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열린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에는 6.25전쟁 중 전사처리됐던 4명의 국군출신 이산가족이 백발로 재남 가족들을 만나 주목받고 있다.
북측이 우리 측에 이산가족 상봉단에 올린 4명은 북측 최고령인 리종렬(90) 씨를 포함, 리원직(77) 씨, 윤태영(79) 씨, 방영원(81) 씨 등이다. 특히 이들은 정부 당국이 북측지역 생존자로 파악하고 있는 약 500여명의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고 ‘전사처리’로 돼 있었다.
국방부 관계자는 31일 “탈북자나 귀환 국군포로, 남아 있는 가족, 같은 부대에 있었던 사람 등의 증언을 토대로 6.25 전쟁 중 발생한 국군포로 중 약 500여명이 북측지역에 생존하고 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통해 생존이 확인된 국군출신 북측 이산가족 4명의 ‘지위’에 대해서는 이번 상봉행사가 끝난 뒤 가족들의 의사에 따라 결정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전사자’로 계속 둘지, ‘국군포로’로 변경할지 여부에 대해 가족들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1957년에 전사자로 일괄 처리됐던 국군 4명의 생존이 이번에 확인됨에 따라 국군포로 현황을 추가로 조사할 방침이다. 그러나 현재 국방부는 탈북자나 귀환포로의 진술 등을 통해 사실관계가 확인될 때마다 국군포로 명단을 수정해 왔던 그동안 방식으로 한계가 분명해 북한 당국의 협조가 불가피한 사항이다.
군 관계자는 “정확한 조사를 위해서는 북한의 협조가 필수적인데 북한은 국군포로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있어 협조를 얻기 어렵다”고 밝혔다.
정부 당국자는 이산 상봉에 국군포로가 포함된 데 대해 “본인들(국군포로들)의 의사는 확인하기 어렵지만 국군 출신들을 등장시켜 ‘국군포로 납북자는 없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그러나 북측이 이번 상봉에서 국군출신 이산가족을 4명씩이나 1진 상봉행사 97가족에 포함한 것은 나름의 계산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북한은 그 동안 국군포로에 대해 ‘단 한 명도 없다’는 입장을 고수해온 상황에서 4명을 상봉 명단에 포함시킨 것은 일종의 남측의 관심 불러일으키기 일 가능성이 있어 보인다.
북측은 이달 26~27일 개성서 열린 남북적십자회담에서 북측이 이산가족 상봉 정례화 조건으로 ‘쌀 50만t과 비료 30만t’을 요구한 바 있다. 올해 여름 수해때에도 대한적십자 측에 ‘쌀’을 적시해 구호지원품을 요구했을 만큼 적극적인 태도를 보인 바 있다. 이번에도 남측의 적극적인 반응을 유도하기 위한 제스쳐일 수 있다.
북측의 상봉자 명단에 ‘국군출신’이 포함된 경우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에도 ‘국군출신’이 1명이 포함 됐었고, 지금까지 18차례 진행돼 오면서 종종 있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출신성분 분류 철저히 관리해 오고 있는 북한 당국이 건강 상태도 극히 나쁜 4명을 상봉대상에 포함한 것은 나름의 메시지를 포함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리종렬 씨는 전쟁 중 입은 총상으로 다리가 불편한 상태이고 한쪽 눈도 시력을 잃은 상황이다. 리종렬 씨는 북에서 뇌출혈을 일으켜 죽을 고비를 넘긴 것으로 알려졌고, 목소리도 가늘고 기억도 또렷하지 않은 것도 뇌출혈의 영향 때문이라는 게 남측 가족들의 설명이다.
때문에 리 씨에 대해서는 북측의 의료진들이 근거리에서 지키며 건강상태를 수시로 체크하는 모습도 보였다. 남측 가족들은 “기억이 오락가락 할 정도로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다”며 “걱정이 참 많이 된다”고 말했다.
그동안 정부는 국군출신 외에도 납북자(전시·전후) 등을 ‘특수이산가족’으로 분류, 상봉행사에 포함해 왔다. 이번 상봉행사를 준비하면서는 남북 각 500여명의 생사확인 명단에 과거보다 많은 인원을 포함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통일부는 상봉행사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에서 북측의 반발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국군포로’라는 표현 대신 ‘국군출신 이산가족’이란 표현을 당부했다.
금강산 현지에서 이뤄지고 있는 공동취재단도 이들에 대한 취재를 자제하고 있는데, 지나친 관심이 북측의 민감한 반응을 불러 일으켜 행사가 지연되는 등 불필요한 마찰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