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日 무시전략 구사 전망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를 비롯해 일본 고위관료들이 최근 북한과 국교정상화 방침에 변함이 없다는 입장을 잇따라 밝히고 있지만 북한은 당분간 일본 무시전략으로 맞설 것으로 보인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정동영 통일부 장관과 6.17면담에서 북.일 관계 정상화에 대한 일본측 메시지를 전달받았지만 “정확이 잘 들었다”는 말을 했을 뿐 그 외의 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은 데서 이를 엿볼 수 있다.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0일 6자회담 복귀 결정 배경을 설명하면서도 “일본만은 6자회담 재개에 기여한 것이 없다”고 지적했다.

또 북한 언론은 최근들어 그 어느 때보다 대일 비난 수위를 높이고 있다.

북한이 4차 6자회담 복귀 발표를 전후로 현재까지 대미 비난을 자제하고 있는 것과 지난해 2차 북.일정상회담 후 가짜 유골사건이 불거지기 전까지 대일 비난을 자제했던 것과 비교된다.

북한은 이미 북.미관계가 개선되지 않는 한 북.일문제도 해결되지 않는다는 교훈을 여러차례 경험했다.

북한은 1990년 자민당의 가네마루 신(金丸 信) 전 부총재 등의 방북을 계기로 수교회담 등 국교정상화에 총력을 기울였지만 1992년 일본이 수교 본회담에서 미국이 제기한 북한의 핵개발 의혹과 KAL기 폭파범 김현희의 일본어 교사 이은혜 문제를 거론하면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북한은 당시 일본이 강대국을 자처하면서도 자주성이 없이 미국의 핵개발 의혹주장에 편승하고 있다고 강하게 반발했다.

외교관 출신의 탈북자들에 따르면 김정일 위원장은 당시 외무성 관계자들에게 일본은 미국의 ’꼭두각시’에 불과하므로 미국과 관계가 해결되지 않는 한 일본문제는 아무리 노력해도 안된다면서 북.미관계 개선에 주력할 것을 지시했다.

이후 북한은 두 차례 북.일 정상회담을 통해 다시 한번 대일관계개선에 나섰다.

김 위원장은 2002년 8월 첫 정상회담에서 일본인 납치문제를 전격적으로 인정, 북.일 국교정상화를 위한 기틀을 마련했지만 같은해 10월 미국이 북한의 농축우라늄 핵개발을 제기하면서 양국 수교회담은 또다시 중단됐다.

이어 2004년 5월 2차 정상회담을 통해 또한번 일본과 관계개선 의지를 피력했지만 역시 북핵문제와 가짜 유골사건, 납치문제 등으로 좌절됐다.

이같은 경험을 통해 북한은 북.미관계가 해결되면 굳이 북한이 먼저 손을 내밀지 않아도 “일본은 미국을 따라오게 돼 있다”는 입장을 굳히고 일본에 대한 미련을 접었을 것으로 보인다.

4차 6자회담 합의 이후 일본에서 뒤늦게 국교정상화 발언 등이 나오고 있지만 이미 쓴 맛을 본 북한 입장에서는 더이상 일본의 그같은 입장 표명에 주목하지는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즉 대일수교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은 역시 미국과 관계개선에 있다는 점을 깨달은 만큼 향후 일본을 외면하는 전략으로 나갈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이를 통해 오히려 일본이 조바심을 갖게 함으로써 6자회담에서 납치문제 등을 거론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방침에 쐐기를 박을 수 있다는 판단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북한은 도쿄를 통해 워싱턴으로 가는 시도를 두어차례 하면서 일본과 관계개선이 대미관계 진전으로 이어질 수 없음을 깨달은 것 같다”며 “앞으로 북한은 워싱턴을 거쳐 도쿄로 가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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