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군수공장 일꾼, 탄약팔아 생계유지

▲ 95호 공장의 분공장이 위치하고 있는 혜산시 위연동 전경 <사진:자유북한방송>

최근 북한 양강도 지역 군수공장 노동자들이 공장 설비뿐 아니라 완제품 실탄까지 중국 밀수꾼들에게 팔아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져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삼지연정밀기계공장>에서 일하다 최근 탈북한 문태섭(가명, 36세) 씨의 증언과 일본의 대북 NGO ‘RENK'(구출하자 북한민중 긴급행동 네트워크)가 북한주민으로부터 입수한 ’95호 공장 실태’에 관한 자료가 상당부분 일치하고 있어 그 신빙성을 더 해주고 있다.

<삼지연정밀기계공장>은 양강도 혜산시 검산리 왕덕에 위치한 군수공장으로, 일명 ’95호 공장’으로 불리며, 7.62mm 자동보총(소총)탄을 비롯, 기관총탄, 권총탄, 소구경보총탄 등 북한의 실탄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삼지연정밀기계공장>은 북한군의 주요 개인화기인 자동보총 탄약을 전담 생산하고 있을 뿐 아니라 아프리카, 중동 국가의 탄약을 주문생산 하는 공장으로 알려지고 있어, 최근 이 공장 노동자들의 탄약밀매 행위는 10년 전부터 시작된 김정일 체제의 선군정치가 본격적인 누수현상에 직면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탄약생산 군수공장에도 배급 끊겨

5월 4일 중국 창바이(長白)에서 만난 문씨는 “양강도 지역은 군수공장조차 배급이 거의 끊겨, 굶주린 노동자들이 이미 만들어진 탄알뿐 아니라 용접봉도 내다 팔아 끼니를 떼우고 있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지난 4월 중순 탈북, 현재 중국에 머물고 있는 문씨는 혜산시에 있는 <삼지연정밀기계공장>에서 8년 동안 일한 전형적인 군수공장 노동자다.

다음은 문씨와의 일문일답.

<삼지연정밀기계공장>에 대해 설명해 달라.

<삼지연정밀기계공장>은 혜산시 검산리 왕덕에 위치하고 있는데, 북한에서는 <95호공장>으로 불린다. 주로 자동보총 탄약을 만들고 있으며 기관총탄과 권총탄, 소구경 보총탄도 만들고 있다. 혜산시 옆에 있는 대오시천구에 화약저장고를 가지고 있고, 혜산시 위연동에는 분공장을 갖고 있었는데 지난해 봄에 박격포탄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독립했다. 공장에 다니는 노동자들은 2천 명이 조금 넘는다.

공장규모로 봐서는 상당히 큰 군수공장 같은데?

그렇다. 양강도에서도 손에 꼽히는 군수공장이다. 공장에는 국방대학을 졸업한 과학자들도 많다. 아프리카나 중동나라들에서 주문받은 탄약을 생산하기도 한다. 전시(戰時)에도 생산에 지장이 없도록 자체의 디젤원동기도 보유하고 있고, 자체 수도설비도 갖추고 있다. 위연발전소와 일건변전소를 통해 전력도 공급받고 있다.

최근 공장의 생산 현황은 어떤가?

이전에 공급되던 자재들이 제대로 보장되지 못해 며칠씩 생산이 중단되는 경우가 많다. 지난 2월에는 열흘씩이나 생산을 멈춘 적도 있다. 탄피를 만들 때 사용되는 가성소다와 비누가 공급되지 않아 노동자들의 임금으로 사다가 썼다. 선반기의 드릴 날이 부족해서 장마당에서 사다 쓰는 경우도 많다. 국가에서 생산에 필요한 자금을 대주지 않으니까 ‘8.3인민소비품 생산작업반’을 꾸려서 못, 경칩, 나무곤로 같은 것들을 만들어 장마당에 내다 팔아 부족한 자금을 충당하고 있다.

그렇다면 탄약생산에 필요한 자재는 어떻게 마련하나?

모두 외국에서 수입한다. 탄피생산에 필요한 강판을 모두 러시아에서 사온다. 우리 공장에 강판을 보내주던 성진제강소의 냉간압연설비들이 가동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탄약함을 만드는 아연로판은 중국에서 사서 쓴다. 탄약함을 칠하는 데 쓰이는 도색제와 방부제도 중국산이다. 원래 군수품들은 모두 풀색(국방색)으로 칠해야 하는데 중국 사람들이 군사적 용도에 쓰이는 풀색 도색재료만 비싸게 값을 불러서 요즘에는 회색 재료로 바꾸고 있다.

자동차 휘발유 없어 원조식량 못 받아

노동자들에 대한 배급 상황은 어떤가?

공장에 대한 국가의 지원도 그렇고 노동자들에 대한 배급도 그렇고 아주 한심하다. 2004년 한해 동안 노동자들에 대한 배급량이 통강냉이로 절반밖에 되지 않았다. 우리 공장은 군수분야이기 때문에 가끔 제2경제위원회에서 식량배급을 승인해주는 경우가 있지만, 그 양(量)도 얼마 되지 않고, 식량을 운반하러 갈 수단이 부족하니까 이마저 쉽지 않다.

