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포괄적 패키지’론에 일단 부정적 반응

미국이 커트 캠벨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의 방한 발언을 계기로 대북 ‘포괄적 패키지’론을 띄우는 데 대해 침묵하던 북한이 23일 여러 경로를 통해 일단 부정적인 반응을 나타냈다.

외무성 대변인의 문답식 논평과 노동신문 논설, 그리고 태국에서 열리고 있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 참석한 리흥식 외무성 군축국장의 발언을 통해서다.

리흥식 국장은 “미국이 적대시 정책을 포기하지 않고 우리의 안전과 평화가 보장되지 않은 채 어떻게 패키지를 얘기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하며 “포괄적 패키지는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는 “미국과의 대화는 반대하지 않는다”고 여지를 남겼으나 “하지만 속에 칼을 품고 있는데 대화를 할 수는 없다”면서 “미국이 우리에 대한 적대시 정책을 먼저 포기해야 한다”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이날 ‘제국주의의 지배주의적 본성과 야망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제목의 비교적 긴 논설을 게재한 것도 포괄적 패키지를 앞세운 미국의 응수 타진에 대한 간접 반응으로 읽힐 만하다.

논설은 현재 제국주의자들이 “평화적 이행전략”을 주요수단으로 삼고 있다며 이 전략은 “반제자주적 나라들을 내부로부터 와해변질시켜 저들의(자신들의) 지배권안에 넣기 위한 교활한 수법”이라고 규정하고 “제국주의의 본성의 불변성에 대한 인식을 바로 갖지 못하고 그들에게 환상을 가지고 무원칙하게 타협하는 것”을 강력 경계했다.

신문은 “지금 제국주의자들은 그 어느때보다도 평화에 대하여 요란하게 떠들면서 저들(자신들)을 평화옹호자로 자처”하고 있으나 “승냥이는 언제까지나 승냥이로 남아있는 법”이라고 주장하고 따라서 “제국주의의 침략과 전쟁책동을 저지파탄시키기 위해선 군사적 힘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국주의의 ‘본성’에 대한 북한 매체들의 이러한 주장은 그동안에도 계기때마다 제기돼 왔으나 북미간 대립이 심화되면서 한동안 뜸하다가 포괄적 패키지론의 대두와 함께 다시 등장했다.

그러나 이날 논설은 ‘제국주의자들’에 대해 얘기하면서도 미국을 적시하지는 않아 눈길을 끌었다.

이날 북한 외무성 대변인도 조선중앙통신 기자와 문답 형식을 통해 대북 ‘패키지 딜’의 미국측 최고책임자가 될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에 대해 “때로는 소학교 여학생 같아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장마당에나 다니는 부양을 받아야 할 할머니 같아 보이기도 한다”고 험구하거나 “그 녀자”라고 지칭하는 등 반감을 드러냈다.

클린턴 장관 취임 이래 북한이 그의 실명을 적시해 비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클린턴 장관이 북한을 “관심을 끌기 위해 보채는 꼬마이자 철부지 10대”에 비유한 데 대한 북한의 이러한 응수는 과거 조지 부시 미 대통령이 김정일 위원장을 ‘피그미’, ‘폭군’ 등으로 비난하자 북한 외무성 대변인이 나서 부시 대통령을 ‘불망나니’, ‘도덕적 미숙아’, ‘인간추물’ 등으로 불러 양측 사이에 가시돋친 말전쟁이 벌어졌던 것을 방불한다.

북한의 리흥식 군축국장이 미국의 포괄적 패키지론에 대해 미국이 먼저 대북 적대시 정책을 버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북한에 대한 보상이 있으려면 먼저 북한이 6자회담에 복귀해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미국측 입장과 적확하게 대치한다.

또 미국이 북한의 비핵화 공약에 대해 이제는 말로는 안되고 되돌릴 수 없는 행동으로 입증해야 믿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 북한은 미국이 자신들에게 적대시 정책을 쓰지 않는다는 말을 이제는 믿을 수 없고 미국의 행동을 보고 판단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서로 끝을 알 수 없는 제재와 대립국면의 탈출전략으로 ‘포괄적 패키지’론이 등장했지만, 북미간 획기적인 신뢰구축 조치가 선행되지 않는 한 그 진척도는 매우 더딜 전망이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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