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간부부터 농촌으로”…농촌인력 부족 왜?

북한 당국이 지난 2월부터 도시주민들을 농촌으로 이주시키기 위한 주민교양 사업을 강화하는 한편 당기관 및 인민보안서 간부들의 농촌진출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NK지식인연대는 최근 북한 내부소식통을 인용,  “지난 2월 23일 조선노동당에서 내려 보낸 간부학습요강 ‘농촌진지를 강화할 데 대하여’에 관한 당, 근로단체 조직별 강연회가 진행됐다”고 전했다. 


이 강연회에서는 농업생산을 늘리기 위해서는 부족한 농촌인력을 보충해야 하며, 이를 위해 간부들이 앞장서서 농촌으로 진출할 것을 호소했다.


이 단체는 “각급 당 근로단체에서는 농장에 자원 진출하는 세대는 현금 1만원과 식량 120Kg을 지급한다”는 북한 당국의 방침도 소개했다.
 
북한 당국이 도시주민의 농촌진출을 종용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북한은 1962년 12월 황해남도 벽성군 서화리를 찾은 김일성의 교시에 따라 1998년 3천여명의 제대군인들을 대홍단 감자농장에 집단 배치했으며, 1999년 6월에는 200여명 당원 제대군인들을 황해남도 미루벌 지역에 집단 배치한 바 있다.


2000년대 이후에도 해마다 2~3월이 되면 도시 주민들의 농촌진출을 독려하는 선전 교양이 지속돼 왔다.


▲열악한 근로환경, 농민들의 농촌 탈출


그러나 북한 당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북한 농촌에서 인력부족 문제는 지금까지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북한은 1956년부터 ‘농업협동화’ 방침에 따라 도-농간 차이, 로동자와 농민의 차이를 줄이는 것을 농촌혁명의 1차적 과업으로 내세워 왔다. 하지만, 오늘날 북한의 농촌실태는 말할 수 없이 열악한 상태다.


90년대 ‘대아사’ 시기 농촌의 근로조건은 최악으로 변질됐다. 북한당국의 농촌기계화 방침에 따라 배치됐던 트랙터, 이앙기 등은 연료와 전력 부족으로 아무 쓸모도 없게 되었다. 생산수단이라고 해봐야 ‘소’만 남게됐고, 지금은 소마저 부족해 사람이 땅을 파야 하는 세상이 됐다.


만성적인 빈곤으로 인해 도시로 나가는 사람들도 늘었다. 주민등록은 농촌에 있지만 몸은 도시를 떠돌며 ‘꽃제비’ 신세로 전락한 농장원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이처럼 열악한 농촌의 현 실태는 농민들로 하여금 농촌을 떠나 도시로 발걸음을 재촉하게 만들었으며, 만성적인 인력 부족 현상을 낳게 됐다.


▲도시로 시집가려는 농촌 처녀들


농촌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젊은이들부터 발빠르게 움직였다. 농촌 사람들 중에 도시로 이주하는 것을 꿈꾸는 계층은 바로 미혼 여성들이다. 이들은 기본 출신성분이 농장원인 가정에서 태어난 자녀들로 ‘농촌자녀들은 농촌에 영원히 뿌리내려야 한다’는 노동당의 방침에 따라 미래에 대한 희망도 없이 중학교를 졸업 후 곧바로 농촌에 배치받는다.


평안북도 정주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탈북여성 김모 씨는 “농촌지역 중학교에서는 학생의 70%가 농장원 자녀들인데 이들에게는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다”며 “‘왜 열심히 공부하지 안느냐’고 교원들이 채근하면 ‘어짜피 부모님처럼 농사나 지을 텐데 공부는 해서 뭐하냐’고 따진다”고 말했다.


농촌의 10대 소녀들의 희망은 오직 도시총각이나 군관(장교) 등과 결혼해 농촌을 탈출하는 것이다.


농촌 처녀들은 특히 봄, 가을 농촌지원을 나오는 도시출신 군인들, 노동자, 사무원 등 도시총각들을 대상자로 선택해 도시로 시집가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또 주변에 위치한 군부대 군인들이나 군관들과 결혼을 전제로 교제를 하기도 한다.


원하는 직업을 구할 수도 없고 마땅한 배우자도 없는 총각들 역시 농촌을 벗어날 궁리에 바쁘다.


총각들이 농촌을 탈출하는 주요한 기회는 바로 ‘군입대’다. 군복무기간 상관의 신임을 얻어 군관학교 입학에 추천되던가, 곧바로 군관으로라도 뽑히게 되면 부모들처럼 대를 이어가며 농촌에 살아야할 운명을 피할 수 있다. 일부 총각들은 초기복무(운수 및 기술업에 종사)에 지원하거나, 제대 후 농촌 거주를 피하기 위해 탄광, 광산, 수산부문의 집단진출에 합류하기도 한다.


제대할 때 대학추천을 받는 방법도 있다. 농촌출신 제대군인들은 주로 농업대학이나 축산대학 등 농촌과 관련한 대학들에 추천되지만, 부대 정치부 간부들에게 뇌물을 바치고 사범대학이나 교원대학에 추천받아 농장원 신세를 면하기도 한다.


▲농장원들도 이제는 시장으로 몰린다


어쨌거나 농촌에 남는다 하더라도 이들의 생산성은 그리 높지 못하다. 열심히 일한 사람이나 대충 일한 사람이나 ‘현물 분배’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충대충’ 일하는 것이 버릇이 됐기 때문이다. 


2009년 12월 입국한 탈북자 강모(45, 남) 씨는 “농장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가을에 차려지는 것은 현금 몇푼과 반년도 넘기기 어려운 식량 뿐”이라면서 “당장 끓여먹을것이 없다거나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장사를 하려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협동농장 농사가 잘 될 리 없다”고 말했다.


상당수의 농장원들은 협동농장 간부들이 시키는 일 보다 시장에 나가 돈을 버는 일에 관심을 더 갖는다는 말이다.


또한 협동농장 농사에 대한 애정도 별로 없다. 농장원들은 협동농장 토지에 ‘100’ 만큼 노력을 쏟을 경우, 자신의 개인 소토지에는 ‘500’ ‘1000’ 만큼의 열성을 쏟아 붓는다.


북한의 농촌에는 ‘자원 부족’ 현상만 있는 것이 아니다. 비료나 농약보다 더 중요한 것이 양질의 생산력을 담보할 노동력이다. 농촌 노동력이 도시로 유출되고 생산성도 떨어지기 때문에 도시 주민들에게 ‘농촌지원’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계획경제가 빚어내고 있는 웃지 못할 ‘희극’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