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관광이 중단된 지 11일로 4개월째다. 이명박 정부 출범 후 북한의 ‘남한 길들이기’전략에 따라 당국간 관계도 꽉 막힌 상태다. 더불어 북한의 선전매체들과 당국자들은 최근 들어 부쩍 개성공단 및 개성관광 중단 가능성까지 암시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다.
지난 6일 북한 국방위원회의 김영철 정책실장이 개성공단을 방문해 남측 관계자들에게 “철수하는 데 얼마나 걸리느냐”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개성공단·관광 중단에 대한 사전 포석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강하게 제기됐다.
이미 북한은 지난달 2일 남북군사실무회담에서 남측 민간의 대북 ‘삐라’ 살포를 문제 삼아 개성공단 및 개성관광과 관련한 모종의 조치를 취할 수 있음을 암시한 바 있고, 지난달 16일 노동신문은 ‘남북관계 전면중단’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와 더불어 11일엔 북한이 남북 경제협력 사업을 총괄하는 민족경제협력위원회(민경협)를 민족경제연합회(민경련)로 축소 개편하고 소속도 내각에서 당으로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조봉현 기업은행 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11일 “북한은 기존 민경협 내 일부 조직을 민경련 산하 대외사업국으로 통폐합해 중국 등과의 해외 경제사업에 투입했으며 민경련에 당 소속 인력을 대거 배치했다”고 밝혔다.
민경련을 내각이 아닌 당 소속으로 복귀시킨 것은 남북 경협을 ‘경제원칙’이 아닌 ‘정치원칙’에 따라 운영하겠다는 의도도 엿보인다. 조 연구위원도 “대남 경협을 당이 직접 통제해 남북경협을 정치적인 목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커졌다”고 분석했다.
이에 따른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민화협) 대표상임의장은 11일 “북한군 김영철 중장의 개성공단 ‘철수’ 발언은 실제 행동으로 옮겨질 수 있는 가능성을 안고 있는 심리전”이라며 정부의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친박연대 송영선 의원도 북한이 개성공단에서 철수할 가능성에 대해 “철수하더라도 점차 압박수위를 높여가는 방식으로 할 것”이라며 개성관광 중단→개성 출입횟수 축소→남측 상주인력 조정→개성공단 중단 등의 여러 단계를 거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정부는 최근 북한이 보이는 태도가 개성공단 및 관광 중단 등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11일 “개성공단 사업은 김정일이 이뤄놓은 위대한 업적으로 북측도 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절대 중단할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정부가 오히려 개성공단 활성화를 위해 통근버스 100대 추가 및 탁아소, 소각로 설치 등 구체적인 계획을 마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의 대남압박과 달리 개성 현지에서 진행되고 있는 남북 민간교류는 외관상 정상적인 모습이다.
‘따뜻한 한반도 사랑의 연탄나눔운동’은 11일 전라남도 강진군이 지원한 쌀 40t과 함께 연탄 5만장을 개성지역 주민들에게 전달했고, 남북역사학자협의회는 이달 초 개성에 있는 고려 궁성유적인 ‘만월대’에 대한 제3차 남북 공동 발굴조사를 시작했다.
개성 관광도 종래와 다를 바 없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관광공사 남북관광사업단 관계자는 “평일 방북 인원이 초창기 때보다 줄었지만 관광 자체는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아산측도 “관광코스나 북측의 태도 등에서 달라진 점은 없다”고 밝히고 있다.
개성공단내 공장들의 조업도 정상적으로 이뤄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동명한 중소기업진흥공단 남북협력지원실장은 “입주기업들이 시험생산을 시작함에 따라 북측에서 필요 인원을 수시로 파악해 정상적으로 공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당국간 교류는 중단상태지만 민간의 교류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으로 볼 때 북한의 최근 ‘개성’ 관련 언급들은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압박하기 위한 ‘엄포’일뿐 실질적 행동에 나서기 위한 조치로 해석하기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김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6·15, 10·4선언 등을 비롯한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을 전환을 노린 대남압박용”이라고 규정하며 “개성공단과 관광이 실질적 외화 수입원이기 때문에 우리 기업체 등에 대한 추방은 하지 못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 연구위원은 “우리가 이미 대북 대화를 제기했기 때문에 원칙을 지켜야 한다”며 “더이상 북한의 ‘벼랑끝 전술’에 말려들어서는 안된다. 더 이상 조치를 취할 필요는 없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단계별 조치를 취할 가능성에 대해 그는 “북한이 개성공단에 대한 철수 조치를 취한다고 하더라도 말려들어서는 안된다”며 “개성공단은 북측의 이익이 더 크기 때문에 위협은 있을 수 있겠지만 실제 철수는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