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개혁개방 제스처-‘위폐미봉’ 가능성

김정일은 17일 오후 인민대회당에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과의 회담을 끝으로 10일부터 시작된 7박 8일의 중국 방문을 마쳤다.

이번 방문은 김정일의 방중(訪中) 일정이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고 언론이 이를 뒤쫓듯이 보도해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중국 제 1의 경제특구 선전을 방문, 개혁개방 의지 노출 ‘선전효과’도 톡톡히 봤다.

한국 정부와 언론들이 앞다투어 ‘제 2의 개혁개방 조치’를 예상할 정도로 파급효과는 커 보인다. 김정일도 후속조치를 내놓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경제시찰단까지 대동하고 현장학습을 진행, 중국 정부에 ‘개혁 시위’를 벌인만큼 일단의 조치를 취할 것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중국을 방문하고 돌아와서는 개성공단 구상을 발표했고, 상하이(上海) 푸둥(浦東)을 견학하고는 이듬해 7.1 경제개선 조치와 신의주 특구를 발표했다. 일부에서는 개인농 허용 등의 농업개혁 조치나 신의주 특구 재추진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고려대 남성욱 교수는 이번 방문을 통해 김정일은 후 주석의 방북(訪北) 이후 유포된 20억 달러 지원설을 더욱 구체화했을 것으로 내다봤다.

개방 제스처는 취할듯, 제한성 뚜렷 확신 어려워

지난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개혁개방을 국정의 전면에 세우지 않고 체제 폐쇄성을 보완하는 형태의 개혁조치는 결국 별 효과를 드러내지 못했다. 공장이 돌지 않는 상황에서 7.1 개선조치는 인플레만 가져왔을 뿐이다. 개인농과 기업활동의 자유만 보장돼도 북한은 크게 변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는 “수령제를 포기하는 것은 빼고 김정일이 모종의 조치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개혁개방은 다양한 가치의 출현을 가져오기 때문에 수령주의에 큰 타격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면서 북한이 취할 수 있는 정책의 근본적 제한성을 지적했다.

김정일이 지난 10월 후진타오의 방북이 있은 지 몇 달만에 급히 중국을 찾은 이유가 ‘위조달러’ 때문이라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미국의 금융제재로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가운데 중국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는 점을 김정일이 간파하고 수습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김정일이 덩샤오핑(鄧小平)의 남순강화(南巡講話)를 흉내낸 것은 사실상 중국의 개방요구를 수용하는 듯한 행보를 보이면서 위조달러 문제에서 중국의 협조를 얻어내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을 가능성도 높다.

위조달러 문제와 관련, 북한의 행보는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차관보의 회동을 통해 어느 정도 윤곽이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북-중 정상회담에서 조율된 양국의 입장이 이번 회담을 통해 구체적인 협상안으로 나오게 된다.

김계관 “증거 명백하면 관련자 처벌”

김 부상은 김정일 방중에 앞서 우다웨이 중국 관리와 만나 ‘위조달러와 자금세탁 등 북한의 불법행위 증거가 명백히 드러날 경우 연루된 인사를 조사하고 일정한 조치를 취하는 것도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것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북한이 사실상 위조달러 제조와 유통을 시인하고 재발방지를 약속한 셈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과거 개별기관에서 진행된 사건이라는 수준에서 봉합을 시도할 경우 미국이 어떻게 반응할지도 관심이다. 현재 미국은 적당히 타협하지 않고 뿌리를 뽑겠다는 인상이 강하다.

북한은 금융제재가 풀리지 않으면 6자회담에 나가지 않겠다는 입장이기 때문에 김 부상과 힐 차관보의 협상이 회담 재개에도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심증은 있으나 물증은 없다’는 식으로 나오면 위조달러 문제는 고착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 말은 북한의 책임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되 추가 제재에는 반대한다는 의미가 된다.

한편, 이번 김정일의 방중에 둘째 아들 정철이 동행했다는 외교 소식통의 확인이 나옴에 따라 최근 속도가 붙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3대 권력세습이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신주현 기자 shin@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