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고려궁궐 대화궁은 16만평 규모

북한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 교수와 연구원들에 의해 평양에서 새로 발굴된 고려시대 궁궐인 대화궁은 건축 양식이 고구려 안학궁과 동일하며 규모는 55만㎡(약 16만6천여평)에 달한다고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가 16일 보도했다.

대화궁은 고려시대 묘청(국사)의 서경천도운동에 따라 1129년(인종 7년)에 세워진 왕궁으로 그해 3월 건룡전에서 왕이 연회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신보는 지난해 3월부터 지난 8월까지 대화궁 발굴에 참여한 김일성종합대학 역사연구실 전동철(43) 실장과 리영식(39) 연구사의 말을 인용, 고구려시대의 왕궁인 안학궁의 부지는 약 38만㎡인데 반해 평양시 룡성구역 룡추1동에 위치한 대화궁은 55만㎡의 부지면적을 차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또 “평양에는 역대 왕들이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는 별궁이 여러 곳에 있었는데 대화궁은 왕이 임시로 사용하기 위해 건설하였던 별궁이 아니라 정궁”이라며 “약 3km 정도의 성벽과 외궁, 내궁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밝혔다.

지형상으로 보면 왕궁의 뒤쪽에 해발 160m의 산봉우리가 위치하고 동서방향으로 능선을 따라 길게 둘러막혀 천혜의 요새를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쪽 능선 건너편과 남문 앞으로는 합장강과 개울이 흘러가고 있다며 대화궁 터가 ‘좌청룡, 우백호가 보이는 명당자리’라고 설명했다.

외궁은 왕이 정사를 보고 외국사신들을 만나는 등 의례행사를 하는 곳이고 내궁은 왕과 그 가족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외궁은 4개의 단이 층층으로 되어 있고 단 위에 건물터가 비교적 잘 남아 있었으며 장방형 구조의 건물터와 건물과 연결되어 있는 회랑들이 여러 개 나타났다.

또 외궁에서 동북방향으로 300m 정도 떨어진 내궁구역은 크게 4개의 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제일 높은 축대 위에 있는 4호 건물터의 경사면을 깎고 거기에 돌을 축조했다.

앞면에 동심원 무늬가 새겨진 제형의 벽돌을 쌓아올린 축대 벽도 나타났다.

대화궁터에서는 많은 유물들도 발견되었다.

대부분이 기와이고 그 외에는 약간의 잡상과 자기와 도기 조각, 철제품들이다.

꽃무늬를 형상한 암키와 막새들에는 ‘대산명수’라는 글을 새긴 것도 있었으며 쇠로 만든 수기와도 발견됐다.

성문은 남문만 평지로 들어가게 되어 있고 북, 동, 서쪽의 성문들은 모두 산 능선에 위치하고 있는데 지금도 한 돌기 정도의 석축부분이 남아 있다.

리영식 연구사는 “중심에 기본건물을 배치하고 그 양옆에 나래채를 곁붙이는 건축수법은 안학궁터에서 확인된 고구려식 왕궁 건축방식이며 이것은 발해의 상경룡천부나 고려의 만월대에도 공통된 것”이라며 “지난 시기에 고구려와 고려의 계승관계 설명은 주로 국호나 정책 등의 면에서 설명되었으나 대화궁이 발굴됨으로써 고려가 고구려의 계승국임을 증명하는 위력한 증거가 제시되게 되었다”고 강조했다.

조선신보는 “김일성종합대학 역사연구실에서는 미진된 부분의 발굴사업과 함께 발굴된 유적, 유물들에 근거한 발굴보고서 집필, 궁터 전면정리 등을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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