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관중기립, 김정일 지시없이 불가능

“미국 국가 울릴 때 일어서 박수를 쳐라.”

6월 29일자 조총련 기관지 <조선신보> 인터넷 판은 28일 평양 류경정주영체육관에서 열린 세계여자권투협의회(WBCF) 타이틀 매치에서 경기장을 가득 메운 북측 관중들이 미국 국가가 연주될 때 기립하는 성숙한 매너를 보여주었다고 보도했다.

신문은 “라이트 플라이급 경기에 앞서 조선과 미국의 국기가 장식된 가운데 쌍방의 국가가 흘러나오자 관중들이 모두 일어섰다”고 전하면서 북측 사회자가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를 소개하면서 북한 선수들뿐 아니라 미국과 일본 선수에게도 박수를 보내 줄 것을 요청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에 대한 남한언론의 분석이 다양하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대미정책의 변화를 알리는 신호탄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김정일의 대미 유화적 선전

북한에서는 응원도 조직해준다. 특히 미국이나 일본, 남한과의 경기는 누가 더 잘 응원하는가를 체크하기도 한다. 체육위원회에서 응원조직과 관련한 보고가 김정일에게 올라가고 당에서 조직적으로 역할을 분담하여 지시한다.

경기 시작 전 해당 국가가 연주될 때 일어서는 것은 국제관례상 하나의 예의다. 과거 중국, 소련 등 동맹국 국가가 울릴 때 모두 일어서서 예의를 표시했다.

그러나 과거 적대국과의 경기는 그렇지 않았다. 경기에 참가한 선수들은 물론이고 응원 관중들도 적대국의 국가가 울릴 때 일어서는 경우는 없었다. 95년 일본의 프로 레슬러 이노키 간지(안토니오 이노키)와 미국의 릭 블리어가 평양에서 시합을 가졌는데, 관중들은 릭 블리어에게 야유와 조소를 보냈다.

2000년 이후부터 남한과의 경기에서는 당에서 남한 선수들에게 잘해주라는 지시가 내려왔고, 이 때문에 정치적인 이유로 남한선수들을 환대했다.

그러나 미국과의 경기가 지금까지 평양에서 열린 적은 없다. 과거의 사례로 보자면 현재 미국이 적국인 만큼 관중들이 야유를 보내야 마땅할 것이다.

따라서 이번 여자복싱 경기에서 미국의 국가 연주 때 관중이 기립한 것은 김정일의 직접 지시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북한관중이 매너나 지키자고 적국을 존중할 리는 없다.

70년대 말 복싱계를 흔들었던 구영조 선수가 미국선수를 때려눕혔을 때에도, 유도영웅 계순희선수가 미국선수와 대적했을때에도 북한 관중들은 미국선수에 대한 적개심으로 야유와 조소를 보냈었다.

이번 북한관중의 기립사건은 미국을 유화적으로 대해준다는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정치적 목적이 다분히 숨겨져 있다. 미국은 강경파, 북한은 유화파로 보여주려는 일종의 선전술로 이해된다.

국제사회 왕따 이미지 회복 일환

또 한편, 북한이 국제무대에서의 이미지를 회복해보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북한은 2006 독일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5전 전패로 가장 낮은 성적을 거두었을뿐 아니라 축구장 난동으로 ‘국제적 왕따’를 당했다. 체육경기조차 국제사회에 찍히는 것이 여러모로 불리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북한관중 기립은 김정일의 대미 유화전술의 일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앞으로 이어질 핵 문제, 외교적 현안문제를 위해 화해무드를 조성하려는 것으로 분석된다

70년대 미국과 중국의 ‘핑퐁외교’가 성사된 바 있다. 김정일도 그런 점에 착안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과거 미중간의 화해와 북한의 대미 유화전술은 차원이 다르다. 현재 김정일은 당분간의 유화전술로 미국 등의 압박을 피해보려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다.

한영진 기자(평양출신 2002년 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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