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걸핏하면 이산상봉 중단

북한이 19일 우리 정부의 쌀, 비료지원 거부에 반발해 이산가족 상봉 중단을 일방적으로 선언하고 나온 것은 과거 관례에 비춰볼 때 크게 새로운 일은 아니다.

북한은 그동안 이산가족 상봉 중단 또는 연기를 카드로 우리를 심심치 않게 압박해 왔다.

자신들의 요구가 수용되지 않는 등 남측에 대한 ‘조치’가 필요할 때 북한은 종종 이산가족 상봉을 ‘지렛대’로 활용해 오며 상봉을 중단시키거나 연기시켜 왔다.

지난 2001년 2월 3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이후 1년2개월이나 이산상봉 행사를 중단시킨 것이 대표적인 경우다.

당시 북한은 2001년 10월 대(對) 테러전의 일환으로 시작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우리 정부의 비상경계 강화 조치를 문제 삼았다.

북한은 당시 4차 상봉행사를 불과 나흘 앞두고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담화를 통해 “남조선에 비상경계태세가 내려져 예측할 수 없는 삼엄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면서 일방적 연기 방침을 전했다.

남북은 한동안 돌파구를 찾지 못하다가 이듬해인 2002년4월 임동원(林東源) 당시 청와대 외교안보통일 특보의 대통령 특사 자격 방문을 계기로 14개월 만에 4차 상봉행사를 다시 갖게 됐다.

한동안 순조롭던 이산상봉 행사는 10차에서 11차 행사로 넘어가면서 또 다시 장기 중단상태에 빠졌다.

북한은 2004년7월 김일성 10주기를 맞아 남측 인사의 조문을 우리 정부가 불허한 것을 문제 삼아 당국간 회담을 무산시킨 데 이어 같은 달 말 탈북자 468명이 동남아 제3국에서 입국한 일과 미국 하원의 북한인권법안 통과 등을 이유로 남북 당국간 대화의 문을 닫아 걸었다.

이에 따라 10차 이산상봉 행사가 그 해 7월 중순 있은 뒤 1년이 넘게 상봉은 중단됐다.

결국 이 문제는 지난해 6월 정동영(鄭東泳) 당시 통일장관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방북해 전반적으로 막혔던 남북관계의 고리를 뚫으면서 풀렸다. 11차 이산상봉 행사는 이후 중단 13개월만인 지난해 8월 재개됐다.

이산상봉 행사는 북측의 요청으로 일정까지 잡은 뒤 연기된 경우도 있었다. 당초 3차 상봉행사는 2000년12월 열리기로 합의됐으나 북측이 내부사정을 이유로 연기를 요청해 예정보다 2개월여 늦은 2001년 2월말 열리기도 했다.

또 북한은 조선적십자병원 현대화 및 심장센터 건립, 식량 10만t 지원 등을 요구하면서 10차 상봉 합의에 버티기를 했고, 결국 협상 과정에서 상봉행사는 우리 측 제안보다 한 달여 늦은 2004년7월 열렸다.

한편 남북 이산가족 상봉행사는 지난 2000년 6.15 정상회담을 계기로 같은 해 8월15일 서울과 평양에서 각각 가진 1차 행사를 시작으로 지난달 금강산에서 열린 14차 행사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이에 앞서 남북은 지난 84년 남측의 홍수 피해에 대한 북측의 수재물자 제공을 계기로 열린 적십자 회담을 통해 이산상봉에 합의, 분단 40년만에 처음으로 85년 남북 고향방문단 상호교환 행사를 가졌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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