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북한이 일본인 납치피해자에 대한 재조사를 올 가을까지 완료하기로 합의함에 따라 향후 일-북 관계 진전에 어떤 파장을 미칠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핵 6자회담 국교정상화 실무회의 일본측 대표인 사이키 아키다카(齊木昭隆)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과 송일호 북일 국교정상화 교섭대사는 11~12일 이틀간 중국 선양(瀋陽)에서 열린 국교정상화 실무회의를 통해 이 같은 합의를 이뤘다고 13일 발표했다.
양국간의 합의에 따르면 북한은 납치문제 재조사를 위한 권위를 지닌 위원회를 설치하고, 재조사의 진전상황을 정기적으로 일본 측에 브리핑하는 한편, 일본 정부 관리들이 방북 해 납치 피해자 관련 당사자들을 인터뷰 할 수 있다.
일본은 이에 대한 상응조치로 북한이 재조사에 착수하면 2006년 이후 북한을 상대로 부과했던 제재의 일부를 해제하기로 합의했다. 여기에는 북한 정부 관리들의 일본 방문 및 북한 발 전세기 취항 허용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번 실무회의에서는 일본 항공기 요도호 납치범의 신병 인도와 북한 만경봉호의 일본 항구 입항 허용 문제에 대한 논의는 제외됐다. 다만 일본의 과거 한반도 식민지 지배에 대한 사과 등 ‘과거 청산’ 문제는 거론됐던 것으로 전해졌다.
◆ ‘납치문제 재조사’ 합의 배경=양국은 지난 6월 베이징에서 가진 제3차 일북 관계정상화 실무회의에서 일본인 납치문제 재조사에 대한 큰 틀에 합의한 뒤 2개월 만에 구체적인 추진 방향에 합의했다.
‘납치 문제는 모두 해결됐다’는 입장을 고수했던 북한이 일본의 재조사 요구를 점차 수용하기까지는 미북관계 개선이라는 변수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양국간 실무회의가 시작된 11일은 미국에 의한 대북 테러지원국 해제가 발효되는 시점이기도 했다는 점에서도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을 얻고 있다.
조양현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13일 ‘데일리에케이’와의 통화에서 “북한이 미국의 테러지원국 해제 발효 개시일인 11일에 맞춰 회의 날짜를 제안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이번 합의는) 북한으로서는 아마도 테러지원국 해제를 의식한 대응이었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조 교수는 또한 “북한은 미국 대선 이후 북미관계가 불투명해질 것에 대비해 일본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미국의 대북정책을 견제하고자 한다”며 “만성적인 경제난과 식량난 해소를 위해 납치문제의 일정 양보를 통해 일본의 식량·경제지원을 얻고자 하는 목적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의 입장에서도 6자회담 과정에서 납치문제를 제기함으로써, 북핵 협상 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압박이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화를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을 일차적 과제로 삼고 있는 최대 우방국 미국의 압력도 적지 않게 작용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미북관계 개선으로 인한 자국의 대북협상력 약화 또한 무시할 수 없는 부담으로 작용했다.
조 교수는 그러나 “이번 회의를 통해 구체적인 재조사 일정과 방법, 또한 대상에 대한 일정한 합의가 도출되었고, 일본 역시 거기에 상응한 대북제재 해제 조치를 취하겠다고 한 만큼 북일 관계의 작은 진전이라고 볼 수 있다”고 강조했다.
◆ ‘납치문제 재조사’ 합의 파장=북한이 납치문제 재조사 실시 합의에도 불구하고 그동안의 일북간 납치문제 협상 과정을 볼 때 북한의 성의있는 조치는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는 일본 내의 부정적인 여론도 높다.
납치피해자가족회는 “재조사가 구두 약속으로 끝나는 것이 아닐지 의심스럽다”며 “아직까지 대북제재 해제는 시기상조”라는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그러나 고무라 마사히코 외무상은 13일 “합의하지 않는 것보다는 합의하는 쪽이 낫다”며 “우리쪽의 입장도 있지만 북한 쪽의 입장도 있는 것이다. 아직 ‘행동 대 행동’이 취해지고 있진 않지만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 섞인 평가를 내렸다.
이 외에도 일본 측에서는 재조사위원회 구성에 있어 북한 핵심층과 직접 연관이 있는 ‘권한이 부여된 조사위원회’를 요구하고 있지만, 실제로 북한 측이 어떤 인사를 기용할 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다. 재조사 진전에 따른 대북제재 해제도 구체적 진전 내용이 적시되지 않아 양측의 책임공방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높다.
한편, 일본이 6자회담 합의에 따른 대북 경제·에너지 지원에 동참할지 여부도 주목되고 있다. 일본은 납치문제 재조사 결과를 지켜본 뒤 대북지원 동참 여부를 결정한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납치문제 재조사가 대북 경제·에너지 지원 완료시한인 10월 말까지 마무리되기는 어렵기 때문에 일본의 지원 참여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현재 일본을 제외한 나머지 5개국은 북한의 북핵 불능화와 신고에 따른 상응조치로 오는 10월 말까지 중유 및 대북 에너지 지원을 마치기로 했다.
조 교수는 “일북 국교정상화 교섭 자체는 북미 사이의 관계 개선, 핵문제 해결, 6자회담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향후 비핵화 프로세스가 어떻게 진전되는지에 따라 국교교섭 절차도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