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공군 조종사들의 ‘화려한 휴양’…이젠 옛말?

북한주민들에게는 한국사람들이 누리는 ‘여름휴가’가 없다. 북한에도 ‘휴가’제도는 있으나, 주민들은 출근을 하지 않고 집안일을 돌보거나 장사를 하는 시간으로 생각한다.

한국사람들의 여름휴가 가장 비슷한 개념은 ‘휴양’이다. 하지만 80년대 말까지 일반주민들이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누리던 시절에도 일반 노동자, 농민은 ‘휴양’이란 단어 자체가 낯설기만 했다. 물론 모범 노동자, 농민들을 배려하기 위한 ‘근로자 휴양소’가 있었으나, 일반 주민들에게 휴양이란 꿈같은 소리로 받아들여졌다.

북한에서 휴양소가 운영된 것은 해방 후 강원도 고성에 위치한 간부 휴양소가 최초로 알려져 있다. 6.25전쟁 당시 김일성이 인민군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해 허약 군인들과 부상 군인들을 위한 휴양소를 마련한 것이다.

이후 북한은 경치 좋은 곳 마다 근로자 휴양소를 건설했다. 그러나 휴양소도 일반 근로자 휴양소와 특별인원들을 위한 휴양소가 따로 있다. 극소수의 중하급 간부들과 ‘모범사례’로 선발된 노동자들이 근로자 휴향소를 이용할 수 있었을 뿐, 일반 주민들이 대중적으로 이용할 수 없었다.

특별 인원이라고 하면 간부들이나 권력기관을 제외하고 북한에서 특수 대우를 해주는 계층을 말하는데 공군 조종사나 해군 잠수함 승조원 같은 사람들이다. 특히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조종사들은 최고의 혜택을 누렸다. 북한은 조종사를 키우는 데 각별한 관심을 돌렸으며 이들에게 많은 우대를 베풀었다. 조종사 본인에게 공급되는 물자들은 전부 무상이었고, 가족들도 무상 공급과 함께 그들의 요구에 따라 유상 공급제가 따로 적용됐다.

한국 사람들이 즐기는 ‘여름휴가’와 가장 비슷한 것이 바로 조종사들의 ‘휴양’이다. 북한은 조종사 본인은 1년에 1회, 가족들은 본인과 함께 2년에 1회씩 휴양을 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다. 이 같은 혜택은 잠수함 승조원들도 마찬가지다.

조종사 가족들이 애용하는 휴향소는 원산시 ‘갈마 휴양소’와 함남도의 ‘속후 휴양소’, 함북도 경성에 위치한 ‘주을 휴양소’등이 있다. 모두 바닷가에 위치해 있으며 경치가 뛰어나 피서지로는 나무랄 데 없이 훌륭한 곳이다. 갈마 휴양소의 경우 녹음이 우거진 중심에 휴양객 침실 건물 두 개가 앞뒤로 나란히 서 있고 별도의 식당과 실내체육관까지 갖춰져 있다.

보통 1개 부대(연대급)에서 독신 3∼4명과 기혼자 4∼5세대가 함께 휴양소를 이용하게 하게되는데 휴향소 관리소의 지시에 따라 방을 배정받는다.

방들은 독신방과 가족방이 따로 있다. 독신방에는 네 개의 1인용 침대가 있고 가족방에는 2인용 침대 두 개가 놓여 있다. 규정에 아이들은 2명씩 데리고 가게 되었지만 어떤 세대는 3∼4명씩 데리고 와 관리소 측과 ‘물밑사업’하기도 한다.

휴양소에 특별히 정해진 일과는 없지만 식사시간과 잠자는 시간만은 철저히 지켜야 한다. 아침식사는 7시 30분부터, 점심식사는 12시 30분부터, 저녁식사는 6시부터 시작되며, 낮잠 시간 오후 2시부터 4시, 저녁취침 10시다. 이것은 휴향소 관리소에서 정한 규정이므로 무조건 지켜야 한다.

그 외 시간들은 자유롭다. 장기를 두거나 카드놀이를 하거나 바닷가로 나간다.

휴양소의 식사메뉴는 일주일 식사표를 식당 배식구 옆에 주 1회씩 공지한다. 국과 밥은 1인용으로 차려주고 반찬은 한 식탁에 두 조로 나뉘어 네 가지 이상을 차려준다.

90년대 초반까지 휴양소 음식 중에 최고로 꼽히는 것은 소련제 빵이었다. 아침마다 ‘흘레브’라고 불리는 빵이 제공됐는데, 거기에 버터와 설탕가루를 발라먹는다. 점심시간에 1인당 1개씩 차려지는 과일도 휴양객의 인기를 얻었다.

조종사들의 휴양은 보통 20일이다. 하지만 어떤 가족들은 기일을 다 채우지 않고 고향의 부모님들과 친인척들을 찾아뵈러 서둘러 휴양소를 떠나기도 한다. 통상 휴양 20일이면 휴가 15일이 더해지는데, 이때 고향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다.

부지런한 아내들은 휴양소에서도 부업을 한다. 동해바다 해변에 위치한 갈마휴양소나 속후 휴양소 주변에는 파도에 밀려나온 참미역들이 산더미처럼 쌓인다. 아내들은 그 미역을 바닷물에 씻어 해변가에 널어 말린다.

이렇게 말린 미역들이 휴양소를 떠날 때쯤이면 50㎏짜리 마대로 2~3개는 족히 되는데, 남편들은 귀찮다고 짜증을 내도 아내들은 흐믓한 마음으로 시댁이나 친정에 마른 미역을 보낸다.

조종사들의 이처럼 ‘화려한 휴양’도 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과 함께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국가에서 휴양권이 나와도 휴양소가 아닌 고향으로 발길을 향한다.

근래 들어 조종사에 대한 국가적인 배려가 많이 줄고 또 공급물자가 나온다 해도 이를 시장에 내다 팔아 가계에 보태야 하기 때문에 이들의 여유로운 생활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최근 조종사들은 본인에게 공급되는 담배(1달 1보루) 조차 시장에 내다팔기도 한다.

조종사로서 ‘품위’ 유지비용도 만만치 않다. 학교에서는 조종사 자녀들에게 “너희집은 그래도 조종사 집안이나 다른 아이들 보다 좀 더 내라”며 돈과 물품을 요구한다.

북한이 최고로 아끼고 배려한다는 조종사와 그 가족들이 느끼는 박탈감이 점점 커지고 있다. 국가 차원의 배려가 축소된 점도 있지만 개인 장사나 외화벌이 등으로 부자가 된 사람들의 생활수준이 국가 공급에만 매달려 살아가는 조종사들을 추월한 측면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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