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산 관광객 고(故) 박왕자(53.여)씨 총격 피살사건과 관련, 일부 언론에서 “북한 군부내 강경파에 의한 행동일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지만 이는 북한 체제의 특성을 전혀 모르는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기동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선임연구원은 14일 ‘데일리엔케이’와의 전화 통화에서 “새 정부 출범 이후 현재까지 남북관계에서 북한 군부가 특별히 불만을 가질 만한 정책이 없다”며 “현재 남북관계에 불만을 갖고 있는 군부 내 ‘강경파’가 이번 사건을 주도했다고 보는 것은 무리”라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물론 북한 군부 내에 개별적으로 강성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있을 수는 있겠으나, 그들이 일정하게 세력화되어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북한의 권력 구조 속성상 ‘강경파’와 ‘온건파’가 구별돼 있고, 그중 일부 세력이 단독으로 불만을 표출하는 일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라고 지적했다.
유호열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에도 사안과 이해관계에 따라 강경파와 온건파가 있을 수는 있다고 본다”고 전제한 뒤 “그러나 그런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정점에는 여전히 김정일 1인만이 있을 뿐이다. 근본적인 틀 자체에 변화가 생긴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주장했다.
유 교수는 “(이번 사건은)한쪽은 선만 넘으면 총격을 가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집단이고, 한쪽은 그것에 무방비로 노출될 수밖에 없는, 근본적으로 안전구조가 너무 취약함으로 인해 발생한 문제”라며 “총격을 가한 병사들 문제도 있겠지만, 근본적인 문제점은 결국 체제상의 문제”라고 말했다.
‘북한 내 군부 강경파들이 남북정책 결정 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강경노선을 취하고 있는 것’이라는 분석은 그 동안 계속 존재해 왔다. 북한이 서해교전, 미사일 발사, 핵 실험 등 다양한 군사적 방법을 동원해 한반도에 긴장을 가져올 때마다 이런 주장은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이 같은 군부 내 ‘강경파’ 주장과 관련해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비서는 수년 전부터 “수령의 유일적 영도체계와 절대적인 독재체제 때문에 김정일의 말 한 마디가 그대로 법이 되어버리는 사회에서 강경파가 어디 있고, 온건파가 어디 있느냐”며 “그걸 그대로 믿는 사람들이 바보”라고 지적했다.
황 전 비서는 한 강연회에서 “김정일은 모든 일을 자신이 지시해놓고도 필요에 따라 ‘그건 군대가 한 일’이라며 발을 빼는 전술을 구사한다”며 “남북관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김정일 결정하고 지시한다고 보면 된다. 강경파가 어쩌고 하는 것은 모두 쓸데없는 소리”라고 일축한 바 있다.
한편, 익명을 요구한 한 안보전문가는 전화 통화를 통해 “현재까지의 정황으로 볼 때 이번 사건을 일개 초병의 판단 착오로 보기 어렵다”며 “김정일의 판단과 지시에 의해 사전에 치밀하게 계산된 의도적 도발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