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29일 김태영 합참의장이 2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의 핵공격 대책에 관해 답변한 내용을 문제 삼아 “즉각 취소하고 사과하지 않으면 모든 남북대화를 중단할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북한은 27일 개성공단 남측요원 철수 조치, 28일 서해상 미사일 발사에 이어 잇따라 대남 압박수위를 높이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국방부는 북한이 남북장성급군사회담 북측 단장인 김영철 중장 명의로 전화통지문을 보냈으며, 우리측 수석대표인 권오성 소장이 이를 접수했다고 30일 확인했다. 국방부는 북측의 사과와 발언취소 요구에 대해 “2~3일 내로 답신을 보낼 지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현재 국방부는 이상희 국방장관과 김태영 합참의장이 참석한 가운데 군 수뇌부회의 및 관계기관회의를 열고 대책을 논의하는 한편 유관부처와의 긴밀한 협의를 통해 북측의 진의를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 의장은 지난 26일 인사청문회에서 북한의 핵공격에 대한 남한의 대처에 대한 질문에 “중요한 것은 적(북한군)이 핵을 가지고 있을 만한 장소를 확인해 타격하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29일 북측 대표단 단장이 남측 수석대표에게 보낸 통지문을 통해 “사과하지 않을 경우 모든 북남대화와 접촉을 중단하려는 남측 당국의 입장으로 받아들일 것”이라며 “우리 군대는 당면하여 군부 인물들을 포함한 남측 당국자들의 군사분계선 통과를 전면 차단하는 단호한 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보도했다.
통지문은 김 의장의 답변을 ‘선제타격 폭언’으로 규정하고 “지금까지 북남관계에서 있어본 적이 없는 가장 엄중한 도전이며, 공개적인 선전포고나 다름없는 무분별한 도발행위”라며 “우리 식의 앞선 선제타격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북한 조선중앙통신의 군사논평원은 30일 김태영 합참의장과 관련, 취소.사죄하지 않으면 모든 남북대화가 전면 차단될 것이라는 입장을 재확인하면서 “우리식의 앞선 선제타격이 일단 개시되면 불바다 정도가 아니라 모든 것이 잿더미로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은 이달 초 서해상에서 키리졸브 군사연습에 대응, 대규모 해안포 발사 훈련을 실시한 데 이어 김 의장이 국회 청문회에서 NLL(북방한계선)과 핵공격시 대책에 관해 언급한 후인 28일 오전 서해상에서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또 북한 해군사령부가 남쪽의 해군이 북측 영해를 침범하고 있다고 주장, 충돌 가능성을 경고하기도 했다.
북한의 이 같은 조치는 일단 남한 새 정부 길들이기 및 4∙9총선 기간 중 남한 내 대북정책 여론을 분열시켜 남남갈등을 유발시키는 한편, 미국의 핵신고 압박을 회피하려는 전술로 분석된다.
특히 통지문을 통해 “모든 북남대화의 접촉 중단” “남측 당국자들의 군사분계선 통과 전면 차단” 등의 강경발언을 통해 새 정부로 하여금 ‘남북관계 경색’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느끼도록 압박책을 쏟아 내고 있다.
하지만 이에 따른 이명박 정부의 즉각적인 조치 가능성은 없을 것으로 관측된다. 북한의 ‘개성공단 당국인원 철수’에도 이명박 정부는 북한에 대한 ‘당당한’ 입장을 강조했고, 국면 타개를 위한 ‘당근책’도 제시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당분간은 북한의 협박에 응하지 않을 가능성이 커 상당기간 남북 당국간 관계 단절은 불가피해 보인다.
정부 고위소식통은 “일단 원칙은 고수하되 유연하게 대처하겠다는 이 대통령의 입장은 변함이 없다”면서도 “향후 대응 방안 마련을 위해 관계 부처와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도 미북간 핵협상 등을 감안할 때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등의 초강수를 쓰기는 어려워 보인다. 다만 해마다 전개됐던 서해상의 국지적 도발 가능성은 열려있어 5~6월 꽃게잡이 철을 앞두고 물리적 충돌도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일련의 북한 행동이 단순히 남한의 새 정부 뿐만 아니라 미국에 대한 간접 메시지라는 해석도 제기되고 있다.
최근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한미간의 관계가 급속도로 가까워지면서 북핵문제 해결을 가장 우선시 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인 ‘비핵.개방3000’이 북한의 핵폐기를 전제로 하면서 지난 햇볕정책을 추진한 정권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가운데 28일엔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신고를 고집하면 불능화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미국측이 제시한 여러 신고 방안에 대해 거부하겠다는 입장을 일단 밝힌 것이다. 6자회담이라는 협상틀을 깨지는 않겠지만 협상의 우위를 더욱 곤고하게 다지겠다는 의도로 해석된다.
이처럼 최근 계속되고 있는 강력한 대남·대미 메시지를 통해 북한이 북핵문제에 있어 그리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는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한미동맹이 강화되면 될수록 북한의 이 같은 반발이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태우 한국국방연구원 군비통제연구실장은 ‘데일리엔케이’와의 통화에서 “북한군의 ‘경고성 발언’은 단순히 합참의장 발언만이 아닌 외교통상부∙통일부 장관 등의 잇따른 발언에 대한 불쾌감이 축적되면서 나온 것”이라며 “북한이 화내는 것을 웃고만 넘길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실장은 이어 “쌀∙비료 지원 협상이 미뤄지고 있고, 대북정책도 과거와는 다르다고 판단해 이명박 정부에게 ‘향후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갈 것이냐’고 물어보는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북한은 남한 내 총선도 감안하고 있다”고 말해 ‘남남갈등’ 유발 전략 가능성도 제기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명박 정부가 북한의 민감한 대응에 일일이 대응한다면 북한 술수에 말려드는 것으로 대응할 필요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명박 정부도 즉각적인 대응을 할 가능성은 낮다”며 “이 경우 북한은 NLL침범 등 서해도발 등으로 한 번 더 대남압박카드를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김장수 전 국방부 장관도 퇴임 직전 합동참모본부 등 군 수뇌부에 전반기에 북한이 서해상에서 도발할 가능성이 있음을 경고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