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개성공단 소동’ 새 남북관계 바꾸는 좋은 기회

북측이 개성공단 남북경제협력협의사무소(경협사무소)의 남한측 상주 요원들을 철수시켰다.

통일부 대변인은 북측이 “북핵 문제 타결 없이는 개성공단 확대가 어렵다”는 최근 김하중 통일부장관의 발언을 빌미로 삼았다고 밝혔다.

4.9총선을 눈 앞에 둔 정치권은 혹시 선거에 불똥이 튈까, 북측의 도발을 서로 유리하게 해석했다. 새 정부 들어 상호주의를 실제 해본 적도 없는데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의) 상호주의가 빚은 결과”라며, 벌써 ‘거 봐라, 햇볕정책 안 하더니 꼴좋다’는 식이다.

하지만 북측의 이번 도발은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 속이 뻔히 들여다 보이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이 예상하고 있던 것이다.

북측이 이런 종류의 ‘사소한’ 도발을 해올 때 그 배경을 비교적 쉽게 알아보는 방법이 있다. 문제를 푸는 공식 비슷한 것이 몇 개 있다는 말이다. 그중에서 비교적 유효한 ‘공식’ 중 하나가 ‘김정일의 입장’에서 분석해보는 것이다.

북한은 체제원리 자체가 ‘수령이 사회역사발전의 유일한 동력’으로 되어 있다. ‘사회역사발전의 동력’ 운운으로 표현해놓으니까, 무슨 번듯한 사상과 논리체계가 있는 것 같이 보이지만, 쉽게 말해 김일성 수령(=지금은 김정일 장군님)의 지시와 말씀대로 사회가 움직인다는 뜻이다. 20세기 초반의 케케묵은 구공산권의 수령론에 기초하여 1970년대에 유일사상체계와 같이 ‘김정일식’으로 한참 더 개악해놓은 북한식 수령론이다.

그러면 지금 김정일에게 가장 골치 아픈 문제가 무엇일까? 그것은 대미관계가 제대로 안 풀리고 있다는 것이다. 이유는 물론 핵문제 때문이다.

지금 김정일의 장기적인 목적은 핵보유국으로 묵인받고 핵무기를 보유한 상태에서 미국과 관계개선을 해서 미-중에 외교적 양다리를 걸쳐 경제적, 정치외교적 이득을 보면서, 정권과 체제를 더 안정되게 가져가자는 것이다. 굳이 비유해보자면 – 그것이 과연 현실적으로 가능한가 하는 문제와는 별도로- 핵 보유국이자 평화적 핵 이용권도 갖게 된 인도와 비슷한 형태로 한번 가보자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당장 눈앞에 놓인 문제는 미국이 테러지원국에서 풀어주는 것이다. 이런 조건에서 남한의 역할은 착실하게 물자를 지원해주면 그만이라는 것이 김정일의 복심이다.

하지만 지금 김정일이 처한 형국은 미국에 의해 완전한 핵신고와 시리아와의 핵 연계 문제가 걸려 있다. 미국으로부터는 직접 압박을 받고 있고, 베이징 올림픽을 평화적 외교환경에서 치루어 보려는 중국으로부터도 간접 압박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남한은 지난 10년간 해온 것처럼 고분고분하게 식량과 비료를 갖다 바치면서 남북관계를 ‘평화적으로’ 가져가면 될 텐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서 대북정책의 방향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그 무슨 통일부 장관이라는 너절한 감투를 쓰게 된 김하중이라는 자’가 핵문제 해결없이는 개성공단 확대가 어렵다는 식의 ‘망발’을 늘어놓으니, 김정일 입장에서는 이를 빌미삼아 일단 ‘긴장모드’로 가져가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김정일은 ‘긴장 모드’로 옮겨가면서 남한의 새 정부로 하여금 “지난 10년간의 남북관계는 근본적으로 남한이 북한에 돈을 주고 ‘평화’를 구매하는 관계였고, 앞으로도 이 관계에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잘 깨닫도록 길을 들이려는 의도이다. 또 노무현 정부 때 북한이 잠깐 신임 이종석 통일부 장관을 길 들여 비료와 식량을 받아 갔듯이, 신임 김하중 장관을 길들이려는 수작도 다분히 묻어 있다.

