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美여기자 12년형 선고…美 대응주목

북한이 억류중인 미국 여기자들에 대해 불법입국과 적대행위 혐의로 ‘12년 노동교화형’을 선고해 추후 미·북간 정치적 해법을 둘러싼 치열한 신경전이 예상된다.

북한의 조선중앙통신은 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앙재판소는 미국 기자 로라 링과 리승은(유나 리)에 대한 재판을 4일부터 8일까지 사이에 진행하였다”며 “재판에서는 이미 기소된 조선민족적대죄, 비법국경출입죄에 대한 유죄를 확정하고 로라 링과 리승은에게 각각 12년의 로동교화형을 언도하였다”고 보도했다.

북한의 중앙재판소가 1심을 선고하면 단심으로 확정되기 때문에 일단 미국 여기자들에 대한 사법절차는 마무리된 것으로 보인다. 클린턴 힐러리 국무장관이 앞서 서신까지 보내 조기석방을 촉구했지만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결국 추후 ‘형량’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조기석방을 촉구하는 미국과 핵실험 등에 따른 국제적 고립 탈피를 위한 북한의 치열한 공방은 불가피해 보인다.

두 여기자에 대한 12년형은 ‘정상이 무거운 경우’의 조선민족적대죄를 적용해 10년 이상의 노동교화형을 정한 뒤 여기에 비법국경출입죄에 해당하는 형량(2~3년 이하)을 합산해 선고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형법은 특히 한 사람이 여러 죄를 저지른 ‘병합범(남한의 경합범)’의 처벌에 대해 “매 범죄별로 형벌을 양정한 다음 제일 높이 행정한 조항의 형벌에 나머지 조항의 형벌을 절반정도 합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다만 북한은 사법당국의 독립성이 보장돼있지 않기 때문에 판결은 전적으로 북한 당국의 판단에 따라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12년 노동교화형’ 선고도 형법에 적시된 내용을 이용해 법규정의 부당함에 대한 지적을 사전차단하고, ‘중범죄’ 임을 미국에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선고할 수 있는 최대 형량이라는 분석이다.

이번에 북한이 재판날짜가 4~8일이었다고 설명한 것도 비공개에 따른 재판의 불공정성 시비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앞서 북한은 4일 오후 3시 재판시작을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재판과정에서 참관인 등을 불허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형사소송법 301조에 따른 재판절차는 재판심리시작→사실심리→논고와 변론→피소자의 마지막말→판결위 선고 등의 절차로 정해져 있다. 1심 재판은 사건기록이 접수된 날로부터 25일안에 재판을 종료할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287조)

때문에 북한이 두 여기자들에 대한 중앙재판소 기소를 확정한 지난달 14일로부터 정확히 25일만인 이달 7일께 선고, 재판을 종료한 것으로 관측된다. 법을 최대한 준수했다는 의미다.

앞서 북한이 3월17일 억류된 것으로 알려진 여기자들에 대한 사건 경과 및 재판회부 과정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공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통신은 지난 3월21일, 미 여기자 억류·조사 중→3월31일, ‘불법입국’과 ‘적대행위’ 혐의 확정·재판기소 준비 중→4월24일, 재판회부 결정→5월14일, 중앙재판소 기소·6월4일 재판회부 결정→6월4일 3시 재판시작을 대외에 알렸다.

◆美·北 ‘정치 협상’ 시작…北노림수 현실화될까?=여기자들에 대한 형이 확정됨에 따라 미북간 본격적인 협상이 시작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은 외교적 해법을 총동원해 조기 석방을 요구할 것으로 보이고, 북한은 핵문제 등으로 인한 극단적인 고립을 해소하기 위한 ‘정치적 카드’로 활용하려고 시도할 것으로 예상된다.

북한은 이미 재판과정은 법에 충실했기 때문에 전혀 문제될 것이 없다는 인식 아래 미국의 대북정책을 들여다보면서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시기를 선택해 석방 시기를 조종할 것이란 분석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이들의 석방 문제를 미북 양자회담 성사 및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카드로 사용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이러한 노림수가 현실화 될지는 미지수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북한이 자국법을 적용해 형을 확정했지만 비교적 형량은 과하다”면서 “결국은 미국을 압박하는 조치로 해석돼 정치적 해결단계로 접어들게 됐다”고 말했다.

미국은 이들의 석방 문제와 북핵 문제를 분리해 대응한다는 방침을 몇 차례 강조했다. 클린턴 국무장관도 7일(현지시간) ABC방송 대담프로그램 ‘디스 위크’에 출연, “우리는 이 문제가 미국이 북한과 갖고 있는 정치적 이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표출된 우려들과 섞이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때문에 미국 주도 하에 유엔 대북제재가 이뤄지고 있는 이상 여기자 석방 문제와 북한의 핵개발 문제를 동시에 협상장 위에 올릴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단, 미국이 여기자 문제를 계기로 보다 적극적으로 대화를 시작하고 석방 대가로 이면 지원이 이뤄질 가능성은 있다. 특히 미국 내에서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론이 제기될 경우 미국 정부의 행보는 더 빨라질 수 있다.

미국 정부도 북한의 형확정 발표 직후 이언 켈리 국무부 대변인 성명을 통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며 “여기자들의 석방을 위해 모든 가능한 채널을 가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북 전문가들은 미국의 대응행보에 대해 일단 ‘불법입국죄’에 대해서는 사과를 하면서 조기 석방을 요구할 것으로 내다봤다. 클린턴 장관도 북한에 보낸 서한을 통해 여기자들이 국경을 넘어 북한에 들어간 것을 사과하면서 석방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유 교수는 “미국 정부가 핵문제 등과의 분리대응을 밝힌 상황이기 때문에 기자들이 소속된 언론사와 의회 중심으로 형량의 부당함을 알리면서 조기석방 분위기를 조성할 것”이라며 “미국 정부도 ‘불법입국’에 대해선 유감을 표명하면서 형량의 부당함을 지적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