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개척 밀수망, 거꾸로 김정일 덮친다

▲ 압록강변에서 중국인(선박)과 흥정하는 북한 주민 <사진:김영진 특파원>

2004년 말 김정일은 조-중 국경 지역의 기관들에게 ‘밀수 근절’을 지시했다. 지금까지 마약을 미롯해 미사일, 핵 물질, 화학무기 원료 등 온갖 밀매를 진두지휘 해온 김정일이 갑자기 ‘밀수 근절’을 외친 이유는 무엇일까?

‘밀수 근절’ 주요 문건들

미국이 주도하는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 때문에 김정일은 미사일 수출의 길이 거의 막혔다. 마약 판매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귀중한 달러 수입원이 고갈되고 있다. 이를 보충하기 위해 최근 김정일은 가짜 외국 상표(마일드세븐, 말보로 등) 담배 제조 및 밀매에 손을 대고 있다고 한다.

암거래 수출품이 미사일에서 담배로 바뀐 것은 이제 ‘막가는’ 것이라고 평가해야 할까? 어쨌든 김정일은 밀매로부터 손을 뗄 생각이 없다는 것은 확실하다. 밀매는 외부세계의 원조와 더불어 김정일 체제를 유지하는 양대 기둥이기 때문이다.

그럼 ‘밀수를 근절한다’는 지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김정일 체제에서 밀매는 ‘극약’과 같은 것이다. 잘 쓰면 체제유지의 ‘묘약’이 되지만, 잘못 쓰면 독재체제를 부식시키는 ‘독약’이 된다. 북한 당국이 외화벌이를 위해 오랜 세월 개척해온 밀수망을 통해 독재체제에 유해한 ‘독소’가 북한으로 들어가고 있다

지난해 북한의 반체제 인사로 평가되는 김만철 씨(가명)는 북한 당국의 ‘비밀문서’를 대량으로 탈취하여 국경을 넘었다. 작년 10월 25일 <자유아시아방송>이 발표한 이 문서들은 ‘내각 지시’ 문건이 5통, ‘대내 한정’ 문건이 2통으로, 총 분량은 40페이지가 넘는다.

김정일이 하면 ‘혁명사업’, 주민들이 하면 범죄행위

▲김만철 씨가 입수한 북한 당국의 비밀문건 <사진:RENK제공>

이 중에 북한의 밀수사정을 엿볼 수 있는 2통의 내부문건이 있다. 하나는 “밀수행위를 뿌리뽑기 위한 투쟁을 강하게 벌리자(국경연선)”라는 제목의 <정치사업 자료>(조선노동당 함경북도위원회, 2003년 11월)이며, 다른 하나는 “이색적인 록화물과 출판선전물들을 리용 류포시키는 현상과 강하게 투쟁하자”는 제목의 <국경연선 주민정치사업 자료>(조선노동당 출판사, 2003년 11월)이다.

두 문건 모두 일련번호가 적혀 있으며, 표지 상단에는 ‘제강(지시내용)을 침투시키고 나서 회수, 보관할 것’이라는 설명이, 표지 우측에는 ‘대내 한정’이라는 표기가 있다. 모두 문서의 외부 유출을 우려한 조치다.

첫 번째 문건은 첫 문장부터 놀라게 한다.

“밀수행위는 나라의 안전과 인민의 이익을 해치는 엄중한 범죄 행위이다.”

북한은 이미 국제적으로 공인된 ‘밀수 공화국’인 마당에 밀수를 ‘엄중한 범죄행위’라고 하니 웃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여기서 김정일이 생각하는 ‘밀수’와 우리들이 생각하는 ‘밀수’는 개념부터 다르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김정일은 다른 나라 국민들의 안전과 이익을 해치건 말건, 자신에게 달러를 안겨주는 일이라면 그것을 ‘밀수’라고 생각지 않는다. 그것은 ‘혁명위업’ 달성을 위한 정당한 공작 활동이다. 오로지 자신의 체제유지에 해가 되는 행위만을 ‘밀수’라고 생각한다.

