조선(북한)은 경제제재 해제조치를 통해 미국의 정책전환 의지를 판별하겠다는 입장”이라며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 비핵화 공약 이행도 상정될 수 있다는 의향을 미국측에 전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 김계관 대표는 18일 기조연설에서 “현 단계에서 핵무기 문제를 논의하고자 할 경우에는 핵군축 회담 진행을 요구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모든 요구사항을 먼저 강하게 늘어놓는 북한의 협상전술이지만, 이는 스스로 핵 보유국임을 공식화하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향후 북한은 대외적으로 더욱 공공연히 핵 보유국 주장을 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물론 협상국면임을 내세워 중국과 한국을 묶어두고 국제사회의 추가제재를 피해가기 위해 6자회담에는 꾸준히 출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5차 2단계 6자회담은 미국의 협상 진전을 위한 의지와 구체적인 상응조치가 주목받았지만, 북한의 선 제재해제와 핵 보유국 주장의 암초에 걸린 꼴이 됐다. 평양 지도부가 BDA와 한반도 비핵화 협상을 분리하지 않을 경우 향후 회담 전망도 비관적이다.
만약 3단계 회담에서도 이번처럼 북한이 선 제재해제를 계속 요구하며 북핵협상을 외면할 경우 미국 내에서 6자회담 무용론이 더 힘을 얻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