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韓中 끌어들여 美 무력화 노리나?

북한의 이번 핵발언이 어떤 상황 판단하에 무엇을 얻고자 이루어진 것인지를 놓고 해석이 분분하다. 우선 한국정부는 북한의 발언이 이른바 ‘협상용’이라고 결론을 내린 것 같다. 즉 적당한 유인책을 주면 북한은 6자회담에 복귀할 것이라고 해석하는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르면 북한은 미국이 무언가 양보를 할 것으로 기대하고 떼를 쓰고 있다는 것인데 바로 이대목이 석연치 않다.

최근 미 고위당국자는 북한의 이번 행동에 대해 어떠한 추가적 양보도 없다는 점을 명확히 하였는데, 미국의 이러한 태도는 누구나 쉽게 예측 가능한 내용이었다. 그런데 북한만 이를 예상하지 못하고, 엉뚱한 짓을 했다고 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만약 북한이 이런 오판을 했다면 북한정권의 판단능력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고 진단할 수 있는데, 아무래도 그 가능성은 극히 낮아 보인다.

한국정부가 잘못된 해석을 내리고 있는 것은 거의 틀림없지만, 이 해석을 가정하고 좀더 논의를 해보자. 이 해석대로 라면 북한의 오판을 유도한 잘못된 정보는 무엇일까? 미국은 직접 추가 양보의 가능성을 시사한 적이 없기 때문에 일단 배제된다. 중국 또한 그동안 말을 아껴왔기 때문에 북한에게 오판의 재료를 제공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결국 남는 것은 한국정부다. 노대통령은 ‘LA 발언’을 통해 북한이 자위수단으로 핵보유를 추구하는데 타당성이 있다고 말했고, 정동영 통일장관은 다보스 포럼에서 미국이 추가 양보를 해야 한다는 식의 발언을 했다.

한국정부의 해석대로라면 자신들이 제공한 잘못된 정보에 의해 북한이 오판을 했다는 참으로 웃지 못 할 결론이 내려진다. 한국정부가 북한이 ‘협상용’ 발언을 했다고 자기만의 해석을 고집하면 할수록 북한은 바보가 되고 한국은 협상을 교란시킨 방해꾼이 되어버리는 맥락을 과연 알고나 있는지 무척 궁금하다. 결국 북한이 오판을 해서 이른바 일종의 bluffing(허세를 부려 이득을 얻는)을 했다면, 미국의 양보를 끌어낼 수 있는 것처럼 허세를 부린 한국이나, 이를 믿은 북한 모두 이상한 존재가 되어버린다.

북한이 미국의 추가적 양보(그동안 북한의 제안을 토대로 보면 동결만으로 보상을 해주고 핵폐기는 차후 과제로 넘기는 제네바 합의의 반복을 의미한다)를 끌어내기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 하에 이런 행동을 취했다고 볼 때, 과연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것일까? 물론 북한의 판단과 상관없이 지금이라도 미국이 북한이 원하는 바를 들어주면 6자회담에 복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가능성이 없는 만큼 가정 자체가 무의미하다.