영상물 유입 두려워하는 김정일

위의 문건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다.

“국경연선에 있어서의 밀수 행위가 성행하면, 국경 질서가 문란해지고 그 틈을 이용해 상인과 결탁한 불순 적대분자가 준동하게 된다.”, “남조선 괴뢰의 정보원 놈들이 교활한 방법으로 주민에게 밀수 행위를 부추겨 중요한 비밀 자료와 전략 물자와 같은 국가 통제품을 훔치고 있다.”

요즘 한국의 정보기관들이 그만큼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 당국의 ‘비밀자료’들이 북한의 반체제 인사들에 의해 연달아 공개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또한 ‘동(銅)이나 알루미늄 같은 희소 금속’이나 ‘과일, 외화벌이용 농산물’ 등의 국가 통제품을 헐값으로 판매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런 행동은 굶주림을 모면하려는 일반 주민들의 정당한 자기 방위다. 그것을 ‘엄중한 범죄 행위’라고 부른다면, 식량 배급도 폐지하고 약속한 임금조차 지불하지 않으면서 외부 원조물자를 혼자 독식하는 김정일은 ‘죽을 죄’가 적용돼야 할 것이다.

2개의 <국경연선 주민정치사업 자료>에는 전자제품의 대량 유입에 대해서 “지금, 적들은 국경을 통해서 우리의 내부에 운반이 편리한 CD녹화기와 CD영상물을 대량으로 가지고 오고 있다”고 적혀있다.

탈북자 그룹과 기독교 선교단체들의 활약

흥미로운 것은 CD영상물의 내용이 “자본주의 국가의 화면 음악(노래방의 반주영상)이나 외국영화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영화를 왜곡 번역한 것이 적지 않다”고 언급한 점이다.

문건에서는 ‘한국 정보기관의 공작’이라고 흥분하고 있지만, 현재의 한국 정보기관들이 진짜 이런 재치를 가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정작 사실은 북한 민주화를 목표로 하는 탈북자 그룹들이 북한 당국이 제작한 체제선전 동영상에 ‘반체제 내용의 음성’을 더빙해서 북한 내부에 배포하는 것이다.

이것과 일맥 통하는 것이 기독교 선교단체들의 활동이다. ‘성경책’과 기독교를 소개하는 ‘소책자’가 지속적으로 북한으로 들어가고 있다. 문건에는 “2003년에 은덕군에서만 미신 관련 소책자를 가지고 온 이웃나라의 불순분자를 체포했던 것이 2건에 달한다”고 기술되어 있다.

어쨌든 지금 북한에서는 ‘CD녹화기와 CD영상물’이 급속히 퍼지고 있다. 특히 부유층 사이에 한국제 캠코더와 디지털 카메라가 유행이다. 덕분에 ‘이색적 녹화물을 매매하거나 가지고 다니며, 사람들을 모아서 함께 보는 현상’이 주민의 사이에 퍼지고 있다.

그러나 ‘혁명의 수뇌부를 결사옹호 할 수 없게 하는 악랄한 반혁명적 독소’에 대해 아무리 밀고를 장려해도 단속의 효과는 거의 없어 보인다.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에게 ‘뭐 이 정도로 이웃과 친구들을 고발하는가?’라는 생각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 북한 당국은 주민들의 ‘밀고’를 독려하고 있지만 실제 주민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사진:RENK제공>

휴대전화로 ‘보고’도 한다

김정일은 이 같은 밀수근절을 위한 대책을 마련했다. 이른바 ‘휴대전화의 일제 단속’이다. 또 다른 <정치사업 자료>에서는 다음과 같은 지침을 전달하고 있다.

