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검증 반대논리’ 반복..협상여지에 관심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지만 여지를 남긴 것에 주목한다.”

북핵 현안에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19일 판문점에서 진행된 남북 경제.에너지 실무협의 자리에서 현학봉 북한 외무성 미국국 부국장이 밝힌 북측의 검증 문제에 대한 ‘반대입장’을 이같이 분석했다.

다시 말해 지난달 26일 외무성 대변인의 성명을 통해 ‘불능화 중단과 핵시설 복구 방침’을 밝힌 북한이 다시 한번 자신들의 논리를 개진한 것이지만 뭔가 ‘여지를 남긴 대목’이 있다는 것이다.

현 부국장은 ‘10.3합의의 골자’를 강조했다. 즉, 핵시설 불능화와 신고서 제출이 북한이 이행해야 하는 의무이며 에너지지원과 미국의 안보조치(테러지원국 해제와 적성국 교역법 해제)는 상응조치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신고서 제출만 명시됐으며 이른바 검증 문제는 포함되지 않았다는 게 현 부국장의 주장이다.

그는 “10.3합의에는 핵신고서를 제출하게 돼 있다. 검증이란 건 하게 돼 있지 않단 말이다”라고 항변한 뒤 “조미(북미) 사이의 비공개 양해서(지난 4월 싱가포르에서 합의한 내용)에도 없고 6자 합의서에도 없다”고 말했다.

현 부국장은 그러면서 “미국측이 (검증에 대한) 우려를 제기했기에 성실하게 임해왔는데 문제는 미국측은 합의되지도 않은 일방적인 요구사항을 받아들여 달라고 한다”고 했다.

그는 특히 “임의 장소를 불시에 방문해서 시료도 채취하고 측정기재로 검사하겠다는 것이다. 강제사찰하겠다는 것”이라고 미국의 요구를 규정한 뒤 “부당하다”고 말했다.

현 부국장은 1993년 국제원자력기구(IAEA)와의 벌인 특별사찰 논란을 상기시켰다. 그는 “IAEA가 ‘마음대로 가고 싶은데 가고, 하고싶은 대로 하겠다는 이른바 특별사찰이라는 것을 제기해 아옹다옹하다 1차 핵위기가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이 주장하는 ‘국제적 기준’에 대해 “접수할 수 없는 강도식 사찰방법”이라고 규정했다.

아울러 이라크 사례도 적시했다. 현 부국장은 “이라크를 보라. 국제적 수준의 사찰이 필요하다고 강박해서 하나하나 파고들다가 마지막에는 대통령 궁전까지 수색했다”면서 “결국엔 뭐냐. 그들이 우려하던 대량학살무기(대량살상무기)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국제적 기준이란 간판을 걸고 강제사찰하다 마지막에는 이라크를 덮쳤다”고 말했다.

북한이 우려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미국에 대한 불신을 고스란히 드러낸 셈이다.

그는 북한이 진행해온 불능화의 진척정도와 1만8천900쪽의 5MW 원자로 가동일지와 재처리공장 일지 제출 사실 등을 장황하게 설명한 뒤 “우리는 성실하게 임했다”고 강조했다.

한마디로 말해 북한은 10.3합의에 따른 의무조치를 성실하게 이행하고 있으니 미국은 검증 문제에 있어 무리한 요구를 하지 말고 자신들의 의무를 이행하라는 주장이었다.

북한이 갑작스럽게 남측과의 에너지 실무 협의를 하자고 제안한 배경이 이해되는 대목이다. 결국 북한은 미국의 약속 불이행으로 인해 불능화를 중단하고 핵시설 복구 준비에 들어갔으나 판이 깨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을 말해주려는 한 것으로 보인다.

현 부국장은 불능화 중단 및 핵시설 복구 문제와 관련해 “복구 사업을 하기 위한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다”고만 말했다.

그가 “6자 합의라는 것은 각자가 자기가 맡은, 자기 앞에 부여된 의무사항을 성실히 이행할 때 소기 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본다. 이 협상에서 좋은 결과가 되면 10.3합의 이행의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않겠나 한다”고 말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이해된다.

따라서 북한이 실무협의를 제안하는 적극성을 보였고 협의에 나와서 자신들의 입장을 자세하게 밝힌 것은 6자회담의 유용성을 여전히 인정하고 있음을 방증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최근 미국측이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 등 협상파들을 내세워 북한의 입장을 배려한 신축적인 ‘검증방안’을 놓고 중국과 협의를 벌인 것으로 알려진 것은 북한의 태도 변화 여부와 관련해 주목되는 변수로 보인다.

만일 미국이 북한이 수용할 만한 수정제안을 하고, 중국이 적극적인 중재노력을 펼칠 경우 6자회담 프로세스가 극적으로 복원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외교가의 분위기다.

그러나 대선 정국으로 접어든 미국이 국내 사정상 추가 타협을 하지 못할 경우 북한의 강공 드라이브가 이어지면서 6자회담이 장기 교착에 빠질 가능성은 상존해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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