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中상대로 알박기?…”김정일 비석 때문에”

양강도 혜산과 지린성(吉林省) 창바이(長白)를 연결하는 다리(橋) 보강 문제를 두고 북한과 중국 간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어 그 결과가 주목된다.


1일 중국의 한 대북소식통에 따르면 북중 양측은 오래전부터 혜산-창바이를 잇는 현재의 ‘친선다리’로는 갈수록 늘어나는 이 지역의 교역량을 감당할 수 없다는데 문제 인식을 함께 해 왔다고 한다. 특히 중국의 투자로 혜산청년광산의 동광석 생산이 지난 4월부터 크게 증가함에 따라 이 다리를 운행하는 대형 트럭들이 늘어나 노후된 다리의 안전성 문제까지 부각됐다. 









▲혜산 친선다리 확장공사와 관련 북중간 논란이 되고 있는 김씨 일가 우상화 선전물<구글어스>

중국은 일단 ‘확장 보강 공사’ 의견을 북한에 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북한은 반대 입장을 펴며 다른 장소에 새로운 다리를 건설하자고 맞서고 있다.


이 소식통은 “조선(북한)에서는 혜산쪽 다리 바로 옆에 ‘김정일 사적비’가 있다는 이유로 확장공사를 반대하며 새로운 다리를 짓자고 주장한다”면서 “특히 ‘당신(중국)들이 필요해서 다리를 짓는 만큼 다리 건설비용도 모두 당신들이 부담해야 할 것’이라며 생떼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 다리는 현재 편도 1차로뿐이라 양방향 진행이 불가능하다. 1990년 개통된 콘크리트 구조물이라 동광석을 실어 나르는 중국 트럭을 감당할 수 있을지도 걱정거리다.


혜산출신 탈북자들에 따르면 이 다리를 왕복 2차로로 확장하려면 서쪽 방향으로 확장하는 방법 밖에 없다. 혜산세관은 서울의 낙원상가처럼 1층에 해당하는 곳에 다리와 연결된 통로가 있고 2층에 해당하는 곳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따라서 다리를 확장하려면 혜산세관 건물까지 손을 대야 하는데, 동쪽으로는 강물이 급격히 안쪽으로 휘어 들어와 건물을 확장할 공간이 없고 오직 서쪽으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혜산세관 서쪽에는 김정일 사적비, 양강도 김일성 혁명사적관, 김정숙예술극장 등이 순서대로 자리하고 있다.  


문제의 ‘김정일 사적비’는 너비5m, 높이2m 정도의 크기의 화강암 비석으로 1956년 6월 5일 김정일이 평양 제 1중학교 재학시절 동급생들을 이끌고 백두산 행군을 가던 중 이곳에 들려 ‘쾌궁정’을 둘러본 기념으로 제작된 것이다.


쾌궁정은 조선시대 초기 건축된 혜산진성의 남문(南門)을 가리킨다. 김정일이 소년단 시절부터 ‘외세에 맞섰던 민족사’에 큰 관심을 보였으며, 동급생들을 조직해 김일성의 혁명성지를 답사할 정도로 혁명성과 리더십이 뛰어났음을 암시하기 위해 비석을 세운 것이다.


북한에서는 비록 국책 건설사업이라 하더라도 김일성, 김정일 관련 우상화물이 있는 ‘혁명사적지’는 절대로 손대지 않는 것을 불문율로 여긴다. 실례로 혜산에서는 김일성 사적지를 잘못 건드렸다가 처형된 사람도 있다. 


1960년대 김일성이 혜산을 방문했을 때 식당 ‘압록각’에 들러 국수를 맛보고 크게 칭찬한 적이 있다고 한다. 이 식당에는 김일성 현지지도를 기념하는 작은 비석이 들어섰고 이후 ‘혁명사적지’로 대접을 받게 됐다. 그러나 1990년대 말에 당시 지배인이었던 강 모씨가 양강도당(黨) 선전부장의 승인아래 이 식당을 허물고 새롭게 확장했다. 결국 강 씨에게는 2000년 보위사령부 검열에서 ‘수령님이 다녀가신 사적지를 함부로 훼손했다’는 죄가 적용됐고, 선전부장도 해임·추방되고 말았다.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은 혜산세관에서 압록강을 따라 동쪽방향으로 약 4km 떨어진 혜산시 연풍동 백철다리 부근을 새로운 다리 건설 후보지로 지목했다.


그러나 이 지역은 지대가 높아 교각(橋脚) 높이가 늘어날 뿐 아니라 강폭까지 넓어 전체적인 건설비용이 만만치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건설비용 전체를 중국에 떠넘기려는 북한의 주장도 협상을 어렵게 하고 있다. 창바이 한 지역에 두개의 해관(海關 중국의 세관 명칭)을 두는 것은 지방 정부차원에서 결정할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지린성 정부가 난색을 표하는 이유로 꼽힌다.


소식통은 “조선이 말도 안 되는 요구를 하고 있다”면서 “당분간 결론을 내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중국이 친선다리 확장공사 자체를 포기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지난 2005년 북한 회령과 중국 싼허(三合)을 연결하는 다리 보강 공사 과정에서도 북한이 ‘건설비용 공동부담’을 거부하자 중국은 폭 확장은 포기한 채 자기측 부분에만 철골구조물을 보강한 사례가 있다. 회령-싼허 다리는 지금도 중국쪽 절반은 철골구조물이지만 북한쪽 절반은 콘크리트 구조물이라는 해괴한 모양으로 남아 있다.









▲2005년 보강된 회령-싼허 간 국경다리 모습. 중국은 다리중간 자기측 부문까지 철골보강 공사를 했으나 북한은 기존의 콘크리트 구조에 도색만 했다. 교각 왼편 녹색 가드레일 부분이 중국영역, 오른편 흰색 가드레일 부분이 북한 영역이다.<데일리NK 자료사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