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前고위관료가 회고한 분단후 北문단

“홍명희 선생이 인민정부 부총리가 됐던 것은 너무나 선량했기 때문입니다. 항상 노동자ㆍ농민들 사이에서는 재치있는 이야기꾼으로 인기가 높았죠.”

고려인들의 강제이주 70년을 맞아 15일 홍익대에서 열린 ‘고려인 강제이주 70주년 기념학술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찾은 북한 전 문화선전부 제1차관 출신 정상진(89)씨는 남북 분단 직후 문화정책 부문을 총괄했던 ‘임꺽정’의 작가 홍명희씨에 대해 이렇게 회고했다.

정씨는 1957년 고려인들이 강제 이주한 카자흐스탄으로 망명하기까지 20년 가까이 북한에 살며 북한예술총동맹부위원장, 북한문화선전부 제1차관 등을 지낸 인물이다. 당시 홍명희씨는 정씨의 직속상관이기도 했다.

정씨는 “홍 선생은 너무나 깨끗하고 착했던 사람”이라며 “특히 공산주의자가 아닌 홍 선생이 부총리에까지 오른 것은 김순남, 임화 등 많은 남쪽 문인들의 월북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정씨는 “홍 선생은 미완의 작품인 ‘임꺽정’을 완성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며 “평소 ‘내가 아직 조광조의 역사적 활동을 쓰지 못했다’, ‘반드시 조광조가 (조선왕실) 주인이 돼야했다’고 말하곤 했다”고 덧붙였다.

정씨가 기억하는 홍명희씨는 특히 농민과 노동자들로부터 인기가 많았다.

“홍 선생은 항상 농민과 노동자로부터 인기가 많았어요. 한번은 금강산을 함께 여행한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도 재치있는 입담 때문에 많은 농민과 노동자들에 둘러싸였지요.”

정씨는 “당시 인민정부 부총리는 실권이 없는 명예직에 가까워 누구 하나 홍 선생을 찾아 정책을 보고하거나 논의하지 않았다”며 “특히 아쉬운 것은 임꺽정 외에 다른 작품을 쓰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 분단 직후 북한의 문단에 대해서도 정씨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정씨는 “1950년대 후반까지 북한 문단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은 한설야, 이기영, 이태준 등이었다”며 “이런 사람들이 해방 직후 좋은 작품을 많이 써냈다”고 말했다.

정씨에 따르면 당시 월북작가 이기영씨는 북한 정부의 토지개혁법이 나오자 토지개혁을 지지하는 장편소설 ‘땅’을 발표했다.

정씨는 그러나 “‘땅’은 (토지개혁법에 대한 지지라기보다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보고 싶다는 소망을 담은 것”이라며 “지금도 ‘땅’에서 이야기하는 토지개혁법은 북한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월북작가 이태준씨는 문맹퇴치 사업에 힘쓰는 할머니이야기를 그린 ‘호랑할머니’와 인간의 죽음을 다룬 ‘먼지’ 등 아름다운 단편을 발표했다. 그러나 이 작품들은 반동작품으로 취급됐다고 정씨는 회고했다.

최명희씨에 대해서는 “북한 현실 보다는 역사소설을 많이 썼다”며 “가장 평이하게 자기 창작의 길을 걸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지금은 북한 문학작품을 읽어보려고 해도 구할 수가 없다”며 “북한 문학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는 전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씨는 통일 전망에 대해 “두 체제가 걸어온 길이 워낙 다르다 보니 통일이 되기는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며 “평양은 지금 서울에 앉아있으면서도 그리워할 정도로 아름다운 곳으로 죽기 전에 가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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