식량을 운반하러 간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제2경제위원회에서는 외국의 지원물자가 들어오는 시기가 되면 각 군수공장에 ‘식량배급’을 승인해주는데, 기업소와 공장들은 자체적으로 마련한 화물차를 이용해서 식량을 얻어와야 한다. 외국의 지원물자가 들어오는 창구는 청진, 흥남, 김책 등 항구이다.

▲ 선군정치 10년, 북한은 군수공장들조차 통제되지 않는 체제누수현상을 보이고 있다.

거기까지 차를 가지고 가서 식량을 받아와야 하는데, 차량의 휘발유는 자체적으로 구입해야 한다. 식량을 받고 싶은 노동자들에게 얼마씩 돈을 걷어 휘발유를 사올 수도 있는데, 그 값이나 장마당 쌀값이나 차이가 없다. 이러나 저러나 공장 노동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공장 노동자들의 생활 수준은 어떤가?

<95호 공장>의 노동자들은 혜산시에서 제일 가난한 사람들이다. 주로 위연리나 감산리 일대에 살고 있는데 공장에서는 배급도 못주면서 노동자들을 붙잡고 있지, 농사지어 먹을 텃밭도 부족하지, 다른 지역 사람들처럼 장사를 해보려고 해도 위치가 너무나 불리해서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다.

배고픈 노동자들 탄알까지 내다 팔아

왜 국경을 넘었나?

먹고 사는 것이 너무 힘드니까, 공장에서 일 끝나고 집에 올 때 탄알 속에 들어가는 아연을 조금씩 챙겨서 나왔다. 나만 그런 것은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다 조금씩 챙긴다. 이것을 모아서 중국과 거래하는 사람들에게 몰래 파는데, 잘 받으면 아연 1kg에 조선돈으로 300원에서 320원쯤 받는다. 어떤 사람은 탄알을 3~4개씩 숨겨가지고 집에다 감추어 놓는데, 중국 상인들 중에는 자동보총 탄알을 사는 사람도 있다. 5월부터 양강도 보위사령부에서 우리 공장을 검열한다는 소문을 듣고 중국으로 나올 결심을 했다. 솔직히 나도 떳떳한 처지는 아니니까 검열에 걸리는 날에는 어떤 꼴을 당할지 모른다.

노동자들이 자재나 탄알을 몰래 빼돌리는 것을 공장 간부들은 모르고 있나?

다 알고 있다. 공장 차원에서도 단속을 하긴 한다. 냉간압연에 쓰이는 중국산 콩기름을 노동자들이 훔쳐갈까봐, 중국에서 수입해 올 때부터 여러 가지 화학 첨가물을 섞기도 한다. 하지만 원칙대로 배급을 못주고 있다는 것을 간부들도 다 느끼고 있기 때문에 엄격하게 통제하지 못한다. 노동자들은 비누, 가성소다, 용접봉, 강판, 아연도판, 탄알생산용 공구들을 장마당의 밀수꾼들에게 내다 팔고 있는데, 그래봐야 배급 없을 때 하루하루 입에 풀칠하는 수준이다. 그러니까 간부들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98년에 공장 안전부장 총살

보위사령부가 검열에 나서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공장은 연간 2백만 발 이상을 생산해야 하는 과업이 주어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 각 부대로 보내지는 탄약은 목표량의 절반도 안 된다. 우선 배급이 안 되니까 봄, 가을철 농사일이 바쁠 때는 노동자들이 공장에 나가질 않는다. 평소에도 탄약 생산에 필요한 자재들이 원활히 공급되지 않기 때문에 결국 1년에 절반 이상은 공장 가동이 중단되는 것이다. 국가가 원하는 생산량에 턱없이 모자라니까 보위사령부가 나선다고 들었다.

보위사령부 검열이 나오면 어떻게 하나?

1998년 보위사령부 검열에서는 공장의 안전부장이 총살 당한 적도 있다. 97년부터 굶어 죽는 사람이 생겼다. 그때는 간부고 노동자고 죄다 자기들 먹고 살기에 바빴기 때문에 공장의 모든 자재와 설비들을 다 내다 팔았다. 김정일 위원장이 이 사실을 전해 듣고 평양보위사령부에 특별 검열을 지시했는데, 그때 끌려간 지배인과 기사장은 지금도 소식을 모른다. 당시 안전부장은 화약을 중국에 팔아먹었다는 죄로 총살당했다.

군수공장도 통제되지 않는 체제누수 현상

한편, 일본의 NGO ‘RENK’에 따르면 2003년 말부터 양강도 지역의 군수품 밀수가 활발해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RENK’의 한 관계자는 “양강도에는 인민폐, 엔화, 달러 등을 불법적으로 교환하는 환전시장들이 발달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장마당에는 중국 상인들과 거래하고 있는 밀수상인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고 설명했다.

양강도는 자강도와 더불어 전통적으로 북한의 군수시설들이 밀집되어 있으나 원래 농지가 부족하고 배급상황도 점점 악화되어 97~99년처럼 군수품에 대한 밀수가 유행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중국 옌지(延吉) = 김영진 특파원kyj@dailynk.com
박인호 기자 park@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