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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척 방문을 위해 중국 옌지(延吉)에 머물고 있는 평양 주민 고은숙(가명·55세) 씨는 지난 9월 초 북한 조선중앙통신이 공개한 외국스파이 및 간첩사건에 대해 북 당국이 일반 주민들에게도 공포하고 ‘적들의 책동에 경각심을 높이라’는 교양사업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고 씨는 “조선에서는 요즘 인민들을 각성시키기 위해 간첩사건 뿐만아니라 부패사건들도 많이 공개한다”고 말하면서 “그런 반역자(간첩)들은 죽어 마땅하다”고 말했다. 북한 당국은 최근 부패혐의로 함경북도 연사군 외화벌이사업소 책임자를 공개처형하고 북중 접경지역 세관장들을 상당수 좌천시켰다.
고 씨는 기자를 만나서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의 대부분을 주제와 상관없는 체제 찬양에 할애했다. 한국 사람을 처음 대하는 친척 방문자들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고 씨의 경우는 이보다 훨씬 정도가 더했다.
고 씨는 “북한 주민들이 예전보다는 많이 살기가 나아졌지만 사회적으로 비리가 많아 단속과 통제, 교양사업도 나날이 강화되고 있다”면서 “강연자료에서 빠지지 않는 내용이 불법 월경자들과 한국에 있는 친척들과 연락하는 자들을 엄격히 처벌한다는 내용”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중국에 나와 한국사람을 만나는 것도 마음에 심히 걸린다면서 “돈이 필요해도 나라의 법질서를 잘 지켜야디요”라고 말했다.
고 씨는 평양은 배급이 비교적 잘되는 편이라고 했다. 그러나 쌀값이 지난달 1900원까지 올랐다가 1700원 정도를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9월에 비해 300원 가량 오른 것으로 볼 수 있다.
평양도 8월에 배급을 주지 않았고 9월에도 절반만 주지 않았냐고 묻자, “그래도 평양은 대부분 배급을 주기 때문에 먹고 살 염려가 그리 크지는 않았다”고 서둘러 대꾸했다. 이어 “시장에서 마음 놓고 쌀을 살 수가 있다”면서 “이제는 우리 조선사람들도 ‘고난의 행군’때와는 달리 살기가 많이 나아졌다”고 말했다.
고 씨는 국경을 넘어오면서 보니 단속이 어느 때보다 심하다고 전했다. “지금 국경지역은 매일 검열과 단속을 통해 비법월경자들과 반역자들을 색출해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고 씨는 “우리 장군님께서 인민을 잘 살게 해주신다니 우리는 믿고 기다린다”며 “조선인민들은 배고파도 사회주의를 지킬것”이라고 일장 연설을 늘어놓았다.
몇 가지 추가로 질문을 던지자 “더 이상 말할 수 없다. 그런것도 다 국가 비밀인데 공화국 공민으로서 반역할 수 없지 않겠나. 훗날 통일 되면 마음놓고 이야기합시다” 라고 말했다.
기자를 불안한 눈으로 살피던 고 씨는 더 이상의 취재를 거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