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이하 조평통)가 30일 ‘남북간 정치군사적 합의 무효화 선언’을 한 배경에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전환시키기 위한 압박 수단이라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조평통은 이날 발표한 성명에서 지난해 방미 중 이명박 대통령의 ‘자유민주주의체제하의 통일’ 발언, 북한인권, 대북 전단살포, 급변사태대비, 선제공격론 등을 거론하면서 “북남 합의사항들을 무참히 파괴, 유린했다”며 남북간 모든 정치군사적 합의의 무효화를 선언했다.
또 남북기본합의서의 부속합의서 중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관련한 내용에 대해서도 ‘폐기’를 선포했다.
조평통의 이번 성명은 지난 17일 ‘대남 전면대결 태세’를 선언한 북한군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에 이은 것으로, 조평통이 북한 당국의 대남정책을 대외적으로 선전하는 기구라는 점에서 이번 성명은 그동안의 위협수준을 한 단계 높인 것이라는 평가다. 일부에서는 국지전 등 군사적 행동을 감안한 ‘최후통첩’이라는 해석도 제기된다.
송대성 세종연구소장은 “남한 정부가 6·15나 10·4에 대해 무시하니까 우리도 남북기본합의서 등 남한이 중시하는 선언을 무시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며 결국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폐기시키기 위해 남남갈등을 유발하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북한이 대남 압박 수준을 상당히 높인 것”이라며 “북한의 군사도발가능성에 대비가 필요한 시점에 왔다”고 말했다.
김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은 “대남 위협수준을 한 단계 올려 남한당국에 책임을 전가하면서 대북정책 전환을 압박하는 것”이라며 “말로써 하는 위협수준 중 ‘최고조’로 행동을 하기 위한 명분축적”이라고 해석했다.
나아가 성명은 새로 출범한 미국의 오바마 행정부에 ‘대화에 나서라’는 압박용 메시지의 성격도 있는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은 북핵문제에 주목하는 미국에 당면한 한반도 문제의 복잡성을 부각시켜 향후 재개될 미·북간 접촉과정에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행보라는 해석이다.
실제 성명은 NLL관련 언급에 있어 ‘NLL은 조선전쟁 교전 일방인 미국이 일방적으로 그어놓은 불법·무법의 선’이라고 말해 미국 책임론을 부각시켰다.
이에 대해 송 소장은 “북한이 NLL조항 폐기를 언급한 것은 미국에 ‘대화에 나서라’는 압박용 메시지”라며 “동시에 미국이 대(對)한반도 정책을 검토하는 과정에서 ‘한미공조’를 테스트하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유 교수는 “미국과 새로운 협상을 준비하는 상황에서 북핵문제만이 아닌 기타 군사적 상황에 있어서도 한반도 문제는 복잡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부각하는 것”이라며 “한반도 문제 등에 북한이 주도권 또는 영향력을 과시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해 미국과 전반적인 협상을 해나가는데 있어 기선을 잡고 있다는 것을 전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북한이 조평통 성명을 통해 정치군사적 합의와 NLL조항 무효화 등 말로 할 수 있는 최고조의 위협을 하고 나섬에 따라 이어질 북한의 대남전략에도 관심이 집중된다. 일단 대북 전문가들은 국지적인 군사적 도발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송 소장은 “북한의 서해상 도발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면서 “우리는 교전 수칙과 굳건한 ‘한미공조’하에 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 교수는 “이명박 정부를 압박하고, 국제사회에 불만을 표출하면서 국제적 영향력과 실리를 동시에 추구하면서 내부 결속을 다지기 위한 것”이라며 “북한이 행동에 나설지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긴장을 조성하는 것만으로도 대외, 대남, 내부적인 이득을 챙기고 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북한이 ‘사상과 제도의 존중’ ‘비방중상 중지’ ‘무력충돌 방지’ 등의 문제들만 거론하면서 ‘정치군사적 합의’의 무효만을 선언했기 때문에 당분간 개성공단 등 경협과 관련한 위협 조치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대북 전문가는 분석했다.
특히 북한 김정일이 중국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의 방북 당시 면담에서 ‘중국과의 협력을 통해 6자회담의 진전을 희망한다’ ‘(6자회담)각 당사국들과 평화적으로 함께 지내기를 희망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져 이번 조평통의 성명이 북한의 극단적인 ‘행동’을 염두에 둔 것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김 연구위원은 “NLL이나 동해안에서 국지적인 군사적 위협을 할 수 있다”면서도 다만 “정치군사적 합의 무효만을 선언했기 때문에 남북간 경협이나 개성공단 등의 무효화로 이어질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
유 교수도 “김정일이 왕자루이 부장과의 면담과정에서 한 발언이나 미국과의 새로운 협상을 준비하는 상황을 볼 때 극단적인 행동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