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경향문학파 유완희 발굴 평가

“유완희는 비교적 명백한 계급적 입장과 독특한 개성을 가지고 억압받는 근로대중의 편에 서서 사회적 모순을 비판하고 민중을 투쟁에 불러일으켰다.”

4일 입수한 북한 문학잡지 ‘조선문학’ 8월호는 경향문학파 `프로시인’ 유완희를 이렇게 평가했다.

1903년생인 유완희가 언제 사망했는 지에 대해 아직까지 확인된 것이 없다.

그는 카프의 쟁쟁한 시인중 한사람이었지만 워낙 짧은 생을 산 데다 발굴된 작품이 적어 아는 사람이 흔치 않고 문단의 평가도 별로 없다는 것이 이 잡지의 지적이다.

하지만 유완희가 민중을 위한, 그리고 전투적이고 호소성이 강한 작품 창작으로 인해 당대 카프문단에서 뛰어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는 것.

1930년 잡지 ‘대조’ 8월호에 실린 ‘조선프로예술운동의 과거와 현재'(민병휘)라는 글에서 작가중 신흥파에 리기영, 유완희 등이 포함돼 있는 사실만으로도 유완희의 지위를 가늠할 수 있다고 조선문학은 강조했다.

조선문학에 따르면 유완희는 1923년 ‘현대조선시인선집’에 서정시 ‘내가에 앉아’를 발표하면서 시단에 데뷔했으며 1925년 카프가 설립되자 즉시 가입, 계급적 성격이 뚜렷한 작품을 본격적으로 창작하기 시작했다.

이 때부터 그는 ‘적구’라는 필명으로 경향성이 강한 시와 수필, 평론 등을 잇달아 발표했다. 그의 필명은 ‘붉은 망아지’라는 뜻으로 “당시 전 세계 무산민중에게 승리의 희망을 주고 계급투쟁에 앞장서려는 굳은 결의”를 담고 있다는 것.

그는 ‘여직공’, ‘희생자’, ‘나의 행진곡’, ‘어둠에 흐르는 소리’ 등 여러 시에서 “자유분방하면서도 여운이 쟁쟁한 필치”로 계급적 억압과 착취의 사슬을 끊어버리자며 당대 사회의 현실을 예리하고 비판했다고 조선문학은 평가했다.

특히 유완희의 ‘민중의 행렬’은 압제자를 반대해 나선 무산민중의 낙관을 담고 있는 시로,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작품으로 높이 평가했다고 이 문학지는 전했다.

조선문학은 그러나 유완희가 1920년대 말-30년대 초에 이르러 되살아난 고질병으로 인해 현실과 떨어져 ‘탁상문학’에 빠져들면서 종전의 전투적 시형상에서 벗어나 현실에 대한 불만과 그에 따른 정서를 표현하는 후퇴경향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유완희는 “창작활동 전기간 동요나 변질없이 부르주아지의 멸망과 무산계급의 승리를 지향하는 자신의 입장을 끝까지 고수함으로써 사회주의적 사실주의 시인으로서 문학사에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잡지는 평가했다.

유완희는 경기도 용인군 내사면 송문리의 빈농 출신으로 1920년 서울제1고등보통학교를 거쳐 3년 뒤 서울법정학교에 입학했다. 졸업 후 법률가가 되라는 주위의 권고를 뿌리치고 동아일보, 시대일보와 조선일보 등의 기자로 활동하면서 당대 사회의 모순과 불합리성을 예리하게 파헤치는 기사를 쓰는 한편 시 창작의 길에 들어섰다고 조선문학은 설명했다./연합

소셜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