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치밀한 대북정책이 요구되는 가운데, 차기 정부는 정치적 당리당략에 집착하지 말고 북한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이전 정부들이 전 정부와의 차별성에 과도하게 집착, 포퓰리즘적 담론만 제시해왔다는 지적이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6일 통일연구원 개원 26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에 참석, “대북정책 전개과정에서는 시기별 사안에 대해 강온전략을 적절히 구사하는 유연한 대처가 요구됨에도 불구하고, 역대 정부의 이념과 지지기반에 맞춰 예단된 정책이 경직된 방식으로 적용되는 모습이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홍 실장은 “지지 세력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이나 정략적 차원에서 국민 관심을 유도하다 보니 정작 위기가 닥치면 실질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는 무력한 모습만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북한 입장에서도 남한의 통일정책은 국내정치적 명분에 치우친 일회성 제의나 대외 과시용 성격으로 치부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북정책은 정권 교체와 상관없이 원칙적이며 일관된 지속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면서 “그래야 북한에게 여기에 대응하는 자세나 태도의 일관성을 학습시킬 수 있다. 대북정책의 일관성이 담보돼야 (북한 등) 관련 당사자들이 예측 가능한 수준에서 행동을 취하게 되고 정책의 효용성도 점차 증대하는 효과를 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대북정책 수립 과정에 있어 지나친 ‘정경연계’는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비핵화라는 목표를 대북정책 전 분야의 수단이나 문턱으로 삼을 경우, 경제·사회·인권 분야에서도 정책 추진이 막힐 수 있다는 설명이다.
홍 실장은 “북핵문제의 해결 또는 비핵화는 대북정책 또는 안보정책의 목표가 돼야 한다”면서 “(비핵화라는) 목표를 수단이나 문턱으로 삼으면, 모든 사안들을 특정 사안(북핵)의 해결 여부에 의존하게 만들어 그 문제가 풀리지 않을 경우 해결이 안 되는 구조를 야기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남북관계의 특수성 차원, 정상적 관계가 구축되어 있지 않은 국가들 사이에서는 사안별 분리외교가 효용성이 클 수 있다”면서 “군사·안보문제와 경제·사회·인권 문제의 분리전략 또는 병행전략을 구상할 필요가 있다. 이럴 경우 통일정책, 대북정책, 외교정책, 국방정책 등이 서로를 희생시키거나 어느 일방에 의해 좌우되지 않도록 적절한 균형의 유지가 필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북한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맞춤형’ 대북정책을 개발해야 한다는 주문도 제기됐다. 북한 엘리트와 일반 주민, 평양 시민과 지방 주민, 핵심계층·동요계층·적대계층 등 북한 주민의 특성을 감안한 정책 수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규창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장은 “향후 남북한이 주체가 되는 평화통일을 위해서는 제도와 이념 중심의 접근에서 탈피해 북한 주민들이 중심이 되는 통일정책이 추진돼야 한다”면서 “통일은 제도와 이념, 사상이 아닌 사람의 마음을 얻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라고 피력했다.
이 실장은 “헌법 제4조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북한 주민들에게 이식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 주민들 스스로 남한체제의 우월성을 느끼고 받아들이게 하여야 한다”면서 “북한 주민 개개인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닌 존재이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점을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민족자결권이 향후 통일정책에 적극 반영돼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특히 이 실장은 북한 주민들의 자결권 행사와 대남 친화력 유도를 위해 북한에 외부 정보 및 문화 유입을 적극 강화하고, 동시에 인도적 지원과 교류협력으로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얻는 게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북한 주민들 스스로 북한 실상과 남한의 자유민주체제의 우월성을 깨닫게 해야 한다“면서 “이를 통해 통일이 임박한 상황에서 북한 주민들이 남한 체제 편입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래야 국제사회의 개입을 최소화하는 가운데 우리 주도의 통일,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통일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북한 비핵화 및 통일 준비를 위한 외교 전략으로는 미국과 중국 사이 ‘균형 외교’가 절실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신종호 통일연구원 국제전략연구실장은 “미중 전략적 경쟁의 심화는 한반도 통일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으므로 미중 양국의 이해관계를 한반도 문제와 분리할 필요가 있다”면서 “통일한국이 미중의 이익에도 일치한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부각하고, 통일된 한반도가 양국의 전략적 협력에 유용하다는 논리를 개발해 두 강대국을 설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 실장은 특히 “북한 비핵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중국역할론’에 대한 과도한 기대보다는 국제사회의 ‘북핵 공동책임론’에 기반한 ‘한국 방안’을 선제적으로 제시할 필요가 있다”면서 “북핵문제 해결과 관련하여 그동안 자주 제기됐던 ‘북한책임론’ ‘중국역할론’ ‘미국책임론’ 등에서 벗어나 ‘국제사회 공동책임론’을 제기함으로써 국제공조를 강화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그는 이어 “북핵 해법에 대한 ‘한국 방안(Korea Solution)’을 선제적으로 제시함으로써, ‘국제화’ 돼 있는 한반도 문제의 ‘한반도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면서 “이는 곧 북핵문제가 미중 간 동아시아 ‘대리 세력경쟁’의 도구로 이용되어 미중이 한국을 배제(bypassing)한 상태에서 북핵 해법을 마련할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