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고구려 유적 고산동우물 소개

“고산동 우물은 고구려 사람들의 뛰어난 슬기와 재능을 보여줄 뿐 아니라 고구려 역사와 문화적인 관계에서 매우 중요한 유적이다.”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의 정봉찬 연구사는 23일 평양방송에 출연, 첫 고구려 우물 유적인 고산동 우물(북한 국보 172호)의 빼어난 축조 기술을 소개하면서 이 같이 강조했다.

정 연구사에 따르면 평양시 대성구역 고산동에 위치한 이 우물은 암반이 드러날 때까지 땅을 파고 바닥을 마련한 뒤 우물벽을 차례로 쌓아올렸다.

우물 바닥에는 달걀 정도 크기의 자갈을 5~7㎝ 두께로 깔고 그 위로 지름 14~16㎝의 통나무를 이용해 사각형의 틀을 50㎝ 높이까지 짰다.

나무틀 위로는 15~30㎝ 두께의 벽돌을 어긋나게 쌓아올렸는데 나무틀부터 170㎝ 높이까지는 한 면의 길이가 115㎝인 사각형, 그 위로 265㎝ 높이에는 팔각형, 마지막 입구까지는 원형이 되도록 평면 모양에 변화를 줬다.

또 우물벽과 흙벽 사이 공간에는 길쭉한 돌을 맞물려 50㎝ 두께가 되도록 쌓았는데 이는 우물벽이 밀려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쌓인 우물벽체의 두께는 50센티 정도이다.

발굴 당시 우물의 깊이는 7.5m였는데 우물의 윗부분이 없어졌고 지면으로부터 1.5m 깊이에서 발굴된 것을 감안하면 적어도 9m 이상 깊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 연구사는 이렇게 우물의 구조를 자세히 설명한 뒤 “고산동 우물 유적은 우물 축조에 사각형, 팔각형, 원형을 비롯한 기하학적 도형을 합리적으로 도입하고, 가공한 돌을 수직이 아니라 일정한 여각적 곡선을 이루도록 축조됐다”고 평했다.

그는 또한 “우물 안에서 기와, 벽돌, 질그릇, 마구, 숫돌, 철기판이나 짐승뼈, 바가지 조각을 비롯해 40여점의 유물이 발굴됐는데 대부분 고구려 시기 유적에서 나온 것과 같다”며 특히 진흙에 가는 모래를 섞어 만든 붉은색 기와와 회색 벽돌 등은 우물 인근의 안학궁터와 대성산성에서 발견된 것과 같았다고 말했다.

정 연구사는 이어 “고산동 우물 안에서 안학궁터와 대성산성, 그 부근 고구려 무덤에서 발굴된 유물과 같은 것들이 발굴된 것은 고산동 우물이 고구려의 왕궁이었던 안학궁 건설과 대성산성 축조 시기와 대체로 같은 시기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