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美日과 통하고 ‘南 왕따전술’ 구사”

북한이 요도호 납치 사건과 일본인 피랍자 문제 해결에 협조하는 대가로 일본정부는 대북제재조치 중 일부를 해제키로 결정함으로써 향후 북일관계 개선과 북핵문제 진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일본 관방장관은 13일 “북한이 ‘요도호’ 납치범을 일본에 인도하는 것에 협력하고, 일본인 납치자 문제 해결을 위한 조사를 약속했기 때문에 대북제재 조치 중 일부를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고무라 마사히코(高村正彦) 외상도 기자들과 만나 대북제제 해제 사항은 ▲인도적 물자 수송에 한해 북한 선박의 일본 입항 허용 ▲양국간 인적 왕래 재개 ▲전세기 취항 ▲북한 국적자 입국 허가 등이라고 밝혔다.

다만 일본은 북한이 핵프로그램 신고 대가로 요구하고 있는 중유 제공 사업에는 응하지 않을 입장이다.

北, 일본의 일부 제재 해재로 대외협상에 탄력 받을 듯

그동안 북한과 일본이 ‘납치자 문제’로 한치의 진전 없이 교착상태를 유지하다 이번 실무협의를 통해 ‘납치문제 재조사’에 합의하게 된 것은 북핵 6자회담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북한으로서는 미국에 의한 테러지원국 해제에 최대 걸림돌인 일본의 강력한 견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이를 위해서는 일본이 최우선 과제로 요구하고 있는 ‘일본인 납치자 문제’를 어떤 식으로든 정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한 심각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경제∙에너지 지원 등 실리를 취하기 위해서라도 일본의 참여가 절실하다. 특히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남북관계의 경색에 따른 대북지원이 중단됨으로써 미국에 이어 일본의 지원이 절실하게 된 것이다.

윤덕민 외교안보연구원 교수는 ‘데일리엔케이’와의 통화에서 “한국과 중국의 경제적 지원에 의존했던 북한이 ‘남한 길들이기’에 따른 남한의 대북지원 감소와 ‘대중국 의존성 탈피’를 위해 일본을 선택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일본도 경제제재의 ‘일부해제’라는 카드를 통해 납치문제에 대한 해결의 길을 찾을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이번 협상결과를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게 됐다. 또 6자회담에서도 일본의 발언권을 확대할 수 있는 배경을 얻게 됐다.

하지만 이번 회담에서 일․북측이 납치문제나 경제제재 해제 등에 대한 기본적인 원칙에만 합의한 만큼 추가 협상 과정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북한이 납치문제에 대해 재조사 방침을 밝혔지만 구체적인 조사 방법이나 대상까지 거론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납치 피해자의 현황에 대해 일본과 북한이 각기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어, 구체적인 협상 진전을 이루기까지는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유호열 고려대 교수는 “일본은 6자회담 틀 내에서 북핵문제 해결이라는 흐름에 방해나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바라지 않은 것이고, 후쿠다 내각도 정치적으로 편안한 입장이 아니기 때문에 북일관계 개선에 나선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 교수는 “테러지원국 해제를 바라는 북한도 일본이 요구하는 ‘납치자 문제’에 대해 어느 정도 수용하는 모양새를 갖춰야 북핵 2단계가 진전될 수 있음을 고려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교수는 “가장 걸림돌이 됐던 납치자 문제에 북한과 일본이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테러지원국 해제 문제가 가시권에 들어왔다고 볼 수 있다”며 “앞으로 납치자 문제에 대한 북일간 협의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北, 봉남(封南)정책 계속 이어갈 듯

한편 북한은 이번 회담을 통해 일본과의 대화채널을 구축함으로써 남한을 제외한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6자회담 참가국 모두와 양자 대화채널을 갖추게 됐다.

북한 입장을 대변하는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는 북일 관계정상화 실무그룹회의 결과가 발표된 13일 “교착타개의 실마리를 찾은 쌍방이 추진하게 될 작업은 ‘지속적인 대화의 추진’으로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후쿠다 총리도 14일 이번 일∙북회담의 결과에 대해 “지금까지는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이제 교섭과정의 입구에 들어섰다”고 말해 북한과의 대화가 지속될 것임을 내비쳤다.

북한은 북핵 문제를 기회로 이미 미국과의 수시 대화채널을 구축했고, 오랜 우방인 중국과 러시아는 기존의 대화채널이 공고히 마련돼 있다는 점에서 상호간 의사소통에 전혀 문제가 없는 것으로 전망된다.

이처럼 북한의 대미, 대중, 대러 대화 채널은 갈수록 돈독해지고 일북간 대화채널 마저 복원된 반면 남북간의 대화채널은 지난 3월 이후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통일부, 남북대화 재개에 조바심 내지말아야

현재 이명박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채널 복구에 안감힘을 쏟고 있다.

김하중 통일부 장관은 12일 6∙15 8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해 “현재와 같이 남북대화가 단절돼 있다면 계속 오해만 생길 뿐”이라며 북한에 남북대화의 조속한 재개를 촉구했다.

하지만 북측이 이 같은 요구에 응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북측은 여전히 6∙15, 10∙4선언 이행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입장 선회가 대화 재개의 매개임을 강변하고 있다.

유 교수는 “정부가 대화창구 마련에 조바심을 낼 필요는 없다”면서 “오리려 북한에 양보하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인내심을 갖고 미국과 일본 등과 외교관계를 더욱 더 긴밀하게 가져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윤 교수는 “이명박 정부는 ‘남한 길들이기’에 나서고 있는 북한이 원하는 대로 해서는 안된다”며 “북한과 일종의 ‘기싸움’을 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일희일비 하지 말고 의연하게 대북정책을 현실화하는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