지금 김정일이 ‘긴장 모드’로 옮겨가게 되면, 핵문제에 성과를 바라는 미국에게도 – 구체적으로는 크리스토퍼 힐과 라이스 장관에게- 일정한 압박을 줄 수 있고, 완전한 핵신고를 요구받으며 미국으로부터 넘겨받은 ‘공’을 일단 대남관계 코트 쪽으로 홱 집어 던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눈에 직접 보이지는 않지만 북한이 한반도에 긴장을 고조시키려는 의도가 비쳐지면 골머리가 아픈 쪽은 중국이다.

중국은 지금 서쪽의 티벳 문제로 골치 아픈 마당에 동쪽의 한반도에 새 긴장이 조성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다. 지금 중국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오로지 주변의 안정, 또 안정이다. 그런데 김정일이 주변에서 슬그머니 긴장을 고조시키려 들면 중국은 단기적으로 김정일을 ‘달래는’ 방법으로 갈 수밖에 없다. 김정일을 ‘달래는’ 방법은 중국이 외교적으로 미국의 공세를 막아내주고 식량과 기름, 돈을 좀 주는 것이다.

정리하면, 이번 개성공단 남측 요원 추방은 김정일이 미국의 완전한 핵신고 요구 등을 약화시키고, 이명박 정부 길들이기 작업을 슬슬 시작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긴장고조 대상 지역을 처음부터 휴전선이나 서해 NLL 등 군사작전 지역으로 잡지 않고 ‘남북관계의 상징장소’인 개성공단으로 잡은 것은, 김정일이 그나마 대미, 대중 관계를 좀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개성공단 지역인 만큼 이 문제는 ‘남북 사이의 일’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김정일이 앞으로 ‘미-북간의 군사분쟁 지역’인 서해 NLL까지 긴장을 고조시켜나갈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또 핵실험 이후 2.13 합의에서 시작된 ‘평화 모드’를 다시 ‘긴장 모드’로 완전히 옮겨갈 것으로 장담하기도 아직 이른 편이다.

김정일은 일단 개성공단에 작은 소동을 일으켜놓고, 이명박 정부의 첫 대응 수(手)를 타진해 보려는 것이 목적인 것 같다. 여기에서 이명박 정부가 꿈쩍도 하지 않으면 앞으로 긴장고조의 수위를 더 높일 수도 있겠지만, 만약 긴장고조의 수위를 더 높이기로 한다면 대남관계보다 대미관계를 더 염두에 두고 결정할 것이다. 만약 김정일이 부시 행정부와는 대화를 완전히 끝내고 미국의 새 정부와 처음부터 다시 관계설정을 해나가기로 결정한다면, 서해 등지에 도발해올 수 있을 것이다. 이때의 도발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확실한 협박의 성격을 띠게 된다.

개성공단 소동, 대북전략 좋은 기회로 만들어야

그러면 뻔히 보이는 김정일의 이런 수작을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이번 개성공단 소동은 2006년 7월, 미사일 발사후 북측이 자기 요원들을 철수시킨 사례도 한차례 있었고, 또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이미 예상된 일인 만큼 정부와 언론은 호들갑을 떨 필요가 전혀 없다. 특히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기 친정부적이었던 매체들은 일부러 사태를 과장해서는 안된다. 일부 정치권도 ‘햇볕정책 외에 대안이 없다’는 식으로 나가면 그것은 사태 해결이 목적이 아니라 정치 선전선동이 된다.

첫째, 북측의 이번 소동이 새 정부를 시험하는 성격이 강한 만큼 정부가 이에 대응하거나 먼저 대화를 요청하면 손해다. 대통령은 물론이고 총리, 통일부 장관도 여기에 언급조차 할 필요가 없다. 철저히 무시하는 게 첫 수순이다.

