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개성 왕씨 족보 공개

북한 화보 ‘조선’ 3월호가 고려태조 왕건 가문의 족보책을 공개했다.

화보는 북한에서 고려 왕씨의 족보책이 최초로 공개되기까지 사연을 사진과 함께 소개했다.

화보에 따르면 1992년 9월 개성시에 살고 있던 태조 왕건의 31대 후손인 왕지송 노인은 오랜 세월 소중히 보관해 오던 왕씨 가문 족보책을 들고 개성시 당위원회에 찾아왔다.

왕 노인은 “왕씨 가문 족보책을 우리 가문의 하늘이신 김일성 주석께 드려 주시우다(주십시요)”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갔다.

왕 노인이 족보책을 국가에 기증할 결심을 굳힌 것은 4개월전인 1992년 5월 고(故) 김 주석이 황해북도 개풍군(당시 개성직할시 개풍군) 해선리에 있는 고려태조 왕건 왕릉을 돌아보고 시조왕의 무덤답게 훌륭하게 개축하라고 지시한 것이 계기가 됐다.

사실 왕씨 가문 족보는 자칫 역사의 어둠 속에 영영 자취를 감출 뻔 했다.

고려에 이어 등장한 조선이 고려 왕족인 왕씨를 탄압하자 왕씨 후손들은 자신들의 내력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꺼리면서 기나긴 세월 성(姓)과 신분을 드러내지 않고 족보책도 감춘 채 숨어 살아왔기 때문이다.

왕 노인은 김 주석의 현지지도와 왕건 릉 확장 소식을 전해듣고 “선조들의 마음까지 합쳐 감사의 정을 담아 귀중한 족보책을 내놓을 용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또 족보에는 왕건의 화상도 담겨있어 북한에서는 이때 처음으로 왕건의 실제 얼굴모습을 알 수 있게 됐다.

왕 노인은 왕건이 사용했다는 옥새도 함께 기증했다.

한편 왕건의 묘는 1994년 1월 부지면적 5만5천㎡ 규모로 개축ㆍ확장됐다.

묘의 외부에는 김 주석의 친필로 쓴 고려태조 왕건왕릉 개건비와 대문, 제단, 비각, 돌로 만든 문관과 무관상, 망주석 등이 있고 내부는 원상대로 복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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