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검증 반대’ 재확인…협상여지 있나

북한이 본격적인 위기고조 전술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북한은 19일 두 차례에 걸쳐 북핵 협상과 관련해 최대 현안으로 부각된 검증 문제에 대한 반대 논리를 전개했다.

판문점에서 이날 오전 진행된 남북 경제.에너지 실무협의에서 주요 당국자의 입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밝힌 북한은 오후에는 외무성 대변인을 등장시켰다. 검증협의가 교착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와병설이 나돌고 있는 현 시점에서 반드시 밝힐 것은 밝히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먼저 남북 에너지 실무회의에서 현학봉 북한 외무성 미국국 부국장은 검증 문제와 관련해 자신들의 입장을 분명하게 전달했다.

현 부국장은 ’10.3합의의 골자’를 강조했다. 즉, 핵시설 불능화와 신고서 제출이 북한이 이행해야 하는 의무이며 에너지지원과 미국의 안보조치(테러지원국 해제와 적성국 교역법 해제)는 상응조치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신고서 제출만 명시됐으며 이른바 검증 문제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게 현 부국장의 주장이다.

그는 “10.3합의에는 핵신고서를 제출하게 돼 있다. 검증이란 건 하게 돼 있지 않다는 말이다”라고 항변한 뒤 “조미(북미) 사이의 비공개 양해서(지난 4월 싱가포르에서 합의한 내용)에도 없고 6자 합의서에도 없다”고 말했다.

현 부국장은 그러면서 “미국측이 (검증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기에 성실하게 임해왔는데 문제는 미국측은 합의되지도 않은 일방적인 요구사항을 받아들여 달라고 한다”고 했다.

그는 특히 “임의 장소를 불시에 방문해서 시료도 채취하고 측정기재로 검사하겠다는 것이다. 강제사찰하겠다는 것”이라고 미국의 요구를 규정한 뒤 “부당하다”고 말했다.미국이 주장하는 ’국제적 기준’에 대해 “접수할 수 없는 강도식 사찰방법”이라고도 했다.

현 부국장은 1993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벌인 특별사찰 논란을 상기시켰다. 그는 “IAEA가 ’마음대로 가고 싶은데 가고, 하고싶은 대로 하겠다’는 이른바 특별사찰이라는 것을 제기해 아옹다옹하다 1차 핵위기가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이라크 사례도 적시했다. 현 부국장은 “이라크를 보라. 국제적 수준의 사찰이 필요하다고 강박해서 하나하나 파고들다가 마지막에는 대통령 궁전까지 수색했다”면서 “결국엔 뭐냐. 그들이 우려하던 대량학살무기(대량살상무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기준이란 간판을 걸고 강제사찰하다 마지막에는 이라크를 덮쳤다”고 말했다.

북한이 우려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미국에 대한 불신의 정도를 고스란히 드러낸 셈이다.

그는 북한이 진행해온 불능화의 진척정도와 1만8천900쪽의 5MW 원자로 가동일지와 재처리공장 일지 제출 사실 등을 장황하게 설명한 뒤 “우리는 성실하게 임했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말해 북한은 10.3합의에 따른 의무조치를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으니 미국은 검증 문제에 있어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고 자신들의 의무를 이행하라는 주장이었다.

외무성 대변인의 발언은 북한의 논리를 보다 화려하게 장식한 내용이었다. 대변인은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의에 답하면서 미국이 10.3합의 이행을 회피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미국의 본성이 다시금 명백해진 이상 우리는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를 바라지도 않고 기대하지도 않으며 우리대로 나가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대로 나가겠다’는 대목에서 북한 수뇌부가 이번 사태를 얼마나 중시하는 지를 웅변하려는 듯했다.

이런 ’적나라’한 반응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움직임에서는 ’여지가 느껴졌다’는 게 정부 소식통의 전언이다.

남북 접촉이 끝난 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6자회담 틀내에서 우리측과의 협의와 전체적인 6자 프로세스를 지속하는 것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이 있지 않나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또 다른 당국자는 “북한의 움직임은 압박전술로 해석된다”면서 “미국과 향후 대책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21일 미국 뉴욕에서 진행될 한국과 미국의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간 회동이 주목된다.

이 자리에서 양국은 북한이 개진한 검증 논리에 대한 분석과 함께 북한을 협상장에 복귀하도록 할 수정안 마련이 가능한 지를 집중 타진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북한이 실무협의를 제안하는 적극성을 보였고 협의에 나와서 자신들의 입장을 자세하게 밝힌 것은 6자회담의 유용성을 여전히 인정하고 있음을 방증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근 미국이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 등 협상파들을 내세워 북한의 입장을 배려한 신축적인 ’검증방안’을 놓고 중국과 협의를 벌인 것으로 알려진 것은 북한의 태도 변화 여부와 관련해 주목되는 변수로 보인다.

만일 미국이 북한이 수용할 만한 수정제안을 하고, 중국이 적극적인 중재노력을 펼칠 경우 6자회담 프로세스가 극적으로 복원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외교가의 분위기다.

그러나 대선 정국으로 접어든 미국이 국내 사정상 추가 타협을 하지 못할 경우 북한의 강공 드라이브가 이어지면서 6자회담이 장기 교착에 빠질 가능성은 상존해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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