둘째, 예정된 이명박 대통령의 방미를 통해 북한 핵문제에 대한 한-미간의 합의가 먼저 있어야 한다. 김정일이 핵무기를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음을 지금쯤 라이스 국무장관이나 크리스토퍼 힐은 깨달았을 것이다. 따라서 6자 틀 속에서 북핵 폐기 프로세스는 계속 해나가되,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이 한반도 비핵화 달성을 위해 실질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해 한미간에 먼저 합의를 해야 하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번 방미 기간 중 큰 틀에서 한미간 합의를 이룬 다음, 부시 행정부 임기내 북핵문제를 둘러싼 마지막 미-중간의 전략대화를 갖도록 요구하고, 그 ‘매파’를 한국이 서야 한다. 한국은 다시 튼튼해진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위상이 좀더 높아진 상태에서 한-중 협력관계를 한 단계 더 높여야 한다. 이번 베이징 올림픽이 한중 협력관계를 높이는 데 여러모로 좋은 기회다. 한국은 중국의 동쪽 지역 안정을 위해 북한과 협력하기보다 남한과 협력하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는 사실을 중국에게 확실히 인식시키고, 한반도의 항구적 안정을 위한 한중협력관계를 확실히 구축해야 한다.

셋째, 김정일로 하여금 북한 내부 문제에 관심을 집중하도록 적극적으로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김정일이 개성공단 등 대남, 대외관계에 소동을 일으켜서 이익을 취하려는 행동 자체가 북한 내부문제는 그리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숨어 있다. 다시 말해 김정일의 최대 관심은 자기 정권유지인데, 여기에 별 누수현상이 없다는 뜻이다.

만약 북한 내부에 김정일 정권을 위협할 만한 요인이 있다면 김정일이 대외적으로 장난을 칠 여유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김정일이 내부 문제에 골몰하도록 대북전략을 가져갈 필요가 있고, 이를 위한 대북전략 전반을 다시 점검해야 한다. 국정원은 앞으로 이 문제를 다루는 데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넷째, 이번 개성공단 소동을 계기로 하여, 김정일에게 비합리적인 행동을 하면 얼마나 손해가 따르는가를 피부에 와닿도록 보여줄 필요가 있다. 다만 여기에는 시간이 필요하다. 다시 말해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급하게 나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개성공단 참여업체들도 사업참여 전부터 남북간 문제에 휘말릴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북한문제를 국내정치에 이용할 생각만 없다면 이 문제를 유리하게 풀어갈 수 있다. 지금 개성공단으로 이익을 보는 쪽은 현금을 챙기는 김정일이지, 남한이 아니다. 북측이 먼저 우리를 철수시킨 만큼, 이 문제 해결을 위해 먼저 요청해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맞다. 그동안 어떻게 북한을 ‘교육’시킬 것인가에 집중하는 것이 좋다.

다섯째, 김정일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자기보다 강한 군사력, 즉 한미군사동맹이다. 이것은 지난 60년간 남북간 평화유지에서 불변의 원리다. 김정일을 현실적으로 다룰 수 있는 주요 수단은 ‘말’이 아니라 힘과 돈이다. 새 정부는 앞으로 일정한 시기에 한미군사동맹이 얼마나 강력한가를 조용히 보여줄 필요가 있다. 언론에 떠들 필요도 없고 김정일에게 효과적으로 전달만 되면 된다. 김정일이 가장 겁내는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국방부는 여기에 관심을 집중해서 여러 수단과 경로를 찾아보면 중요한 경로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2000년대 이후의 북한과 90년대 이전의 북한 사이에는 확실히 차이가 있다. 70,80년대 북한은 도발하기 전에 미리 시끄럽게 떠든 적이 거의 없다. 90년대까지도 그랬다. 한쪽에서는 은밀히 도발하고 또 한쪽에선 대화하자고 나왔다. 이른바 담담타타(談談打打) 방식에 속칭 ‘작업 방식’도 비교적 능동적이었다.

하지만 2000년 이후부터 북한은 서해도발을 할 때도 자꾸 시끄럽게 떠든다. 핵실험을 할 때는 1년 8개월 전에 ‘핵보유 선언’부터 떠들었다. 은밀히 핵실험을 해도 될 일을 먼저 시끄럽게 떠드는 것이다. 이것은 김일성과 김정일의 일하는 스타일의 차이로 볼 수 있겠지만, 김정일이 처한 내외적 환경이 스스로 불리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이기도 하다. 자신이 강하면 조용히 강한 모습을 보여주면 그만이다. 하지만 김정일 정권은 이미 빈 깡통이 되었다. 그래서 시끄러운 것이다. 협상은 상대가 약해졌다는 사실을 정확히 알면 유리해진다.

지난 10년간의 잘못된 남북간의 협상 위치를 이제 바꿀 때가 왔다. 우리가 능동형, 주동형의 지위를 가질 때가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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