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최근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천영우 외교정책실장의 북핵 관련 발언을 잇따라 문제삼고 나섬에 따라 6자회담뿐 아니라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에도 비상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 대변인은 지난 6일 조선중앙통신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최근 반 장관의 북핵관련 발언을 일일이 거론하면서 “미국이 하는 말들을 그래도 되받아 외운 나팔수”라고 비난했다.
또 북한 웹사이트 우리민족끼리는 7일 논평에서 천 실장의 핵무기비확산조약(NPT) 재평가회의 연설을 문제삼아 “미국의 비위 맞추기에 여념이 없는 친미주구, 미국의 입김 밑에서만 살아가는 졸개만이 할 수 있는 친미사대적, 반민족적인 망언”이라고 원색적인 비난을 가했다.
이들 외교부 당국자의 발언은 6자회담이 장기간 교착 상태에 머물자 문제 해결의 열쇠를 쥔 당사자의 하나인 미국의 인내심이 점차 고갈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동시에 북한을 회담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압박 전술의 일환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북한 입장에서는 회담을 파탄으로 이끌고 있는 장본인이 바로 미국인데도 외교부가 이를 지적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자신들에게도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이유로 반발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같은 북한의 비난 공세가 당장 남북관계의 전면 경색으로 이어질지 여부는 불투명하다.
주목할 점은 남한의 외교부를 비난한 주체가 조평통이라는 점에서 적어도 당국 차원의 남북대화는 냉각 국면이 더 길어질 수 있는 불씨를 남기도 있다는 사실이다.
조평통이 2002년 4월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에 보도된 최성홍 당시 외교부 장관의 발언을 강도높게 비난한 직후 남북 당국간 대화가 한동안 경색되는 후유증이 발생했던 과거 사례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임동원 특사의 방북으로 잠시 경색됐던 남북관계가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던 시점에서 워싱턴 포스트에 보도된 “워싱턴의 강경정책이 있었기 때문에 북한이 대화에 나오게 되었다”는 최 장관의 발언은 진위 여부를 떠나 북한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 왔다.
이 발언의 여파로 그해 5월 7일 서울에서 열릴 예정이던 남북 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제2차 회의가 북측의 거부로 무산됐으며 급기야 북한이 노동신문을 통해 최 장관의 해임을 요구하는 사태로까지 발전했다.
그렇지만 전문가들은 북한이 이번 외교부 당국자의 발언을 빌미로 남북관계 전반을 경색으로 몰고갈 것으로 보지는 않고 있다.
이미 작년 하반기부터 남북 당국간 대화 채널이 막혀있는 상황에서 더 나빠질 여지도 없기 때문이다.
민간차원 교류는 작년 7월말 탈북자 집단입국 등의 여파로 잠시 소강 국면을 겪기는 했지만 외부 변수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고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이며 북한도 외교부 당국자의 발언을 문제삼아 새삼스럽게 이를 가로막고 나설 명분도 없다.
오히려 북한이 외교부 당국자 발언을 비난한 이면에는 남한 당국에 대화를 재개할 수 있는 모종의 조치를 촉구하는 의도가 담겨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특히 비료지원 문제에 있어 남한 당국이 융통성을 발휘할 수만 있다면 경색 국면이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는 관측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고유환 동국대 교수는 “북한과 대화채널이 꽉 막혀있는 상황은 북핵문제에 대한 남한 당국의 위기관리 능력에도 심각한 취약점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북핵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는 시점에서 남북 대화 재개는 북한에 나쁘지 않은 선택”이라고 말했다./연합