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北美대화 축 다자틀 활용

북한은 북핵 6자회담이 시작될 때만 해도 미국과 양자 방식을 주장하며 다자방식에 반발했으나 5년이 지나면서 이제는 6자회담을 자신들의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장으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미국이 2003년 초 북미 양자회담에 부정적 입장을 밝히면서 다자회담을 제의하자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을 통해 “자기의 책임을 회피하고 우리에 대한 압박을 국제화하려는 불순한 기도가 깔려있다”고 거부했었다.

그랬던 북한의 외무성 대변인이 2006년 8월엔 “9.19공동성명에서 우리는 핵계획 포기를, 미국은 평화공존을 공약했고 우리는 평등한 원칙에서 합의를 이행하자는 입장”이라며 “이 합의가 이행되면 우리가 얻을 것이 더 많으므로 6자회담을 더 하고 싶다”고 ‘6자회담 이득론’을 펼치기까지 했다.

그러나 북한은 6자회담 틀속에서도 미국과 양자협의를 꾸준히 추진, 특히 2007년 1월 베를린에서 김계관 외무성 부상과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간 북미 양자 접촉을 통해 ‘2.13합의’를 만들어낸 뒤 ‘북미 양자 협의-6자회담 추인’의 구도를 정착시켜 나갔다.

핵문제를 북미 양자간 현안으로 규정하고 북미간 양자협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북한의 입장에서는 이제 이를 가능케 한 6자회담이라는 틀에 긍정적일 수 밖에 없다.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은 “북한은 할 수 없이 6자회담이라는 다자논의 구조를 받아들였지만 미국과 양자회담이 이뤄지는 상황에서 이제는 6자회담이 매력적일 수 밖에 없다”며 “6자회담은 양자회담과 달리 합의 이행에 대한 다자간 구속력을 갖고 있고 이 구속은 미국에도 적용된다는 점에서 미국의 합의 이행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를 북한이 가지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미국의 정권교체 이후 제네바 합의가 깨지는 경험을 한 북한은 다자논의가 합의의 지속성을 보장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할 것”이라고 봤다.

미국의 조지 부시 대통령은 6자회담 시작 전이나 초기, 북한의 북미 양자대화 요구에 응해 핵협상을 빨리 진행하라는 미국내 일부 여론을 거부하고 다자논의 방식을 옹호할 때 다자논의가 ‘북한에 대한 합의 이행의 구속력이 강하다’는 논리를 내세웠었다. 결과적으로 북한도 이 논리를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은 지난 5년간의 6자회담 과정에서 ‘9.19공동성명’으로 한반도 비핵화를 향한 큰 원칙에 합의한 이후에도, ‘2.13합의’와 ‘10.3합의’를 거치면서 ‘행동 대 행동’ 원칙에 기반해 핵신고에 이르기까지 비핵화 조치를 잘게 쪼개가며 각 단계마다 최대치의 보상을 챙기는 ‘살라미 전술’을 일관되게 구사해왔고, 이는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전망이다.

현재 비핵화 과정은 북한의 핵신고에 대한 검증 단계에서 난항하고 있다.

한.미.일은 10.3합의에 따른 완전한 핵신고는 검증을 전제로 하는 것이라며 북한이 조속히 검증체계 수립에 협조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북한은 신고와 검증을 분리해 핵검증 작업은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의 포기’를 검증해가며 그 진도에 맞춰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북한의 이러한 태도는 “미국의 정치적 보상조치(테러지원국 지정 해제)가 발효되지 않았고 ( 6자회담 참여국중 북한을 제외한) 5자의 경제적 보상조치도 완료되지 않고 있는 시점에서 10.3합의에 명시되어 있지도 않은 검증 작업에 솔선 나서야할 까닭이 없다”는 재일본 조선인총연합회 기관지 조선신보의 지난달 주장에 잘 나타나 있다.

북미간 이러한 줄다리기의 중심에 현재 미국의 대북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의 지연이 있다.

이에 따라 북한은 검증 협상 결론을 10월말까지로 예정된 북한 핵시설의 불능화와 5자의 대북 경제.에너지 지원이 마무리되는 시점과 테러지원국 해제 조치 시점에 맞추고 실제 검증 작업은 해제 이후로 미룰 공산이 크다.

이 고비를 넘겨 핵폐기 단계인 비핵화 3단계에 들어서도 북한은 여러 소단계로 나누는 ‘살라미 전술’을 들고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김 숙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은 지난달 한 강연에서 “북한은 3단계 이전에 1∼2개의 단계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이라며 “영변 핵시설의 폐기 조치를 하나의 단계라고 주장하며 이에 대한 (미국 등의) 상응 조치를 원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으로 북한은 크게 ‘핵검증→핵시설 해체→핵물질의 북한외 반출→핵무기 폐기’로 나눌 수 있는 과정에서, 단계별 대가로 경수로 제공이라는 경제적 지원 뿐 아니라 한미 합동 군사연습의 중단과 안전보장 요구 등 정치적 근본 문제도 들고 나올 개연성이 크다.

최근 한 월간지에 실린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의 ‘새로운 전환적 국면을 맞은 조선반도 정세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문건은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대북 에너지 지원 완수와 영변 핵시설 불능화 완료→북핵 신고검증과 핵시설 폐기에 상응한 남한내 핵무기 부재 검증과 대북 경수로 제공→핵무기 문제와 동북아시아 평화안보체제 수립 논의’ 순으로 이어지는 일정을 전망하기도 했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신안보연구실장은 “북미 모두 정치적 부담이 있는 만큼 테러지원국 지정의 해제와 핵시설 불능화, 검증체계 구축 등 10.3합의 이행은 어떻게든 (부시 행정부 임기내) 마무리될 것이나, 3단계 핵폐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조 실장은 “북한은 6자회담의 각급 실무회담을 가동하는 것으로 회담의 모멘텀을 유지해 나가되, 본격적인 3단계 논의에는 11월 대선에서 당선되는 미국의 새 대통령의 정책 재검토가 마무리된 내년 5월 이후에나 나설 것으로 보이며 이는 미국으로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덧붙였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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