韓, 中 끌어들여 미국 무력화 노림수

다양한 경우를 검토해보기 위해 북한은 중국과 한국으로부터 어떤 대가를 받고 6자회담에 복귀하려는 의도가 있는지 알아보자. 그동안 중국은 북한을 6자회담에 끌어내는 역할을 직접 수행하였고, 이를 위해 경제지원 등 선물을 주어온 것으로 알려진다. 이번에도 북한이 실제로는 미국이 아닌 중국과 한국에게 대가를 받으려는 속셈으로 떼를 쓰는 건 아닐까 생각해 볼 수 있다. 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지난해 6월 이후 미국의 대통령선거 결과와 2기 부시행정부의 인선과 정책방향까지 지켜본 후에 북한이 내린 결론인 만큼 한-중으로부터 좀더 얻어먹자는 단기적인 술수로 해석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북한이 원하는 바를 따져보기 위해 미국이 어떤 대응수단이 있을지 알아보자. 우선 북한이 테러집단에 핵물질을 수출해서 미국이 어떤 피해를 입는 극단적 상황이 오지 않는 한 군사적 제재는 어렵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이 대목을 북한도 정확히 알고 있으며, 일종의 최후의 안전판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미국은 일정기간 북한의 6자회담 참가를 종용하다가 어느 시점에는 결국 UN안보리로 가져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핵의 존재에 대해 과민한 반응을 하게 되면 미국내의 여론이 빠른 해결을 촉구하는 압력으로 되어 운신의 폭이 좁아지기 때문에 의도적으로 평가절하 하는 태도를 견지할 것이다. 여하튼 UN안보리로 가는 과정에서 관건은 중국이다. 중국의 동의가 없으면 경고성명에서 경제제재까지 이어지는 채찍이 중국의 거부권 행사로 동원될 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이 원하는 바는 바로 중국과 한국이 북한을 보호해주어 결국 미국이 동원할 수단이 제한되거나 무력화되는 그런 상황이라고 보여 진다. 이렇게 시간을 끌다보면 북한이 보유를 선언한 핵무기는 자연스럽게 용인되어 버리는 사태가 올 수도 있다. 이런 계산 때문에 북한은 단순히 6자회담 불참뿐만 아니라 핵보유와 증산까지 패키지로 끼워 넣은 것으로 분석된다. 기왕에 모험을 하는 김에 크게 먹자고 하는 것이다.

한편 북한의 이번 행동은 항상 그랬듯이 내치의 수단으로도 고려된 다목적 카드일 것이다. 이른바 對美항전의 긴장을 불러일으켜 이완되고 있는 체제를 다 잡겠다는 계산일 것이다. 덤으로 한국에서도 反戰反美운동이 활성화되기를 절실히 바랄 것이다.

결국 관건은 6자회담 관련국들의 대북 공조체제가 구축될 것인지, 아니면 북한이 원하는대로 균열이 발생할 것인지에 달려있다. 흥미로운 것은 북한이 이번 성명에서 미국뿐 아니라 일본까지 걸고 넘어진 사실이다. 미국과 일본을 역포위하는 연대전선을 꿈꾸는 의도일지도 모른다.

中, 본격 딜레마에 빠져

언뜻 보면 북한 의도대로 상황이 전개될 가능성도 있어 보인다. 그러나 북한이 크게 간과하고 있는 대목이 중국은 미국 못지않게 북한의 핵을 허용할 수 없는 본질적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이 점에서 북한이 핵보유를 선언한 것은 중국의 심기를 건드리는 큰 실수이자 욕심으로 보인다. 여하튼 중국은 본격적인 딜레마에 빠지게 되었는데, 궁극적으로는 자기의 이익에 맞는 어떤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국정부는 북한핵 해결에 있어 주도적 역할이라는 레토릭을 사용했지만 실은 중재자를 자임하려고 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협상의 교란자만 된 것 같다. 북한이 이번 선택을 하는데 있어서 그 정도는 알 수 없지만, 비록 미미하더라도 한국정부의 태도를 고려했을 가능성이 높다. 한-미간에 균열이 발생할 여지에 대한 기대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정부는 북한을 대변하고 달래면 한국을 믿고 6자회담에 나올 것이라고 계산한 것이 틀림없다. 북한의 이번 발언 직전까지도 정동영 통일부장관 등은 북한의 6자회담을 공공연하게 낙관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정부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북한은 강경정책에 유리한 재료로 한국정부의 유화적 태도를 역이용하였다.

어떤 선의만으로 복잡한 문제에 접근하는 것은 전형적인 아마추어리즘이다. 한국정부는 자꾸 기존의 자기 논리의 합리화의 연장에서 상황을 재단하지 말고 사태를 차분하게 분석하여 접근하길 바란다. 무엇보다도 일방적이고 주관적인 희망을 정책선택의 근거로 삼지 말고 제발 말을 아끼기를 바란다.

홍진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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