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강경책, 6자회담 무력화로 美와 직접대화 노린 것”

북한이 영변 핵시설의 감시카메라와 봉인을 제거해 주도록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공식 요청하는 초강수를 둬 북핵문제에 대한 위기감이 한층 고조되고 있다.

지난 6월 북한의 핵프로그램 신고서 제출 이후 검증체제를 두고 협상에 돌입한 미국과 북한이 합의 도출에 실패하면서 미국은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를 미루고 있고, 북한은 이에 반발해 불능화한 영변 핵시설 원상복구를 선언했다.

이후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재가동할 준비를 완료했다고 선언한 데 이어 22일 급기야 북핵 불능화 작업을 감독해온 IAEA에 핵시설 봉인 및 감시카메라 제거를 요청했다. 이미 북한은 영변 핵시설의 봉인을 일부 제거하고 감시 카메라도 제거했다는 말까지 전해진다.

더불어 미국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테러지원국에서 해제하기 위한 추가조치를 취하거나 북한이 수용 가능한 검증체계(검증 의정서)로의 양보가 있을 때까지 대미 압박수위를 점점 높여갈 것이라는 전망이다.

향후 예상되는 북한의 카드는 일단 지난 2007년 11월부터 북한에 상주하며 영변 핵시설 불능화 작업을 추진해온 미국 정부의 불능화팀과 불능화작업을 감독해온 IAEA 사찰팀의 추방조치가 거론되고 있다. 이 경우 북핵 6자회담은 지난해 10월 이전단계로 돌아가게 된다.

북한은 향후 영변의 핵연료봉공장, 5MW원자로, 재처리시설(방사화학실험실)등 불능화 조치가 이뤄지던 3개 핵심 시설에 대한 복구 작업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짧은 시간 내 복구 가능한 플루토늄 재처리시설에 대한 복구 작업에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복구시간은 짧으면서 미국 등 6자회담 관련국들에 가장 큰 압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현 영변 재처리시설은 불능화 조치에 따라 보조 장비 등은 제거됐지만 핵심 장비는 여전히 보존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재처리시설의 원상복구에 짧으면 2달, 길어도 3~4달이면 복구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플루토늄을 늘리는 것이 가장 강력한 협박 카드”라면서 “원자로 재가동에는 6개월 이상 걸리지만 1~2개월이면 방사화학 실험실 등은 복구가 가능해 재처리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전성훈 통일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당장 기술적 큰 의미가 있는 조치는 아니고 단지 핵시설 원상복구의 순서를 밟고 있는 것일 뿐”이라며 “북한은 올 연말가지 이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불능화 시설의 원상복구는 1년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재처리시설을 복구하면 현재 수조 안에 보관 중인 4천800개 정도의 사용 후 연료봉과 원자로에 내장돼 있는 3천200여개의 연료봉을 재처리해 무기급 플루토늄 6∼8kg 내외를 추가 생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는 곧 핵무기 재생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재처리시설 복구 작업이 급속히 진전될 경우 10월 말까지 완료하기로 예정돼 있던 대북 경제·에너지 지원 합의가 완전히 물 건너가는 것은 물론, 전체 6자 회담 프로세스가 좌초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때문에 핵심 당사국인 미국은 사태가 극단적인 상황으로 치닫는 것을 막기 위해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신중하게 상황에 대처하고 있다.

그동안 미국은 북한이 국제적 기준에 맞는 검증체제에 합의하지 않을 경우 테러지원국 해제는 불가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반면 북한은 미국이 원하는 수준의 검증체계, 즉 특별사찰과 시료채취 등에 대해 수용 불가라는 입장으로 맞섰다.

이 같은 양측의 현격한 입장 차이는 전혀 좁혀지지 않아 결국 북한이 불능화 조치 중단과 핵시설 원상복구라는 초강수를 들고 나온 것이다.

현재 뉴욕에서 한·미·중 외교장관들이 모여 검증 협상의 진전과 6자회담 프로세스 재개를 위한 대책을 협의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이 원하는 수준의 검증체계 구축과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는 대선국면에 돌입한 미국으로선 받아들이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당분간 북한은 특유의 ‘벼랑끝 전술’을 계속 구사하며 불능화 작업의 원상복구를 계속 시도하면서 ‘검증체계’를 두고 미국과 한 치의 양보도 없는 기싸움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다 결국 검증체계와 핵시설 원상복구를 둘러싼 북핵문제는 올해를 넘겨 북한과 미국 차기 행정부의 재협상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 경우 6자회담에 대한 ‘무용론’까지 등장할 가능성이 높다.

전 연구위원은 “북한의 이 같은 조치는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 지연이 직접적 원인”이라면서 “부시 행정부도 ‘검증 의정서’가 먼저라는 입장이기 때문에 북핵문제는 미국의 차기 정부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6자회담도 당분간 개점휴업 상태에 놓일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의 차기 정부의 수장이 누가 되느냐에 따라 6자회담 무용론이 대두돼 미북간 직접대화를 통한 북핵해결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며 “북한의 최근 움직임도 6자회담 틀을 깨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북핵문제를 악화시켜 이름뿐인 6자회담을 무력화하고, 동시에 미국의 관심을 끌고 북미 직접대화를 이끌겠다는 뜻이다”고 덧붙였다.

윤 교수는 “미국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북핵문제는 동결과 해제가 반복돼 왔다”면서 “북한의 이번 조치는 동결을 해제해 재처리하겠다는 사전포석”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재처리시설을 복구하면 6자회담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특히, 미국 부시 행정부가 낮은 단계의 검증체계라는 북한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미국 차기 행정부의 진용이 갖춰질 때가지 북한은 기본적으로 이런 프르그램(핵시설 원상복구)을 추진할 것”이라고 예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