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美에 ‘동시행동원칙’ 제기 전망

북한이 지난달 말 베이징 회동에서 미국이 제안한 초기이행조치에 대해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은채 오는 16일 6자회담을 재개하자고 제의한 것으로 알려져 향후 행보가 주목된다.

미국은 지난달 말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와 김계관 외무성 부상 간 회동에서 ▲영변의 흑연감속로 가동 중단 ▲함경북도 풍계리 핵실험장 폐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 수용 ▲현재의 모든 핵프로그램과 핵시설의 신고 등 초기이행조치를 북한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신 미국은 그동안 무조건적인 선핵포기 요구에서 한발짝 물러서기는 했지만 초기이행조치가 이뤄진다면 정전체제의 완료 및 평화체제 논의, 에너지 등 대북지원, 북미관계 정상화 등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들 조치가 북한이 도저히 무시하기 힘든 파격 제안임에 틀림 없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덥석 수용할 수 있는 제안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사실 미국의 제안을 살펴보면 초기이행조치가 이뤄질 경우 미국이 해주겠다는 것은 북미관계 정상화와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 등의 ‘논의’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제안 내용은 그렇듯해 보이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먼저 실행을 하고난 뒤에야 사실상 미국이 행동에 들어간다는 것이라는 점에서 동시행동원칙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대미관계에서 북한이 얻은 교훈은 먼저 핵을 포기해서는 안되며 반드시 핵포기에 대한 상응한 대가를 동시행동원칙으로 받아내야 한다는 것이다.

더욱이 갈등과 대립으로 이어져온 북미관계와 미국이 항상 북한의 체제붕괴를 노리고 있다고 보는 북한의 인식 속에서 미국의 말만 믿고 먼저 행동에 나설 수 없다는 것이 북한의 확고부동한 입장이다.

북한 내각 기관지 민주조선도 지난 6일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은 미국의 고질적인 악습이다. 미국은 여전히 언행 불일치의 악습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며 미국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드러냈다.

클린턴 행정부 시절 채택된 제네바 기본합의문만 해도 핵동결에 대한 상응한 조치가 경수로 건설이었으나 제 기한내에 완공되기는 고사하고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마저도 완전히 중단되고 말았다는 것이 북한의 시각이다.

조선중앙통신은 작년 12월 ‘상보’를 통해 “우리는 미국의 일방적인 조미기본합의문파기와 경수로건설의 완전중단결정을 놓고 미국의 선 핵포기 주장이 얼마나 강도적인 요구인가에 대해 더욱더 각성하게 된다”고 지적한바 있다.

북한은 9.19공동성명에 대해서도 북한의 선핵포기를 전제로 한 것이 아니라 ‘행동 대 행동’의 동시행동원칙 합의로 규정하면서 먼저 경수로를 제공해야 핵을 폐기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도 지난달 평양발 기사에서 “미국이 핵보유국에 대한 무력행사를 피하려 한다면 두 나라 사이의 총포성 없는 전쟁은 필연적으로 동시행동원칙에 기초한 군축과정으로 이행하게 된다”고 주장, 동시행동원칙이 북한의 변함없는 입장임을 밝혔다.

이같은 입장 때문에 북한은 이번 회담에서 판을 깨지 않으면서도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의 동시행동원칙에 따라 미국의 초기이행조치를 이행할 수 있는 변형된 제안을 내놓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가령 북한은 핵문제와 관련해 동결과 폐기를 구분하고 흑연감속로 가동중단, 사찰관 수용 등 동결에 해당하는 조치에 대해 미국의 에너지 지원 등 상응조치를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문제는 북.미 간 ‘초기 이행조치’에 대한 인식이 다르다는 것”이라며 “북한은 행동 대 행동, 동시 이행조치라고 보고 미국은 선행 조치라고 보기 때문에 북한은 이 문제를 동시 행동조치에 포함시켜서 논의할 수 있고 먼저 이행하기 힘들다는 입장일 것”이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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