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국가차원 위폐제조 뚜렷한 3大 이유

▲ 한국에서 발견된 5000원권 위조지폐. 정교한 위폐 제조는 대단히 어렵다.

가령 당신이 돈이 너무도 궁한 나머지 ‘위조지폐라도 만들어야겠다’는 한심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고 하자. 얼마짜리 위폐를 만들겠는가?

당연히 고액권을 만들어낼 것이다. 한 장 위조하는 데 컬러복사비 1000원을 들여서 1000원권 지폐를 만들 바보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위조달러도 대부분 ‘100달러’권이다.

사실 만들려고 생각하면, 위폐를 만드는 방법은 쉽다.

요새는 복사기와 컴퓨터가 발달해, 컬러복사기로 정밀하게 복사하거나 스캐너로 읽어 고해상도 프린터로 출력하는 방법이 있다. 제조 비용은 몇 백 원밖에 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발각되면 교도소에서 최소한 몇 년 정도는 콩밥을 먹을 각오를 해야 한다.

나라마다 다르지만, 누군가에게 직접적으로 상해를 입히는 행위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위폐에 대한 처벌은 다른 범죄에 비해 엄격하다. 경제질서를 뒤흔드는 파괴행위이기 때문이다. 지난 2000년 중국은 위폐와의 전쟁을 벌인 적이 있는데, 그 해 8월에 적발된 위폐제조 혐의자 16명 가운데 7명을 재판 두 달만에 사형시켜 버리기도 했다.

고작 과자 몇 봉지 사려고 위폐를 만들었다면, 그로 인해 치러야 할 대가는 너무도 크다. 그래서 위폐를 만들려면 대담한(?) 목표 아래 ‘잘’ 만들어야 하고 ‘대량으로’ 만들어야 한다.

종이, 기계, 잉크 모두 정부차원 거래

그런데 위폐를 질 좋게, 대량으로 만드는 방법은 매우 어렵다.

우선 위폐를 만드는 ‘종이’가 문제다. 지폐를 만드는 종이는 펄프로 된 일반 종이가 아니다. 지폐의 원료는 면화(棉花)다. 지폐는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도 헤지지 않도록 질겨야 하고, 땀이나 얼룩이 묻지 않아야 하며, 쉽게 색이 바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펄프보다는 면화, 즉 솜이 훨씬 유리하다.

면화로 지폐의 종이를 만드는 초기단계부터 여러 가지 특수도료를 첨가해 위폐와 구별되도록 한다. 지폐를 만드는 이러한 특수종이는 국제시장에서 아무에게나 판매하지 않는다. ‘정부’ 차원에서만 거래할 수 있다.

다음으로 위폐를 찍는 ‘기계’가 문제다. 인쇄기법에는 철판, 평판, 요판 등이 있는데, 지폐 인쇄에는 이러한 인쇄기법이 고루 들어간다. 철판(凸版)인쇄는 과거 신문 인쇄에 주로 사용되던 방법인데, 활자를 배치하고 거기에 잉크를 묻혀 인쇄한다. 평판(平版)인쇄는 책이나 사진 등을 인쇄할 때 많이 사용하는 방법으로 튀어나오거나 패이지 않은 평평한 판 위에 인쇄할 모양 그대로 잉크를 묻혀 출력한다. 요판(凹版)인쇄는 오목하게 패인 부분에 잉크를 주입하고 판 위에 종이를 눌러 잉크가 묻어나도록 한다. 이렇게 하면 종이 위에 잉크의 볼록한 느낌이 그대로 살아난다.

지폐를 만드는 핵심기술은 이중에서 ‘요판인쇄’다. 우리가 지폐를 만져보면 오돌토돌한 느낌이 나는데, 복사기나 스캐너, 프린터로 만들어낸 위폐가 금방 적발되는 이유는 이러한 요판기술을 재현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폐를 만드는데 사용되는 요판인쇄기도 아무에게나 판매되지 않는다. ‘정부’ 차원에서만 거래될 수 있으며 가격도 대당 150억 원에 이른다. 이러한 인쇄기가 국제사회에서 수출입이 되려면 상당히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위폐를 만들려면 ‘잉크’ 또한 문제다. 지폐를 찍는 잉크 역시 일반 잉크와 다르다. 변색을 막기 위한 특수성분이 들어있고, 특히 요판인쇄에 사용되는 잉크는 속성으로 건조되기 때문에 취급이 쉽지 않고 값이 비싸다. 따라서 지폐제조에 필요한 특수잉크도 아무에게나 판매하지 않는다. 역시 ‘정부’ 차원에서만 거래될 수 있다.

