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핵 6자회담이 18일 개막하는 가운데, 불능화 단계의 세부 내용을 논의할 이번 회담이 북한의 ‘선(先) 핵프로그램 신고-후(後) 불능화’ 주장이 쟁점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회담은 지난 3월22일 제6차 1단계 회의가 끝난 지 약 4개월 만에 베이징(北京) 댜오위타이(釣魚臺)에서 재개됐다. 특히 ‘연내 불능화’를 희망하는 부시 미 행정부로서는 이번 회담 결과에 따라 대략적인 북핵 폐기 시간표를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방코델타아시아(BDA) 문제로 많은 시간을 허비한 미국으로선 6자회담 개막을 하루 앞둔 17일부터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려는 적극적인 행보를 취했다. 미국측 6자 수석대표인 크리스토퍼 힐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와 북한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미국 대사관에서 첫 미팅을 시작으로 곧바로 탐색전에 돌입했다.
힐 차관보와 김 부상은 미 대사관에서 짧은 협의를 마친 후 베이징 시내 음식점에서 식사를 함께했고, 곧바로 북한 대사관으로 자리를 옮겨 2시간 동안 추가 협의를 하는 등 변화된 미북관계를 보여주듯 적극적으로 양자 회동에 임했다.
양자 회동에서 북한은 핵시설 불능화와 핵프로그램의 신고를 어떻게 추진하느냐를 놓고 신경전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영변 핵시설에 한정된 초기단계 조치 이후 모든 핵프로그램을 대상으로 하는 불능화의 경우 그 대상을 분명히 하기 위해선 신고를 먼저 하는 것이 순서상 맞다는 논리를 내세워 ‘先 핵프로그램 신고 後 불능화’ 주장을 강하게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신고와 불능화를 동시에 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6개월 가까이 시간을 허비한 이상 불능화를 늦출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2.13 합의에서는 초기단계 조치 기간에 ‘사용 후 연료봉으로부터 추출된 플루토늄을 포함, 성명에 명기된 모든 핵프로그램의 목록을 여타 참가국들과 협의한다’고 명기돼 있어 6자회담내 비핵화 실무그룹에서 이를 협의했어야 하지만 BDA 문제로 발이 묶여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북한의 이 같은 주장은 2.13 합의를 매 단계별로 잘게 잘라 더 많은 보상조치를 요구하는 것과 함께 미국과 한국 등 6자 관련국들의 바람과는 달리 북핵 폐기 로드맵을 최대한 늦출 수 있다는 계산 하에 일명 ‘살라미 전술’을 구사하려는 의중으로 풀이된다.
많은 전문가들은 2.13 합의 초기조치 단계 이행에 대해서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도 2단계인 불능화 단계는 북한이 성실하게 모든 핵프로그램을 신고할 것인지와 특히 제2차 북핵 위기의 원인이 됐던 고농축우라늄(HEU) 문제, 불능화의 개념 정리 등이 걸림돌이 될 것으로 예상했었다.
하지만 핵심 이슈에 대한 논의에 들어가지도 않은 상황에서 북한이 핵시설 불능화와 핵프로그램의 신고 추진방식 문제를 들고 나온 것.
아울러 김명길 유엔 북한대표부 차석대사는 지난 15일 불능화 단계 이행에 앞서 미국의 적대정책 포기가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해 진의지가 무엇인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미국은 일단 북한측의 의도가 어디에 있는지 파악하는 데 주력하는 눈치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하기 위한 협상용인지 아니면 시간 끌기용인지 진의를 파악하는 게 급선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 힐 차관보는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취하는 수준에 따라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와 대적성국 교역법 적용 해제 등을 적절하게 검토해보겠다는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지난 13일에 북한 인민군 판문점대표부가 미북 군사회담을 제안한 것도 이번 회담과 무관치 않다. 6자회담에 앞서 미국에 군사회담을 제의한 것은 핵무기는 미북 군사회담을 통해 ‘보유국 대 핵 보유국’으로서 ‘핵군축’ 회담을 하겠다는 의미다.
일각에선 북한의 이런 제의에 대해 6자회담을 무용지물로 만들려는 의도가 내포돼 있다고 지적한다. 6자회담의 협상력과 주도권을 잡겠다는 포석이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 연내 불능화를 목표로 하고 있는 우리 정부와 미국이 북한의 협상 전략에 대한 철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