“밀수 행위를 막기 위해 비합법적인 휴대용 전화기의 사용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일부 주민은 휴대용 전화기를 가지고 고층 건물이나 산꼭대기 등 통화 조건이 유리한 곳에 잠복해, 주변 나라의 사람들과 비합법적으로 제휴를 가지며 밀수 행위를 하고 있다. 또한 주민들 속에는 휴대용 전화기로 주변 나라의 상인과 연락을 대신해주고 통화료를 받아 챙기는 한심스러운 현상도 있다. 국경연선 지역에서 비합법적인 휴대용 전화기 사용을 엄격하게 통제하기 위한 실무적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아무리 ‘실무적 대책’을 세워 봤자, 국경지역의 상인들에게 보급된 휴대전화(중국제)를 단속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단속을 담당하는 보위부 요원까지 휴대전화의 편리함에 빠져있기 때문이다. 언제 연결될지 모르는 유선전화만 가지고는 제시간에 ‘상부에 보고하는 일’조차 쉽지 않으니 말이다.

특히나 중국에 잠입해서 탈북자들을 잡아들이는 보위부 요원들에게 휴대전화는 필수품이다. 이외에도, 중국에 출장 가는 인민군 직영의 상사원이나 공작기관의 요원들은 불법개조를 통해 국제통화가 가능한 중국제 휴대전화로 평양과 끊임없게 연락을 주고 받아야 한다. 때문에 국가의 집중단속 기간에만 전원을 껐다가, ‘검열기간’이 끝나면 마음껏 사용한다.

말할 필요도 없지만, 휴대전화의 통화는 미국의 전자 도청망에 그대로 노출된다. 밀수인의 통화뿐만 아니라 보위부 요원, 공작원, 그리고 정부 고위관료들의 통화내용까지 다 노출되는 것이다.

‘용천사건 테러설’ 의도적 유포 가능성

이런 상황에서 김정일의 탁월한(?) 계략이 등장하는데, 작년 4월에 발생한 ‘용천 폭발사고’를 대대적으로 이용한 것이다. 국외에는 폭발 사고를 재빨리 인정하여 막대한 원조물자를 받아 챙기면서, 국내에는 4월 24일부터 ‘테러설’을 의도적으로 유포했다.

북한 당국에서는 ‘휴대전화를 이용, 한국 정보기관의 사주를 받은 범인을 체포했다’고 발표했다. 작년 5월 청진의 한 인민반 회의에서는 이렇게 보고되었다.

“용천 폭파범이 체포되었다. 1944년생의 여성으로 성은 ‘고’씨인데, 거주지나 공범자등에 대해서 완전 침묵하고 있다”

‘김정일 암살미수 사건’을 전국에 유포하면서, 김정일은 휴대전화의 ‘일제박멸’을 노렸던 것이다. 현장에서 휴대전화 잔해 발견, 주소 불명의 범인 체포, 공범자는 정체 불명으로 한국 정보기관과 연계혐의 수사중… 이런 소문이 나돌면, 휴대전화 소유자는 누구라도 공범이 될 수 있다는 공포감이 생긴다. 김정일의 계획은 그대로 들어맞아 휴대전화를 버리거나 당국에 자진 제출하는 주민들이 증가했다.

그러나 김정일의 모략도 결국은 얕은 꾀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폭발 사고의 여운이 식어가자 북-중 국경 휴대전화가 부활, ‘체제를 위협하는 밀수행위’가 다시 증가한 것이다. 밀수왕 김정일이 ‘악랄한 반혁명적 독소’라고 매도하는 북한 주민의 ‘밀수행위’는 독재체제에 대한 저항의 증거이다. 때문에 ‘근절’은 절대 불가능하다.

지금 김정일 정권은 “밀수에 살고 밀수에 죽는다”는 자업자득의 말로(末路)로 가고 있다.

이영화/ 일본 간사이대 교수


– 일본 오사카 출생(1954)
– 평양 조선사회과학원 유학(1991)
– (現)간사이(關西)대학 경제학부 조교수
– (現)<구출하자! 북한민중/ 긴급행동네트워크(RENK)>대표
– 주요저서<북조선 수용소군도>, <재일 한국, 조선인과 참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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