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BDA-핵폐기’ 고리 왜 풀었나

북미가 지난 16~18일 베를린에서 열린 6자회담 수석대표 회동을 통해 차기 회담에서 미국이 앞서 제안한 핵폐기를 위한 초기단계 이행조치에 대해 협상키로 합의함에 따라 그 배경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북미가 합의에 이른 것은 북한이 BDA(방코델타아시아)내 자국 계좌동결 문제가 해결되어야 초기단계 이행조치를 협의할 수 있다던 기존 입장에서 선회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분석된다.

앞서 지난 해 12월 열린 5차 6자회담 2단계 회의에서 북한은 미국의 초기단계 이행조치 제안에 대해 ‘BDA가 해결되기 전에는 협의할 수 없다’고 버텼던 만큼 이번에 북한이 BDA를 옆으로 치운 듯한 모양새를 보인 것은 의미있는 진전이라는게 외교가의 일반적 평가다.

북한이 ‘BDA와 초기단계 이행조치 협의 개시’ 사이에 연결한 고리를 푼 배경과 관련, 우선 미국이 지난해 12월 6자회담에서 초기단계 이행조치와 상응조치를 묶어 제안한 ‘패키지딜’이 북한에 충분히 매력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으로 보는 이들이 많다.

당시 미측은 영변 5MW 원자로 동결-IAEA(국제원자력기구) 사찰 허용-핵 프로그램 신고 등으로 구성된 것으로 알려진 초기단계 이행 조치를 수용할 경우 ▲문서화된 안전 보장 및 테러지원국 명단에서의 삭제▲식량 및 경제지원 ▲국교 정상화 협의 착수 등의 호혜조치를 취하겠다는 내용의 ‘패키지딜’을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전체 핵폐기 과정에서 미국이 북한에 줄 수 있는 것들을 조지 부시 대통령의 뜻임을 강조해가며 구체적이고 적극적으로 설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제안에 대해 외교가에서는 미국이 북한에 ‘핵 없이 사는 법’을 제시했다는 평가가 나올 정도였다.

아울러 미국은 초기단계 이행조치와 관련, 미국의 제안을 100% 수용해야 보상조치가 가능하다는 식이 아니라 북한이 어느 정도를 수용하느냐에 따라 보상조치가 달라진다는 유연한 입장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때문에 북한 입장에서는 상징적 의미는 크지만 자신들의 전체 핵 프로그램에서 차지하는 의미는 크지 않은 ‘노후화된 5MW원자로 동결과 동결 확인을 위한 IAEA 사찰 허용’ 등 조치들을 취한 뒤 상응조치를 받는 ‘딜’에 대해 ‘손해볼게 없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아울러 BDA 문제는 당장 해결을 요구하지 않더라도 앞으로 해결 속도가 만족스럽지 않다고 느껴지면 이행과정에서 다시 제기할 수 있는 만큼 일단 ‘전략적 후퇴’를 통해 실리를 추구하겠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요인으로 북미 수석대표들이 베를린에서 BDA 해결 전망과 관련, 상호 만족할 만한 논의를 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하는 이들도 있다.

이와 관련 최근 언론을 통해 BDA 동결자금 중 합법적인 자금을 풀어주는 방안이 잇달아 언급된 점이 예사롭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로이터 통신은 지난 16일 미국 정부 관리들의 말을 인용, 미국 정부가 북한 계좌에 묶인 2천400만달러의 전체 동결자금 중 합법자금이 있는지 여부를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고 러시아 인테르팍스 통신은 19일 북한이 동결자금 2천400만달러 가운데 700만달러를 풀겠다는 미국의 제의를 거부했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보도했다.

외교 소식통들은 힐 차관보가 합법자금의 동결해제 방안을 김 부상에게 직설적으로 전달하지는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BDA에 대한 미 재무부의 조사가 마무리돼 동결된 계좌의 성격이 어느 정도 드러나면 계좌동결의 주체인 마카오 당국이 미 재무부 조사결과에 근거해 BDA내 합법계좌를 풀어주게 되리라는 것은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라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특히 북한이 핵폐기에 성의를 보이면 BDA 문제도 조기 해결이 가능하다는 게 사실상의 미국 입장이고 보면 초기단계 이행조치 합의에 즈음해 BDA 조사가 종결되고 그에 따라 BDA내 북한의 합법계좌에 대한 동결이 해제되는 식의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울러 합법자금 해제 후에는 북미가 BDA 협의 채널을 활용, BDA 조사를 통해 제기된 북한의 불법행위의 재발방지대책을 협의하는 식으로 궁극적인 ‘BDA 해결’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힐 차관보는 입버릇처럼 “BDA는 내 일이 아니다”고 되뇌고 있지만 베를린 회동이 ‘긍정적이었다’는데 북미 양측이 이례적으로 일치된 입장을 보인 점으로 미뤄 그가 김 부상에게 ‘BDA 해결 시나리오’를 대강이나마 설명했을 가능성은 없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들은 북한이 BDA 문제를 6자회담 트랙에서 완전히 분리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북한 입장에서 ‘조기 수확’(early harvest) 방안으로 불리는 미국의 초기단계 이행조치 제안이 매력적이어서 잠시 BDA 문제를 옆으로 치웠을 뿐 BDA 동결문제가 최종 해결되기 전에는 언제고 다시 ‘카드’로 사용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것이다./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