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고려의서 ‘어의촬요방’ 400년만에 복원

고려시기의 귀중한 의학유산인 ’어의촬요방(御醫撮要方)’이 한 의학자의 각고의 연구 끝에 근 400년만에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됐다.

북한 노동신문은 11일 “자강도 화평군인민병원 의사이자 박사인 주규식 동무가 피타는(피나는) 탐구정신을 가지고 40여년간 어느 하루도 중단함이 없이 조사·수집·연구를 벌여 어의촬요방을 복원하는데 성공했다”고 전했다.

어의촬요방은 우리나라에서 편찬된 옛 의학서적들 가운데 출판인쇄에 관한 기록이 역사에 명백하게 밝혀져 있는 첫 의학고전이어서, 이번 복원은 고려의학(한의학)의 발전 모습과 특성 등 의학사 및 문화사 연구에 크게 이바지할 것으로 노동신문은 평했다.

신문에 따르면 어의촬요방은 1226년(고종 13년) 추밀상공 최종준(崔宗峻)이 왕실에 내려오던 의서인 ’약방(藥方)’에서 요긴한 것을 추려내고 보충해 2권으로 나눠 만든 것이다.

어의는 임금의 주치의, 촬요는 가장 요긴한 것을 골라냈다는 뜻이다.

이 책은 서경(평양)에서 목판본으로 인쇄·출판된 뒤 널리 활용됐으나 임진왜란을 기점으로 역사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조실록은 책이 나온 지 200년 후인 1433년(세종 15년)에 어의촬요방을 매우 편리한 책이라고 언급했으며, 같은 해 나온 ’향약집성방’과 1455년에 나온 세계 최초의 의학대백과전서인 ’의방유취’는 어의촬요방을 참고문헌으로 이용했다고 밝히고 있다.

또 임진왜란 직전에 나온 ’고사촬요’에는 경남 진주에 ’어의방’이라는 책이 있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임진왜란 후인 1610년 허준의 동의보감 인용문헌 목록에는 어의촬요방에 관한 내용이 없고 그 이후에 나온 문헌에도 관련 기록이 없어 학계에서는 이 책이 임진왜란 시 왜적들에 의해 파괴·약탈됐다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다행히도 이규보가 어의촬요방에 남긴 서문이 그의 문집 ’동국이상국집’에 실려 오늘까지 전해지고 있으며 인용문이 담긴 의방유취와 향약집성방도 복원의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주규식 박사는 이 가능성을 파고들었다.

주 박사는 전 85권에 달하는 향약집성방의 내용을 전부 다 조사했으며, 6만여장에 달하는 방대한 의학전서인 의방유취의 갈피갈피를 연구·분석해 130여개의 어의촬요방의 처방을 수집했다.

주 박사는 특히 ’고난의 행군(90년대 중·후반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절)’ 시기에도 조금도 동요하지 않은 채 하나하나의 복원 기초자료들을 세밀하게 따졌으며 복원본에는 한 글자도 근거없이 첨가·삭제하거나 변경하는 일이 없도록 했다.

또 책의 항목구성과 편성체계, 본문글씨, 책의 판형식 등을 결정하는데서도 당시의 간행물에 어울리게 만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 책을 보면 당시 고려 사람들이 어떤 질병에 많이 시달렸으며 그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어떻게 치료했는지를 알 수 있으며 당시에 쓰던 약재와 약물형태, 이것을 만드는 방법과 적용하는 방법들도 깊이 있게 담고 있다.

특히 풍질로부터 부인병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질병 증후들을 풍부하게 수록하고 있으며 임상 용법도 상세하게 밝히고 있어 현재 고려의학에서 사용되고 있는 처방·용법과의 비교·연구가 가능하다.

또 오늘날 널리 애용하고 있는 우황환, 우황청심환, 팔미환, 백호탕을 비롯한 명처방들도 어의촬요방이 발간된 시대 때부터 활용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노동신문은 “우리의 학자에 의해 어의촬요방은 원본에 가장 가깝게 복원됐다”면서 “어의촬요방은 고려의학을 역사적 견지에서 연구하는데서 매우 큰 의의를 가진다”고 밝혔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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