北 제조 위폐, 이론 여지 없어

그런데 어느 날 아주 정교한 위조지폐가 나타났다. 이 위폐의 종이는 일반인이 구입할 수 없는 진폐(眞幣)의 원료였으며, 요판인쇄 기법을 그대로 구현해냈고, 잉크 또한 진폐에 쓰이는 특수잉크였다.

그렇다면 가능성은 두 가지. 어떤 기가 막힌 위폐조직이 그것 모두를 정부에서 빼돌렸거나, 아니면 정부 자체가 위폐조직이었거나. 현실은 후자에 가까운 확률이 훨씬 높다.

‘슈퍼노트’가 바로 이런 정교한 위폐의 효시였다. 그 전에도 외형이 정교한 위폐는 많았으나 종이질이나 잉크, 위폐방지를 위한 특수한 처리방법까지 그대로 흉내낸 위폐는 없었다. 용의 국가는 몇 되지 않았다. 북한, 이란, 이라크.

그런데 이란과 이라크는 석유가 풍부해 굳이 위폐를 만들면서까지 달러를 확보할 필요가 없는 나라들이다. 특히 이라크는 미국과 전쟁을 치르면서 자국의 다니르화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하던 때였는데, 달러화를 대량으로 만들어낼 이유도, 능력도 없었다.

그 시기 공교롭게도 북한의 외교관 여권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다량의 위조지폐를 갖고 있다 적발되는 사건이 잇달아 일어났다. 상황이 이 정도되면 답은 너무도 뻔하지 않은가?

미국 조폐국 초정밀 인쇄기와 동일 장비 증거 제시

지난 16일 미국은 세계 각국의 외교관과 위폐단속 관계자들을 불러 북한의 위폐제조 관련 증거들을 제시했다. 제시된 증거는 북한 관계자가 외국은행에 위폐를 입금하는 장면이 담긴 사진, 지폐 제조에 쓰이는 특수종이와 잉크, 인쇄장비 등을 수입한 자료들이었다고 한다.

물론 북한은 발뺌할 것이다. 지난 1996년 캄보디아-베트남 국경에서 북한 외교관 신분증을 소지하고 위폐를 운반하다 적발되었던 적군파 다나카 요시미(田中義三)의 경우, 3년간 재판을 받았지만 무죄로 석방됐다. ‘위폐인지 몰랐다’고 하면 그만이기 때문에 단지 위폐를 소지하고 있었던 것만으로 처벌하기는 어렵다. 환전하다 적발되어도 대충 몰랐다고 하면 그만이다.

이번에 증거자료로 제시된 종이와 특수잉크, 인쇄장비 수입과 관련한 증거도 ‘우리(북한) 지폐를 만들기 위해 수입했다’고 변명할 것이 분명해 보인다. 최근 3~4년 사이 북한은 신권화폐를 여러 종 발행했기 때문에 어느 정도 변명거리도 갖고 있다.

그러나 정황상 증거와 국제사회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이번에 미국이 제시한 증거 가운데에는 북한이 미국 조폐국에서 사용하는 초정밀 인쇄기와 똑같은 장비를 일본과 독일 등지에서 비밀리에 구입하였다는 증거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지난 4월 크리스토퍼 힐 동아태 차관보는 주한미국대사를 이임하면서 반미단체인 ‘평화네트워크’ 주최의 토론회에 참석했다. 이날 참석자들이 북한의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의 증거가 부족하다고 주장하자 힐 차관보는 북한이 우라늄 농축장비의 원료인 고강도 알루미늄을 비밀리에 대량 구입한 사실을 언급하면서 “트랙터 살 돈도 없는 나라가 무엇하러 이런 장비를 샀겠느냐”고 꼬집었다. “어린이 놀이터라도 만들었다면 그 놀이터를 보여주면 되지 않으냐”고도 했다.

누군가 북한의 지폐를 위조할 특별한 이유가 없기 때문에, 북한의 지폐에는 위폐방지를 위한 첨단 기법이 별로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런데 고강도 알루미늄과 마찬가지로, 북한은 초정밀 인쇄기를 왜 구입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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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대중 기자 big@dailyn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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